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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에 간 불명예 기록

등록 2012-08-09 17:21 수정 2020-05-03 04:26
배리 본즈

배리 본즈

대기업 홍보팀 일을 그만두고 스포츠잡지사에 입사한 게 2007년 7월 말이었다. 여가 시간이 엄청 많아진다는 계산으로 이직했을 뿐, 스포츠에 대해서 잘 몰랐다.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 중 처음으로 외운 이름이 ‘배리 본즈’다. 2007년 8월8일, 그가 행크 아론의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기록을 넘어서는 756호 홈런을 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특집 기사는커녕, 2쪽짜리 사진 정도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이건 대단한 게 아닌가?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자 야구팀에서는 특집 기획 기사로 ‘약물 스캔들’에 대해 심도 있는 기사를 써냈다. 배리 본즈가 아무리 부인해봐야 그의 홈런은 공공연하게 ‘스테로이드로 달성한 기록’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의 756호 홈런볼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아니라 뉴욕 메츠의 팬이던 맷 머피가 잡았다. 같은 해 9월 경매에 부쳐진 공은 패션디자이너 마크 에코가 75만2467달러에 낙찰받았다. 흔히 있는 경우처럼, 에코 역시 열혈 야구팬이라서라기보다는 자기 브랜드의 홍보 효과를 노리고 공을 구입했던 것 같다. 그는 본즈의 홈런볼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를 투표에 부쳤다. 웹사이트를 통해 ‘1. 쿠퍼스타운(명예의 전당이 있는 곳)으로 보낸다 2. (명예롭지 못한 홈런볼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참고 표시를 한 뒤 쿠퍼스타운으로 보낸다 3. 우주로 날려보낸다’라는 보기를 제시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참고 표시를 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태에 발끈한 사람이 있었으니, 미국프로농구(NBA) 가드로 뛰고 있던 길버트 아레나스다. 그는 블로그에 “본즈 홈런볼을 80만달러에 사들이겠다”고 밝히며 “에코가 ‘역사’를 그렇게 거칠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프로스포츠 선수로서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길버트 명예의 전당’에 본즈의 홈런볼을 모셔두고, 만일 본즈의 혐의가 유죄로 밝혀지면 공을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 공은 결국 에코의 뜻대로 보류 표시(★표)를 한 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러나 잡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증하기로 한 당일, 마크 에코는 갑자기 명예의 전당 쪽에 무상 기증이 아니라 임대하겠다는 의견을 발표했고, 전당 쪽은 그렇다면 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성명을 발표하며 받아쳤다. 에코가 좀 투덜거리긴 했지만, 결국 이날 밤 ‘조건 없이 기증한다’는 편지와 함께 운전기사를 통해 공을 전달했다. 우여곡절 끝에, 불명예에 대한 한 기록이 아이로니컬하게도 ‘명예의 전당’에 도착했다. 김지현 작가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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