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일어난 야릇한 일들 가운데 하나라면, 허허벌판과 공중전화 박스에서 잠을 자는 무일푼 히치하이커 얘기를 생각해냈더니 출판사가 거금을 들여 세계 곳곳에서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벌이며 문을 몇 개나 열어야 침대가 나오는 호텔방에서 나를 재운다는 사실이다.” 공상과학(SF) 소설 팬이라면 이런 푸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런 말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면, 곧이어 럭셔리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질 것도 눈치챘으리라.
로 유명한 소설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1985년 어느 잡지사의 의뢰로 멸종 위기에 놓인 여우원숭이 ‘아이아이’를 취재하러 마다가스카르섬에 간다. 어쩌다 보니 여기에 코가 꿰였고, 3년 뒤부터는 〈BBC〉 라디오 시리즈를 위해 전세계의 멸종 위기 동물들을 찾아나선다. 그 놀라운 탐험기가 이 책에 펼쳐진다. (홍시 펴냄)라는 책의 제목도 그렇고, 프로젝트의 취지도 그렇고, 뭔가 위기에 처한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진한 감동을 줄 것 같지 않나? 그런 예상은 첫 장에서 뒤집어진다.
더글러스는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있는 코모도왕도마뱀을 시작으로 멸종 시계 자정 1초 전의 동물들을 방문해간다. 살아남은 개체 수가 손으로 꼽을 지경이니 얼마나 희귀하겠나? 또 얼마나 희한한 곳에서 살고 있겠는가? 이들의 여정은 지구상 최악의 오지들만 골라서 가는 고난의 행군이 된다. 보통의 학자나 저널리스트라면 그런 고생이야 두 눈 질끈 감고 일기장에나 기록해둘 것이다. 그래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무용담을 풀어내 팬들의 배꼽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코믹 SF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작가에게 그런 인내는 무리였다. 그는 애초에 멸종동물 보존에 관심이 있었느냐 싶을 정도로 자신의 고생담을 시시콜콜 전해준다.
그가 찾아가는 모든 곳, 거기서 만나는 온갖 사람들은 정말 굉장하다. 하나같이 이렇게나 현대 문명의 상식과 어긋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동물의 배설물만 보면 사바나에서 잡지라도 발견한 듯 환장하는 생물학자, 특공대원에게 군복만 빌려입은 주제에 심심할 때마다 밀렵꾼을 쏴죽인다고 뻥치는 가이드, 자이르에서는 국내선도 세관 신고를 해야 하고 입국한 곳으로만 출국할 수 있다며 달러를 요구하는 관리, 계기판의 절반은 고장난 것 같은데 정글 사이로 무시무시한 곡예비행을 하며 새집의 알을 세어보겠다는 경비행기 조종사….
게다가 그들 하나하나가 더글러스 못지않은 허풍쟁이에 수다꾼들이다. 지구상에서 코모도섬에 독사가 가장 많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멜버른의 독 연구 박사는 말한다. “지겨워. 빌어먹을 것들. 사람이나 물고 말이지. 독사에게 물리면 어떻게 하냐고? 애당초 물리지 말라고! 그게 정답이지.” 그래서 더글러스가 묻는다. “독을 가진 것 중에 좋아하는 게 있으세요?” “있었지. 하지만 그녀는 나를 떠났어.” 이건 거의 시트콤이다.
물론 더글러스는 단지 웃기기 위해 그 고생을 감내한 것도 아니고, 코믹 여행기로 돈 좀 벌어보겠다고 이 책을 쓴 것도 아니다. 그는 진지한 대의를 위한 생생한 체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런데 이 현실이 눈물 반, 웃음 반의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타리를 치고 감시자를 상주시킬 자금은 어디에서 마련하나? 지역 주민들에게 이들을 살려둠으로써 생겨나는 경제적 이익이 밀렵과 개발보다 크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나? 관광객과 언론을 끌어들여 이 동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코모도도마뱀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염소 새끼를 꼬치에 매달아 살육 쇼를 벌인다. 의심 많은 흰코뿔소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섯 명이 기차놀이를 하며 하나의 동물처럼 보이게 한다. 양쯔강에 살고 있는 돌고래의 소리를 녹음하려고 마이크에 씌울 콘돔을 찾아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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