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토니와 페이 부부를 만난 것은 인도 여행을 할 때였다. 그들은 좀처럼 다른 여행객들과 섞이지 않았고, 우리 역시 그들의 남다른 포스 때문에 먼저 말 걸기조차 부담스러웠다. 페이는 심한 웨일스 억양을 가졌는데 몸이 자주 아파 신경질적이었고, 앞니가 위아래로 빠진 토니는 미안한 말이지만 간혹 부랑자처럼 보였다.
그들과 친해질 수 있던 유일한 이유는 그들의 딸 ‘인디아’가 우리를 잘 따라서였다. 7살인 인디아는 7년의 삶 절반을 인도에서 보냈다. 이름을 인디아라고 지은 것도 페이가 인도에서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인디아는 알파벳을 잘 읽지 못했지만 인도의 무수한 힌두교 신들의 신화는 전부 꿰고 있어서 가끔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3개월 만에 그들을 다시 만나기로 한 곳은 ‘선라이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영국 남부의 작은 마을이었다. 1년에 한 번 해가 가장 긴 하지에 열리는 4박5일간의 캠핑 음악 축제였다. 여행자들의 축제답게 사람들은 저마다 움직이는 집을 끌고 왔다. 영국의 전형적인 2층 버스를 집으로 개조한 것도 있었고, 오래된 기차의 일부를 트럭 위에 실어 만든 집도 있었다. 개성 있는 집들이 들판에 하나둘 모이더니 어느덧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뉴 에이지 트래블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트럭을 이용해 만든 집에서 지내며 자연에서 캠핑을 하고 그룹을 지어 공동생활을 했다. 농장에서 일하거나 철 따라 옮겨다니며 적은 돈으로 생활했다. 여행자의 삶을 택한 그들의 공통점은 한 곳에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곳에 속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뜻이 다할 때까지 속해 있고 다시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운영자들을 찾아가서 페스티벌 기간에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하루 3시간 쓰레기를 줍는 것이었고, 대신 스태프들의 캠핑장을 이용하고 공짜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90파운드의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됐다. 절호의 조건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쓰레기를 줍다 보면 캠핑장은 밤새 광란의 파티를 보낸 사람들이 흘린 물건으로 가득했다. 첫날 다리오는 20파운드짜리 지폐를 주웠고, 나는 엄지손가락만 한 크리스털 목걸이를 주웠다. 생각보다 짭짤했다. 우리와 한 팀을 이룬 쓰레기 당번들이 있었으니, 유럽 전역의 페스티벌을 돌며 일하는 나이 든 히피와 프랑스에서 온 빈털터리 두 남자(담배 살 돈도 없어 꽁초를 주워 피웠다), 그리고 영국의 개념 없는 10대들이었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일은 배로 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물건을 다 버리고 떠났다. 쓰레기 더미에서 빈털터리 프랑스 남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과일과 따지도 않은 캔 음식 등을 커다란 가방에 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 미쳤어. 이 모든 것을 왜 버리고 가지? 물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 역시 산처럼 쌓인 쓸모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사람들이 버린 멀쩡한 캔 음식을 챙겨 토니의 차에 실었다. 네 사람이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음식이었다. 며칠 밤을 지낸 텐트조차 접기 귀찮았는지, 버려진 텐트도 수십 개나 되었다. 그중 작고 꽤나 튼튼한 텐트 하나를 주웠다. 우리는 그 텐트를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토니와 페이는 맨체스터에 있는 집으로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짐을 잔뜩 실은 소형차에는 자리가 없었지만 나와 인디아가 끼어 앉을 수 있었다. 다리오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손에 쥐고 따로 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도착하지 않았다. 별들에게 물어보니 다리오는 안전하며 내일 아침에 도착할 거라고 대답했다고 인디아가 전해주었다. 인디아가 전해준 별들의 말대로 다리오는 다음날 아침 7시 집 앞에 와 있었다. 중간에 버스가 끊겨 터미널에서 노숙인들과 하룻밤을 보냈다고 한다. 그나저나 별들과 대화가 가능한 인디아가 부러웠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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