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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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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인형의 집에서 나오길

<아내의 자격>, ‘서래’ 김희애
등록 2012-04-07 11:24 수정 2020-05-03 04:26

김희애씨! 요즘 드라마 잘 보고 있어. 사실 나보다는 우리 아내가 더 잘 보고 있지만. 아내는 이 드라마의 마니아로서 팬클럽까지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겉으로는 현모양처, 속으로는 자유부인’이라나. 아내는 드라마 주인공 두 사람이 서로 정신적인 사랑을 할 뿐이라며 옹호하는 중이지. “키스만 했을 뿐”이라며… 아하!

김희애씨가 맡은 윤서래 역할은… 와우! 완전 몰입하게 하더라고. 그런데 난 윤서래에게 할 말이 많아. 첫째, 왜 자기 주제를 모르고 그런 남자랑 결혼했느냐고. 자기네가 가진 게 뭐가 있어? 가난한 집에다 친정 엄마는 치매! 신랑 집은 좀 있잖아. 이 사회가 자본주의사회란 거 몰랐어? 있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고. “돈도 없는 것들이….”

그러니까 서래는 상진(장현성)과 결혼한 순간부터 막장이 시작된 거라고. 상진의 명대사는 그들 부모의 개념도 드러내주더라고. “이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갑과 을. 난 우리 아들이 갑이면 좋겠거든!”

오~ 명쾌해! 서울 대치동 명가의 자손답지 않아? 돈과 명예, 지위 높은 갑들끼리 만나서 대대손손 갑으로 살겠다는데 뭐가 잘못이야? 지지리 궁상 떨며 을로 사는 게 좋겠느냐고? 그러면서 뭘 바꿔야 한다느니, 못 살겠으니 갈아보겠다느니, 99%라느니 요런 대사 읊조리며 바람 부는 거리에서 투쟁하며 사는 게 좋겠느냐고? 난 우리 아들도 갑이면 좋겠어. 내가 을로 살아보니까 그게 참… 안 좋아. 흐흐흑.

아, 알아요, 알아. 당신이 아들 친구 아빠인 태오(이성재)를 절대 무슨 바람 피울 의도 따위를 갖고 만난 게 아니라는 걸. 태오를 만나 순수한 사랑을 가슴 깊이 느꼈다는 걸. 당신과 그 남자 사이에는 아무런 불미스런 일도 없었다는 것을(단지 키스만 했을 뿐). 그러나 당신은 대치동 갑돌이·갑순이들의 네트워크를 너무 우습게 본 거야. 게다가 당신 남편 상진은 기자라고! 기자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하는지 알아? 지난주에 보니, 태오 동생네 집에 서래가 누워 있고 상진은 경찰 2명을 데리고 쓱 나타나더구먼. 아휴 살 떨려. 당신은 딱 걸린 거야.

윤서래가 요즘 주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지? 난 불만이야. 21세기 첨단사회에서 웬 의 로라냐고. 그러나 여전히 로라는 넘쳐나고 착취는 진행 중이니, 난 남편 된 사람으로서 찜찜하면서도 당신을 지지한다네. 제발 당신이 원하는 사랑을 찾아가기를. 당신을 혼수 적게 해온 신부, 아이 사교육 제대로 못 시키는 아내, 아들 속 썩이는 불륜 며느리로만 보는 갑들의 집을 떠나 온전히 인간으로 대해주는 을들의 세상 속에서 행복하기를.

배우겸 작가·인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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