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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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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결론은 음악이다

멋진 무대와 현실적 고단함의 간극… 아마추어 밴드 ‘게이트 플라워즈’의 보컬 박근홍씨가 말하는 ‘그럼에도 밴드를 하는 이유’
등록 2011-07-08 18:02 수정 2020-05-03 04:26
한국방송 제공

한국방송 제공

‘밴드’가 대세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틀면’ 나온다. 한국방송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는 수백 팀의 밴드 중 단 하나의 밴드를 가려내느라 바쁘다. 각양각색의 밴드가 합격과 탈락 사이에서 울고 웃는다. 문화방송 에서도 윤도현은 항상 자신의 밴드 ‘YB’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드라마에도 밴드가 등장한다. 문화방송 드라마 의 남자주인공 이신(정용화)은 실용음악과 학생이자 록밴드 멤버다. 3인조 록밴드 ‘메이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음악영화 는 스크린에 걸렸다.
에 출연해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밴드가 있다. 4인조 록밴드 ‘게이트 플라워즈’다. 박근홍(보컬), 염승식(기타), 양종은(드럼), 유재인(베이스)으로 구성된 게이트 플라워즈는 지난해 EP 앨범을 내고 ‘한국대중음악상-최우수 록 노래 부문’을 수상할 만큼 실력을 갖췄다. 그런 밴드이기에 그들의 출연은 논란이 될 만했다. 제작진은 “‘정규 앨범을 발매한 경험과 소속된 연예기획사가 없는 밴드’라는 출연 규정에 어긋나지 않기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의 출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건 보컬 박근홍씨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이었다. “에 나가는 게 게이트 플라워즈의 음악을 바꾸지 않고 게이트 플라워즈를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내용의 글은 지금 우리 대중음악과 록밴드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좌표나 다름없었다.
무대에서는 그 누구보다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게 밴드지만, 현실에선 여러 어려움에 봉착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게 밴드이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밴드만이 가질 수 있는 음악적 독창성을 찾아가는 길이 어렵고, 밴드의 정체성을 지키며 현실과 타협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밴드를 할까? ‘그럼에도 밴드를 하는 이유’에 대해 게이트 플라워즈 박근홍씨에게 글을 부탁했다. _편집자
밴드 활동은 이혼 사유다?

밴드가 해체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보컬리스트가 너무 노래를 못 부른다든가, 드러머가 박자를 못 맞춘다든가 하는 등 기술적 부분이 주로 문제가 되고, 기타리스트가 연습을 안 해온다든가 베이시스트가 연습에 자주 불참한다든가 하는 등 이른바 ‘성의 부족’도 밴드의 결집을 와해하는 주요 원인이다.

밴드 외부에서 문제가 터지기도 한다. 직장인 밴드를 보면 형수님 혹은 제수씨(아무래도 밴드 하는 사람 중에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의 불만 폭발로 음악적 열의가 넘쳐나던 구성원이 탈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좀 우습게 보일지 모르나, 악기를 산다고 몇 개월 생활비를 탕진하는가 하면, 밴드 연습한답시고 주말 밤마다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는 남편을 감당해야 하는 부인의 처지에서는 이혼 사유로도 충분한 게 밴드 활동이다.

밴드가 해체되는 데는 이렇게 멤버 하나하나의 사정이 치명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밴드라는 게 사람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루는 것이므로. 저런 일들을 당했을 때 문제가 되는 멤버 하나만 교체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단 적합한 연주자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적잖은 시간 동안 연주의 합을 맞췄던 멤버가 나가면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어떤 유의 음악을 하든 간에 ‘밴드’를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본격적으로 밴드 생활을 하는 게 고등학교 졸업 이후라고 단정한다면, 적어도 20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 속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의 소리를 내겠다고 모이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그렇다. 해체 이유야 제각각일지 몰라도 최소한 밴드를 결성하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함께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론은 음악이다.

지난 2월 라이브 클럽 '쌈'에서 열린 게이트 플라워즈 단독 공연 모습. 게이트 플라워즈 제공

지난 2월 라이브 클럽 '쌈'에서 열린 게이트 플라워즈 단독 공연 모습. 게이트 플라워즈 제공

아마추어 뮤지션의 고단한 이중생활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는 ‘자아실현과 인격완성’이라는 장이 있다. 이 장에서는 ‘직업’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한다. △생계유지 수단 △사회 공동생활에 참여하는 통로 △자아실현과 인격완성의 장. 이 정의에 따르면, 뮤지션의 자아실현과 인격완성은 자기가 만든 노래로, 혹은 자신의 연주로 먹고살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학창 시절 내내 음악만 파고든 클래식, 혹은 실용음악 전공자들도 음악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지금, 독학과 단시일의 사교육을 거쳤을 뿐인 밴드맨들이 음악으로 호구한다는 건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다. ‘한국의 각박한 현실’을 탓할 것 없다. 대중음악의 성지 미국에서조차 한때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뮤지션이 식당에서 서빙하거나 피자를 배달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학창 시절에 밴드 안 해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으랴. 그러나 좀더 진지하게, 남자의 예를 들면 군 복무 이후에도 음악을 하려면 당연히 취직자리부터 걱정해야 한다. 악기 가격은 또 좀 비싼가. 악기 가격만 들면 그나마 양반이라고 하겠으나, 연습하려면 합주 공간이 필요하고, 공연이라도 할라치면 악기를 실어나를 차량이 필요하다. 여기에 집에서 밴드 하지 말라고 난리칠 때마다 입막음할 돈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려면 월급을 넉넉히 주는 직장이 필요하다.

취직하겠다고 맘먹는다고 해서 바로 취직이 되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남들이 스펙 쌓는다고 벌게진 눈으로 학교 도서관을 맴도는 동안 쌓은 음악적 스펙은 인사담당자들이 보기에는 공란과 다름없다. 우여곡절 끝에 취직해도 남의 돈 받기가 어디 쉬운가. 수당 없는 야근의 나날이 계속되는 동안 음악적 영감은 저 하늘 너머에서 어른거리다 사라지곤 한다.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호통치는 상사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나는 뮤지션이야! 여기는 그저 통과점에 지나지 않아!’라고 되뇌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무릅쓰고 밴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천재적 재능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한참 됐다. 그래도 없는 시간과 돈을 쪼개 연습실로 향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굳이 그 이유를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잠시 삼류 공상과학영화에서 쓰러진 보스를 눈앞에 둔 주인공의 목소리를 떠올려보시라. “그건 바로 음악이다.”

취향의 차이로 깊은 균열이 생겨도

별다른 종교를 믿지 않는 나조차 어떤 사람들을 보면 ‘저건 신의 솜씨야!’라고 감탄할 때가 있다. 이른바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 말이다. 마이클 조든이 농구를 하지 않고 야구만을 고집했다면? 리오넬 메시가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미 헨드릭스가 드럼을 쳤다면?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취직했다면? 다행히 신은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인적 자원의 효율적 분배라는 측면에서 보면 밴드는 그런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연아만 스케이트 신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류현진만 공을 던질 자격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주말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땀을 쏟는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모두 국가대표가 되려고 뛰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처음 음악으로 이끌어준 그 주옥같은 명반, 그리고 연주자. 조악하지만 단 한 순간이나마 그들과 같은 무대에 서 있다는 상상. 가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전세계에 산재하는 수많은 커버밴드(특정 밴드의 음악을 따라하는 밴드)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내 음악이 됐든 남의 음악이 됐든, 어쨌든 결론은 음악이다.

한국방송 <톱밴드>는 700여 개 밴드 중 단 한 팀의 밴드를 뽑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한국방송 제공

한국방송 <톱밴드>는 700여 개 밴드 중 단 한 팀의 밴드를 뽑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한국방송 제공

해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은 잘 안다. 더군다나 재능도 없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없는 돈과 시간, 기타 여러 가지를 등가교환해서 밴드를 한다.

그러나 이런 예술적 정열에 불타오르는 멤버만 모인 밴드에도 불화는 발생한다. 기본적으로 밴드는 각기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고 모인 것. 같은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도 미묘한 취향 차이가 있는 법이다. 단순히 음악 애호가이던 시절에는 존중해줄 수도 있는 취향의 차이도 같이 밴드를 하게 되면 끝을 알 수 없는 크레바스(빙하의 표면에 생긴 깊은 균열)가 되기 마련이다. 평론가들은 연주 잘하는 밴드에 대해 종종 ‘화학적 결합’이라는 수식어를 쓴다. 하지만 밴드 10년차 풋내기의 눈으로 보기에 밴드는 어디까지나 ‘물리적 결합’이다.

‘밴드 생활은 결혼 생활이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아직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임에도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다. 결혼 초기에는 TV 채널로 한참 다투다가 시간이 지나면 같이 TV를 보는 일조차 싫어지는 것 같은 상황이 밴드 내부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1980년대를 풍미한 한 록밴드의 기타리스트는 공연할 때 무대에 금을 그어놓고 보컬리스트에게 그 선을 넘어오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러나 이런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는 데는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음악 좀 똑바로 하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시 한번, 밴드를 결성하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함께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이다. 한때 예수보다도 위대하다던 비틀스는 끊임없는 불화 속에 10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그러나 ‘비틀스의 음악’은 아마 영원할 것이다. 결국, 모든 건 음악으로 환원된다.

게플의 순항은 음악 덕분이다

최근 방송 출연 뒤 ‘블로그 구걸’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방식으로 EP 앨범 재고를 청산한 ‘게이트 플라워즈’(이하 게플) 얘기를 좀 해보자. 게플 멤버 각각은 음악이 없었다면 절대 서로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연배도 달라, 사는 곳도 달라, 학교도 달라(기타리스트와 드러머가 초등학교 동창 사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듣는 음악이 전혀 달랐다.

2003년께 각기 다른 밴드를 하고 있던 보컬리스트와 기타리스트-드러머는 우연한 기회에 같은 클럽에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상대방의 음악과 음악적 기술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후 호시탐탐 합방할 기회만 노리게 되었다. 결국 2005년에 의기투합해 게플을 시작했을 때는 합주 한 번에 5곡 정도를 쏟아낼 정도의 에너지를 불살랐다. 그러나 과거 다른 밴드를 하며 음악적 배터리를 어느 정도 방전시킨 상태에서 만난 사이라 그런지 지속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앞에서 설명한 모든 절차를 속성으로 경험한 뒤 잠정 해체할 때까지 걸린 기간은 고작 1년.

다시 뭉쳐 밴드를 하게 되기까지 또한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7년 겨울, 보컬리스트와 드러머의 회동을 계기로 게플은 활동을 재개했다. 우연한 계기로 아무리 뭐라고 해도 화내지 않는 원만한 성격에 실력까지 갖춘 베이시스트를 영입하고 나서 게플은 다행히 지금까지 순항 중이다. 사실 수많은 위기 상황을 견디게 해준 실질적 원동력은 EBS ‘신인 발굴 프로젝트-헬로루키’를 필두로 한 뜻하지 않은 수상 경력이었지만, 그것도 음악을 보고 밴드를 재결성한 덕분 아니겠는가.

결국, 모든 건 음악 덕분이다. 고맙다 음악아.

박근홍 게이트 플라워즈 보컬·회사원




좋은 밴드란?
독창적인 사운드와 메시지로 무대 장악해야

<국카스텐>. 한겨레 박미향

<국카스텐>. 한겨레 박미향


‘좋은 밴드’란 무엇이며, ‘밴드의 매력’은 뭘까.
“밴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끌림, 사람을 달뜨게 하는 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방송 에서 예선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뮤지션 이한철씨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씨도 이한철씨와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밴드는 무대에서 음악으로 가장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밴드를 평가할 때는 무대에서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느냐, 그러니까 무대 장악력이 아주 중요하다. 설령 연주가 조금 틀리더라도 대단한 에너지를 발산할 경우 감흥을 받는다. ‘국카스텐’이나 ‘아폴로18’, ‘갤럭시 익스프레스’ ‘할로우 잰’ 같은 밴드가 무대 장악력이 강한 대표적인 밴드다.”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사운드의 독창성’을 첫손에 꼽았다. “얼마나 독창적인 메시지와 사운드를 들려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독창성이 없으면 연주력도 빛을 발하지 않는다. 연주력과 독창성이 조화를 이뤄야 완성도가 높은 밴드 음악이 나온다. 연주력은 밴드의 장르적 어법을 얼마나 충실히 보여주고, 그것으로 얼마만큼의 쾌감을 주는지의 문제다. 가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보다 무엇에 관해서든 심도 있고 남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음악은 충분히 매력 있다. ‘몽구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밴드는 서로 다른 악기가 음과 음 사이를 표현하며 만드는 오밀조밀한 맛이 있다. 그렇게 모자이크처럼 짜맞춰 거대한 벽화를 만들어내는 게 밴드 음악이다.”
밴드 음악은 ‘좋은 귀’를 가져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좋은 귀’를 갖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밴드의 음악을 많이 듣고 라이브 공연을 많이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귀를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록음악은 뿌리가 되는 음악부터 듣지 않으면 지금의 음악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맥락’이나 ‘참고’가 없는 밴드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울림이나 신중현의 음악을 듣지 않고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다.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밴드가 자주 다뤄지는 것에는 ‘긍정적’이라는 평이다. 김학선씨는 “록음악과 밴드 음악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데 미디어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정민갑씨는 “폭넓은 밴드 음악이 소개되는 건 긍정적 일”이라며 “더 많은 밴드가 소개돼 미디어가 록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밝혔다. 반면에 최근 늘고 있는 ‘아이돌 밴드’의 등장에는 모두 갸우뚱했다. “아이돌이라고 밴드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밴드라고 팝음악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스스로 곡을 만들지 않고 앨범이나 무대에서 직접 연주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과연 이들을 밴드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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