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사이에 냉장고 요정이라도 다녀갔기를 간절히 바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역시 기적이 일어났을 리 없지. 버터 칸의 얼룩과 야채 칸의 말라 비틀어진 찌꺼기에서 뭔가 자라기라도 했기를 바랐건만.”
스테파니 플럼은 딱 에 나올 만한 여자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지만 강 건너 맨해튼에 가면 단번에 레이첼, 모니카, 피비와 친구가 될 법하다. 나이 삼십 줄에 들어섰지만 외로운 독신 생활, 직장에서 잘린 뒤 공과금 체납으로 전화가 끊어질 지경, 한 끼 식사를 때우려고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 노골적인 결혼 압박이 밀려온다. 본인도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하긴 했지만, 돈만 많다고 들이대는 이혼남에 짜증이 확 밀려온다. 이렇게 궁상스러운 모습이 와 닮았냐고? 그렇긴 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그녀의 왁자지껄한 삶에 깃든 놀라운 유머감각이 딱 시트콤이다.
… 시리즈 제목에서 눈치챘을 분도 있겠지만, 스테파니 플럼은 탐정이다. 정확히 말하면 현상금 사냥꾼에 가까울까? 아니다. 너무 거창하다. 사실은 보석금을 내고 임시로 석방된 범죄자들이 법원에 출두하지 않았을 때, 그들을 붙잡아 넘기는 역할이다. 액수는 보석금의 10%로 10만달러짜리 범죄자면 1만달러가 떨어진다. 신용불량 여성의 눈을 돌아가게 할 만한 액수지만, 당연히 오냐오냐 따라가줄 범죄자는 없다. 그러니 계속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며 배꼽을 잡게 한다.
첫 번째 목표는 조셉 모렐리. 범죄자 수사 과정에서 살인을 저지른 경찰이라는 정도는 좀 뻔한 설정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 모렐리가 병원 놀이와 자빠뜨리기로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에게 여자로서의 중요한 경험을 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고선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 아직도 모렐리 이야기를 하면 그 사건에 대해 듣게 한다.
모렐리는 이런 몰지각한 과거를 지녔고 지금은 중죄를 저지른 뒤 쫓기는 범죄자지만, 마을의 모든 여성을 들뜨게 만드는 무지막지한 섹시가이다. 스테파니 역시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 쪽이 먼저 이 남자를 잔뜩 도발한 이후의 일이다. 어떤 식의 도발이냐 하면, 모렐리를 쫓는 수단으로 그의 차를 훔쳐 돌아다닌다든지 하는 짓이다. 물론 그녀의 변명은 작가 특유의 말발로 장식된다. “훔치는 건 아냐. 나는 현상금 사냥꾼이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차를 징발할 권리가 있을 거니까.” 제멋대로 갖다붙이기 좋아하는 여자다.
작가는 스테파니 풀럼 시리즈로 범죄작가협회(CWA)가 주는 유머미스터리상을 받았다. 이런 분야의 상이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지는데, 만약 그 협회에서 코미디캐릭터상을 준다면 이 시리즈에서는 스테파니의 할머니가 유력한 수상 후보로 보인다. 할머니는 그녀가 집에 놀러올 때마다 엉뚱한 소리로 반기며 시트콤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다. 손녀가 별 생각 없이 딱 달라붙는 자전거 경주용 반바지를 입고 오면 그걸 질투하며 자기도 그 옷을 입고 싶다고 한다. 저녁 식사 손님에게 손녀가 ‘현상금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며, 그녀가 핸드백에 넣어두었지만 손도 잘 못 대는 권총을 꺼내 저녁 식탁에 대고 쏘아댄다.
그렇다고 스테파니가 유머에서 할머니에게 밀리는 건 아니다. 그녀는 추리소설의 역사에서 가장 호들갑스러운 탐정 중 하나며, 끊임없이 상상력 넘치는 농담을 내뱉는다. 거기에는 그 지역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생활감과 비딱함도 한몫한다. 훔친 자동차를 주인에게 뺏기지 않기 위한 노하우를 실천하며 말한다. “뉴어크 공항에 한 번이라도 장기 주차를 해본 사람은 배전기 캡을 제거할 줄 알았다. 돌아올 때까지 차를 도둑맞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녀의 삶은 언제나 실수투성이, 그럼에도 매력덩어리. 생활력은 바닥이지만 생존능력은 탁월하다. 누구나 카페에 그녀가 나타나면 푹신한 소파 자리를 양보하고 그 시니컬한 무용담을 듣고 싶어할 것이다. 제법 야하기까지 하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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