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사랑한 남자’ ‘대한민국을 증오한 남자’, 박정근은 사진사다. 1988년 3월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2012년 1월31일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4살짜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의 탄생. 그러니까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와 수원지검 공안부가 조물조물 만들어내고 수원지법 영장판사가 시원하게 도장 찍어준 ‘박정근 비기닝’은 이러하다.
교묘하고 지능적인 북한 찬양?
박정근의 아버지도 사진사였다. 박정근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사진관을 운영한다. 옛 소비에트연방, 그러니까 한때 무시무시했던 소련과 북한 등 공산권 국가의 ‘영상물’과 그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이기지 못해 인터넷을 검색해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사진사니까 그렇다는 거다. 아는 사람에게서 건네받았다는 북한 원전 을 보자마자 북한 체제와 사회에 대한 각종 지식을 한번에 습득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12년이나 지난 남한의 20대 청년이 1985년 조선노동당 창건 40주년 기념으로 출판된,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문화 건설을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지침서에 도대체, 왜, 어떻게 심취할 수 있는지는 묻지 말자. 구텐베르크 시대도 아닌데 책 한 권의 힘이 그리 세다는 얘기다.
어쨌든 박정근은 2010년 3월 트위터 계정을 만든다. @seouldecadence, ‘서울 퇴폐’ 정도 되겠다. 1천만 명의 욕망이 뒤엉킨 서울이 데카당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해 9월 북한 노동당 대남선전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인터넷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uriminzok)을 팔로잉하기 시작한다. 조평통 대변인 성명·논평, 사설 등을 계속 ‘구독’하며 그 일부를 ‘무려’ 3700명(2011년 12월31일 현재)에 이르는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리트윗했다.
게다가 박정근은 2010년 초 ‘정부 개발정책 반대 모임’인 ‘작은 용산 두리반’ 활동까지 했다. 찬성 모임이라면 몰라도 반대 모임이니 문제다. 그러다 동료로부터 사회적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당 입당을 권유받고는 2010년 12월 입당한다. 뭘 표방하는지 도통 짐작도 안 가는 새누리당 입당을 권유받았다면 몰라도 ‘무려’ 사회적 공화주의 하자는 사회당에 입당한 것이 문제다. 남북관계 ‘국가 대 국가’ 인정, 평화협정 체결,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사회당 강령에 동조했다. 남한 사회에서 멀쩡히 정당정치를 하고 있는 정당의 강령이 문제다. 박정근은 최근까지 대학 등록금 철폐, 양심적 병역거부 보장, 서울 포이동 주거복구 대책 요구,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국가보안법 철폐 등과 관련한 집회에 참석하는 등 각종 사회활동에 동참해왔다. ‘오덕스럽게’ 혼자 방구석에서 놀지 않고 ‘무려’ 사회활동을 한 것이 문제다.
박정근은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 어찌나 뛰어난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 접속을 차단하자 해외 서버에 기반한 트위터를 이용해 접속하는 초능력을 발휘했다. 국가기관의 접속 차단을 간단히 무력화하다니, 컴퓨터 활용 능력이 정말로 뛰어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교묘히 취득한 이적표현물을 반포할 때도 지능적 수법이 동원됐다. ‘서울 퇴폐’에 이어 2011년 1월 트위터 계정을 추가 개설했는데, 북한에서 운영하는 트위터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러니까 영어 약자로 DPRK가 들어간 계정을 만들었다. @dprkdecadence, ‘북한 타락’ 정도가 되겠다. 북한 천국, 남한 지옥도 아니고 북한 타락, 북한 퇴폐라는 계정이 과연 북한에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지, 이게 북한을 찬양하는 것인지는 묻지 말자. 어찌됐든 지능적 수법이 동원된 것으로 보아 이적 목적이 있었던 것이 명백하다. 박정근은 북한 체제와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흠모하고 추앙하는 종북주의자로, 북한이 국내의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 반값 등록금 문제 등이 발생할 때마다 인터넷 공간을 적극 활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건 흠모·추앙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따지지 말자.
7만2043건의 멘션 중 229건, 0.3178%
박정근의 트위터를 팔로잉하는 팔로어 수는 수사 사실이 알려진 뒤 급증했다. 2012년 2월16일 오후 3시 현재 6014명이다. 한달 보름 만에 2300명의 ‘이적표현물’ 추가 구독자를 양산한 것이 박정근인지, 아니면 공안기관인지는 따지지 말자. 어쨌든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전파력으로, 모방범죄가 심각히 우려되는 트위터에 접속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박정근이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받아 리트윗한 내용을 보자. “우리의 혁명력사는 적들이 한 걸음 접어들면 열 걸음 백 걸음 맞받아나가는 전술로 승리하여온 력사이다.” 박정근은 2010년 12월15일부터 2011년 12월31일까지 이런 유의 이적표현물 96건을 리트윗, 그러니까 국가보안법상 용어로 취득·반포했다. 인터넷 유튜브 사이트에서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 하리라”라는 제목의 북한 혁명가 동영상 자료를 발견하고 자신의 트위터 팔로어들에게 전송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취득·반포가 34건이다. 읽다 보면 심취하기보다 왜 저리 촌스러운지 손발 오그라드는 북한식 어법들이다.
박정근 본인이 직접 쓴 내용도 있다. “조선로동당 최고야 우리당이 최고야” “일어난 김에 김정일 만세를 외칩니다” “서울을 주사로 붉게 도색하리라” “수령님처럼 신묘하게” “어따대고 신성한 우리 영해에 불질이야” “김일성 집권 시절엔 아이들 먹는 사탕이 상점에 차고 넘쳐 여름엔 녹아버리는 것도 많았다고 합니다” “인민의 주적은 국가보안법이다”. 이렇게 북한을 찬양·고무·선전·선동·동조한 것이 99차례다. 보다 보면 실소가 터지기도 하는 그런 내용들이다. 박정근의 공소장에는 도합 229건의 범죄일람표가 작성됐는데, 박정근은 트위터 계정을 만든 뒤 구속되기 직전인 지난 1월11일까지 모두 7만2043건의 트윗을 날렸다. 이적 목적이 명백한데도, 트위터를 통해 달랑 229차례밖에 이적질을 하지 않은 이유를 따지지 말자. 7만2043건 가운데 229건은 0.3178%에 해당한다. 압록강물에 섞여 있는 청산가리 농도 아니냐고 따지지는 말자. 박정근의 구속영장에는 ‘트위터의 위험성’이라는 항목이 A4 3장 분량으로 따로 정리돼 있다. “평균 4명만 거치면 어떠한 사용자와도 소통이 가능” “현대 사회생활에 막대한 영향” “중3이 박정근의 트위터에 팔로어 신청·동화되어 인터넷에 ‘10대좌파당’ 개설”. 게다가 “‘맞팔’이란 트위터 사용자 간 서로 팔로어하는 것으로 1:1 쪽지 기능 이용 비밀스런 대화 전달에 주로 사용하여 그 위험성이 높다”고 하지 않는가. 1대1 연결 전화방만큼 위험하다는 얘기다.
박정근은 트위터에 이런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검찰 낚는 어부 박정근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검사나 놀려야겠다. ×××야 메롱메롱 김정일 김일성 김정은 김옥 고영희 김정숙 장성택 김정철 김정남 김영남 만세 만세 만만세” “김정일을 퇴치하자” “어젯밤 꿈에 북한에 갔다 왔다. 근데 김일성 죽기 전 북한이었는데 뜻밖에도 권력 이양 직전 김정일이 먼저 죽어버린 거다. 다들 난리가 나서 특히 김일성은 아들이 죽은 비통함에 나도 죽겠다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는 걸 내가 말렸다. 웃긴 가족이었음”. 박정근은 지난 1월16일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 보내는 공개서한’을 썼다. “체제 찬양으로 보이는 글들은 대부분 농담이었으나 저는 이 편지에서 농담을 일일이 설명하진 않을 것입니다. 농담을 변명하는 건 농담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면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니까요.” ‘내가 해봐서 안다’는 MB한테 ‘정말 해봤냐? 여기서 직접 해보라’고 다큐를 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노골적인 ‘박정근 인생 몰아가기’
공안사건, 특히나 ‘찬양·고무’라는 꼬리표를 단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공소장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로지 ‘이적행위’를 위해 바쳐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북한을 찬양·고무하기 위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온한 생각을 가졌는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깔렸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성장 배경으로 보아 한국 사회에 불만이 많았을 것이며,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한 것으로 보아 당연히 한국 사회에 불만이 많았을 것이며, 의원님들이 계신 국회 도서관에도 있는 사회과학 서적을 찾아 체계적으로 읽은 것으로 보아 역시나 한국 사회에 불만이 많았을 것이라는 깔때기가 작동한다. 범죄 사실과는 상관없는데도, 법관에게 유죄 심증이나 예단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내용들이다. 2009년 판례 변경으로 공안기관의 이런 관행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렸다지만, 이적성을 문제 삼으려면 ‘이 사람이 왜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됐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을 오로지 찬양·고무의 한길로 내모는 경향은 여전하다. 박정근이 그렇다.
공안기관의 ‘박정근 인생 몰아가기’는 노골적이다. 박정근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광철 변호사는 재판부에 보석을 신청하며 추가 증거자료를 냈다.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트윗 내용 100여 개에는 북한 3대 세습의 주인공 김정은을 ‘유산균’에 비유하고 할아버지 김일성을 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이미 2010년부터 박정근의 트위터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박정근의 일상적인 풍자와 조롱의 표현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의 북한관을 명백히 알고 있었는데도 몇 가지 표현들만 꼬투리 잡아 친북적이라고 보는 것은 수사 윤리에 어긋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이 이래서 문제다. 찬양·고무죄는 이적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는데 오히려 반대되는 증거가 더 많다”고 했다. 앞서 구속영장을 심사하는 재판부에도 김정일을 욕하는 트윗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권영문 경장, 수원지검 공안부 문현철 검사, 수원지법 김성환·이동훈·박광서·김준혁 판사. 박정근의 공소장과 구속영장, 구속적부심 서류에 등장하는 ‘관련자’들이다. 이들은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과거 수많은 조작사건을 통해 시국사범을 양산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정치적 표적수사와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침해한다는 정을 알면서도 이들 기관을 찬양·고무·동조할 목적으로 경찰·검찰·사법부에 투신·근무하며 박정근을 수사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인생 몰아가기’ 어렵지 않다.
국가보안법식 억지에 사라진 자유
이들이 보기에는 장난도 치밀하게 계획된 이적행위고, 농담도 치밀하게 짜인 이적행위다. 장난을 처벌하려는 경찰과 검사, 그러게 왜 그런 장난을 했느냐며 설명을 요구하는 판사까지. 헌법전의 표현의 자유는 이들의 머리에는 자리잡을 곳이 없는 듯하다. 북한 찬양이 아니라 북한 조롱이었으니 처벌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트위터에서 북한을 찬양했다 한들 정말로 조국이 위험에 처할까.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나라가 무너질까. 전쟁까지 한판 치른 남북 대결 구도에서 그런 장난이 심히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마음에 안 들면 손가락질하고 끝나면 그만인 것을 기어이 사람을 가두고 징역살이를 시켜야겠다는 것은 상식이나 논리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식 억지다.
사상과 표현과 양심의 자유는 개나 주도록 하자. 그걸 기념해 만세 삼창 해본다. 김정은 만세! 김정은 만세! 김정은 만세! 누가 뭐라 그러면 탤런트라고 할 테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홍장원, 헌재 스크린에 메모 띄워…“윤석열 ‘싹 잡아들여’ 지시” [영상]
15억 인조잔디 5분 만에 쑥대밭 만든 드리프트…돈은 준비됐겠지
윤석열 “간첩 싹 잡아들이라 한 것” 누가 믿을까? [2월5일 뉴스뷰리핑]
트럼프 “미국이 가자지구 소유할 것”…강제 이주 또 주장
[단독] “나경원 해임 기사 보내니 용산 사모님이 좋아하네요”
“급한 일 해결” 이진숙, 방송장악 재개?…MBC 등 재허가 앞둬
“계몽령” 전한길, 윤석열이 띄우는 ‘국민변호인단’ 참여
오요안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민낯은 ‘비정규 백화점’ 방송사
[영상] 피식, 고개 홱…윤석열, 체포명단 폭로 홍장원 노골적 무시
“희원이 쉬도록 기도해줘” 구준엽이 끝내 놓지 못할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