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령!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잘 봤어. 순애 역 좋던데? 순정과 까칠함이 뒤섞인 여인, 어찌 보면 푼수고 달리 보면 진국인 캐릭터. 오, 최고야.
내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오늘치 인터넷 신문과 검색창에 미령의 이름이 떴기 때문이야. 예능 프로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화제가 됐더군. “저에겐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요.”
안면인식장애?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더군. “기본적인 감각 이상, 지능 장애, 주의력 결핍, 실어증 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숙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이나 장애를 말한다. 이 증상을 겪어도 물건을 인식하는 능력은 완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누구처럼 아는 언니의 가방이나 그 안에 든 돈은 인식할 수 있지만 그 언니 얼굴은 모른다… 뭐 이런 건가? 아, 농담이야, 농담. 절대 고소는 말아줘.
이 글을 읽고 인터넷으로 내 얼굴을 찾아보거나 검색하지는 않겠지? 내 기억에 따르면 나는 미령씨와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1990년대 말 서울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어떤 매니저의 소개로 말이지. 그때 미령씨의 이미지는 맑고 순수한 순애 같았지. 그때 나도 그랬던 것처럼 미령씨 역시 이렇다 할 히트작을 만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지. 당시 우리는 모두 매니저의 봉이었고 PD들의 밥이었어. 아… 무명은 늘 서러운 것이고 을은 늘 섭섭한 것이지.
축하해. 그 뒤 심기일전해 큰주모()부터 계모()까지 다양한 역을 많았고, 이제 당당히 제 역할을 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으니. 1990년대 말 드라마 이후 벌써 스무 작품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했군.
그런데 그 안면인식장애 말이야. 안재욱씨는 “그저 나이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받아쳤고, 미령씨는 “어떤 사람이든 10번 이상 봐야 기억한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인사를 하지 않아 아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지? 음, 나도 이런 병에 걸릴 수만 있다면 걸리고 싶은 생각이야.
왜냐고? 세상에 아는 척하고 싶은 사람보다 모르는 척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야.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김 팀장도 모르는 척하고 싶고, 뺀질거리는 후배 이아무개양도 모르는 척하고 싶어서. 저 아니면 우리나라 망한다고 외치는 후보들도 모르는 척 하고 싶고, 굳이 애국가 안 부르는 사람들도 모르는 척하고 싶거든. 그리고 사실은 조용히 있고 싶은데 늘 떠들기만 하는 나를, 나는 모르는 척하고 싶어. 그러니 좀 알려줘. 안면인식장애의 비밀을.
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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