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생 전체가 이리저리 꼬였다는 느낌에 며칠간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의욕을 되찾으려고 꺼내든 것이 였다. 처음 읽는 책인 양 푹 빠져들다 보니 강백호의 건달 친구인 양호열이 새삼 멋지게 느껴져서 페이스북에 ‘양호열이 내 마음을 훔쳤다’고 글을 올렸다. 내 또래의 페북 친구들이 황태산이 더 멋있다느니, 자기가 채치수를 닮았다느니, 남자는 정대만이라느니 한마디씩 거드는 걸 보고 새삼 깨달았다. 그래, 안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좌우명 삼아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는 경험 같은 건 없었다 쳐도, 나와 같은 세대 중 한번 안 읽고 유년기를 거친 남자가 있을까.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 만화 는 전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판매됐다. 2004년 8월10일, 그는 주요 일간 신문에 등장 캐릭터들의 러프 스케치와 함께 ‘1억 권에 대한 감사를 담아서’ ‘농구와 모두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아 감사 광고를 자비로 실었다. 6개 신문사에 실린 광고 가격은 1억6천만엔, 당시 한화로 약 16억원에 달했다.
2011년 11월에는 한국을 방문한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트위터에 가타가나로 올린 ‘닭 한 마리’라는 멘션을 보고 팬인 뮤지션 ‘메이크 원’이 식당으로 달려가 사인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0년부터 연재됐으니, 20년이 지나도록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이 된 셈이다.
는 알아도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던 내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해 3월 즈음이다.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날부터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트위터에 ‘미소’를 주제로 1~2시간 간격으로 꾸준히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소녀부터 할아버지까지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감동시킨 건, 그림 속 어린이들이 입고 있던 농구 유니폼이었다. 이와테, 미야기, 나가노, 야마나시, 지바, 아오모리 등 지진과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이름이 쓰인 유니폼을 입고 씩씩하게 웃고 있는 소년·소녀들.
스포츠 선수도 아니고, 스포츠 만화인 나 도 아니고, 농구 유니폼 입은 아이들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왜 일러스트 시리즈가 스포츠 박물관에 있느냐고 갸우뚱하신다면, 이것이야말로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하련다. 생활 기반이 붕괴된 것과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때때로 ‘멘털 붕괴’가 되어 허덕이는 우리에게 스포츠는 일종의 은유로서 싸울 힘을 주니까. 이번 경기 한번 졌어도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남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팀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한번도 이기지 못해도, 내가 흘리는 땀과 뛰는 즐거움을 알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거다. 로 스포츠의 세계 깊숙이 들어갔던 작가는 그걸 알고 이 그림들을 그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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