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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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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낳은 아이들

첫 번째 전시품- ‘월드컵 베이비’ 출생증명서
등록 2012-03-23 19:34 수정 2020-05-03 04:26
남아공월드컵 한국-그리스전 거리응원을 하고 있는 붉은악마들. 사진공동취재단

남아공월드컵 한국-그리스전 거리응원을 하고 있는 붉은악마들.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 2월, 독일에서 첫 ‘월드컵 베이비’가 태어났다. 파리나의 엄마 피아 슈미트는 아기를 임신한 것이 정확히 그 전해 6월15일이라고 기억했다. (흠흠, 임신한 날을 정확히 기억하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2006년 6월15일은 폴란드와 16강전을 치른 독일이 후반 인저리 타임에 골을 넣어 1 대 0으로 승리한 날이다. 2년 동안 임신에 실패하고 있던 슈미트 부부는 그날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열어 승리를 자축한 뒤….

독일 주간지 은 2006년 월드컵 기간의 임신으로 인해 다음해 2~3월의 출산율이 평년 대비 10~15%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에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은 ‘바스티안’ ‘옌스’ ‘루카스’ 같은 축구선수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월드컵 베이비가 보편적인 사회현상이 되자 축구선수들은 전혀 의도치 않은 엉뚱한 부담까지 짊어지게 됐다. 당시 독일의 크리스티나 슈뢰더 가족부 장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독일과 잉글랜드의 16강전을 앞두고 독일이 승승장구하면 베이비붐을 일으킬 수 있지 않겠느냐며 “가족부 장관으로서 독일이 우승하면 내가 특별히 기쁠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단다.

현재 한국의 10살배기 아이들은 아마 다른 학년 아이들보다 그 수가 많을 것이다. 한·일 월드컵 이듬해인 2003년 봄 출산이 10% 정도 증가했다. 2002년 1.16명이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 수)이 2003년 1.18명으로 반짝 증가했다가 2004년 1.15명, 2005년 1.07명까지 떨어졌다.

축구 스타의 한 골이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보다 훨씬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여성들도 ‘오프사이드’와 ‘코너킥’에 대해 논하게 되는 유일한 때가 월드컵 기간이며, 따라서 남성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맥주를 마시며 축구 경기를 보는 대신 여성들과 함께할 수 있다. 그리고 알코올이 돕는다. 게다가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서 이기면 남성들의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더 높아진다. 이 수치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성생활이 더 활발해지는데, 이 경우 더 적극적인 상태가 되고 여자를 잘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많은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하다니, 스포츠란 참 위대하기도 하지!

월드컵으로 인해 임신한 아이들뿐 아니라, 월드컵 기간에 태어난 아이들도 ‘월드컵 베이비’로 불린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 경기 전반 10분에 태어난 여자아기는 ‘피파’라는 이름을 얻었다. 또 다른 부부는 갓 태어난 아들에게 남아공 월드컵 슬로건을 본떠 ‘이제 때가 됐다’(It is time)는 뜻의 ‘케 나코’(Ke Nako)로 이름 지었다. 또 다른 쌍둥이 형제는 ‘바파나’(남아공 축구대표팀의 별명 ‘바파나 바파나’를 딴 것)와 ‘멕시코’란 이름을 얻었다.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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