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유난 떨지 말고, 주변에(특히 친정에) 민폐 끼치지 말고 한번 해보자! 아이를 낳기로 하고 이렇게 결심했다. 얼마 입지도 못할 텐데 비싼 옷 사지 말고, 육아용품 욕심내지 말며, 태교니 조기교육이니 하는 데 동하지 말자! 이렇게 다짐을 했다. 현실적으로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소망인 줄, 미처 몰랐다. 우선 아이 옷을 비롯한 육아용품 이야기를 해보자. 내 경우 “첫앤데 뭘 그렇게까지 얻어 입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여러 사람에게 아이 옷을 얻어두었다. 아기 이불은 언니가 8년 전에 사서 쓰던 것을 가져왔고 아기요람, 모빌, 수유쿠션, 회음부 방석, 젖병까지 모두 얻었다.
그러면 뭐하나. 돈은 밑도 끝도 없이 들었다. 유모차와 카시트는 수십만원을 호가했다. 아기 겉싸개 하나만도 10만원을 훌쩍 넘었다. 아기 목욕용품은 손바닥만 한 게 3만~4만원은 우습다. ‘유기농’이란 말만 붙으면 가격은 훅 뛰어올랐다. 어어, 공기청정기도 필요하다고? 아기 세탁기? 천연 세제?
병원비는 정부에서 주는 ‘고운맘카드’ 40만원(올해 4월부터는 50만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많이 들었다. 길게는 한 달에 한 번, 짧게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산부인과에서는 갈 때마다 초음파 사진을 찍어댔고 매번 몇만원이 우습게 나갔다. 그나마 동네 산부인과를 택한 나는 사정이 나았다. ‘임신부 F4’(901호 ‘임신부 F4의 탄생’ 참조) 중 셋은 모두 대형 산부인과를 택해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었다. 그중 2명은 35살 이상이란 이유로 ‘고위험군’에 분류돼 각종 추가 검사 비용까지 들었다.
이런 것도 있었다. 출산의 순간, 간호사가 남편에게 묻는다. “영양제는 뭘로 맞으실래요? 5만원, 9만원, 14만원짜리 있는데요.” 진통하는 아내 옆에서 어떤 남편이 “영양제 필요 없다” 할 수 있으랴. 자연분만을 했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병원비는 100만원을 넘어섰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필수 예방접종이 동네 소아과에서도 무료라기에 기대를 했다. 그런데 첫 예방접종인 BCG를 맞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하게 실망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에는 예방접종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지정 의료기관이 60여 개나 있었지만, 이 중에 BCG를 무료로 맞춰주는 데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병원들은 모두 “(무료인) 피내용 BCG는 접종하지 않는다”고 했다. 7만원짜리 경피용 BCG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아아, 아직 산후조리 이야기는 하지도 못했는데 지면이 가득 찼다. ‘친정엄마에게 민폐 끼치지 않겠다’는 말은 곧 ‘돈을 쓰겠다’는 소리였다. 집 근처 산후조리원은 2주에 200만~300만원, 집으로 부르는 산후도우미는 2주에 70만원 선이었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나니 지자체에서 주는 ‘출산축하금’이 입금됐다. 10만원. 웃음이 났다. 그나마 이게 어디냐. 이마저도 주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 돈돈돈, 전부 다 돈인 임신·출산 과정을 겪으며, 아이 키울 때는 돈이 더 든다는데 한숨을 쉬며,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못 낳는구나’ 생각했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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