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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의 위대한 탄생

두 번째 전시품- 운동화 ‘케즈’와 ‘나이키’
등록 2012-04-06 16:17 수정 2020-05-03 04:26
나이키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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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즈’(Keds)라는 브랜드의 운동화에 관심 갖게 된 건, 스티븐 킹의 소설 중 여름 편인 ‘우등생’을 읽고부터다. 소설은 토드 보던이라는 소년이 유대인 학살범을 찾아가 그에게서 잔인한 홀로코스트 얘기 듣기를 즐기다가 점차 타락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복한 가정의 전형적 미국 우등생인 토드가 처음 등장할 때 케즈를 신고 있다고 묘사됐으며, 토드의 선생님도 케즈만 신는다. 미국의 평범하고 건전한 사람들이 신는 전형적인 신발이라는 느낌을 준다.

고무 밑창과 캔버스 천으로 만든 지극히 단순한 모양의 케즈 운동화는 최초의 운동화라고 할 수 있다. 운동화가 나오기 전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 선수들은 맨발로 경기를 뛰었다. 그러다 1890년대 뉴욕 사람들은 고무로 만든 아웃솔이 소리내지 않고 걸을 수 있으며 가볍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고무 타이어를 만들던 US러버사(미셰린 그룹 소속인 지금의 유니로열사)에서는 1892년부터 고무 밑창이 달린 신발을 만들었다. 1916년, 드디어 케즈라는 상표를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운동화를 생산한다. 운동화를 지칭하는 ‘스니커’(Sneaker)는 케즈의 첫 상품을 부르던 말로, ‘소리나지 않게 걸어다니는 것’을 가능케 하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말이었다.

당시 케즈는 이 운동화를 신으면 ‘가장 빨리 달리고 높이 뛸 수 있다’고 선전했다. 1949년에는 ‘프로케즈’(Pro-Keds)라는 브랜드를 따로 만들어 조지 미칸과 같은 유명 농구선수들을 위한 농구화를 생산했다. 그러나 광고 내용이나 타깃과는 다르게, 생활에서는 편리했을지 모르나 경기용으로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웠다. 육상용으로도 적합하지 않았다.

1958년, 오리건대학 육상팀원이던 필 나이트가 운동화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긋게 된다. 그는 코치 빌 보워먼에게 러닝슈즈에 대해 불평했다. 보워먼은 선수들에게 새로운 운동화를 만들어 신겨 기록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걸로 유명한 코치였다. 나이트는 졸업 뒤 경영 공부를 시작했고, 1964년에는 그 둘이 함께 운동화를 설계·제작해 전국 육상경기 대회장에서 직접 판매했다. 1968년 이들이 만든 운동화를 토대로 ‘나이키’(NIKE)가 탄생했다. 설계를 맡은 보워먼은 1970년 아내가 와플을 만드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주방의 와플 기계에 생고무를 넣어 최초로 격자무늬 밑창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운동화의 마찰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인 쇠로 된 스파이크를 장착하지 않고도 더 가볍고 유연한 운동화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스티브 프리폰테인 선수는 이 운동화를 신고 중거리 종목 7개에서 신기록을 달성했다.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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