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만화가를 꼬집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신랄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살짝, 아주 살짝 기분 나쁠 정도로 비꼬았다. 그런데 흥분한 만화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쓴 거요? 이거 무슨 공상과학만화도 아니고.” 그때 나는 작가가 항의 전화를 걸어왔다는 사실보다 그 ‘공상과학만화’라는 말의 뉘앙스에 놀랐다. 이 사람은 스스로 만화를 그리면서도 ‘공상과학만화’라는 걸 참으로 하찮게 보고 있구나.
나는 그 만화가에게 야나기타 리카오의 (대원씨아이 펴냄)이라는 책을 선물로 보낼까 잠시 생각했다. 그가 터무니없고 가치 없는 것의 대표로 치부하는 공상과학의 세계를 제대로 난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뒤, 아니다 싶었다. 야나기타는 공상을 과학으로 해부하지만 그 만화가와는 달리 뜨거운 사랑과 열린 유머로 보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괜히 책을 보냈다가 그 만화가가 자주 그랬듯이 은근슬쩍 베끼는 일이라도 생길까 두렵기도 했다.
최근 야나기타의 놀라운 연구들이 시리즈로 나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절판되면서 책의 제목이 바뀌고 내용도 다채로워졌지만 방법론은 언제나 같다. 공상과학 드라마·영화·만화·애니메이션 작품에 나오는 놀라운 설정과 상황들을 진짜 과학의 눈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이게 참 심심할 때 까먹기 좋은 사탕이다.
특수촬영물의 대명사 이 변신해서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단지 3분이다.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줘서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서기도 하고, 특수촬영 제작비를 아끼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 ‘3분 제한’에 시비를 걸고 나선다. 각종 괴수도감에 따르면 울트라맨은 마하 5로 날고, 시속 450km로 달리고, 200노트로 헤엄칠 수 있다. 굉장한 속도지만, 누군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곳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제한시간 3분으로는 도쿄역에서 달리기로 출발하면 신요코하마역에 겨우 닿는다. 바다로 헤엄쳐 가면 겨우 19km 지점, 도쿄만에서 뛰어들었다면 요코하마 항구 앞에서 꼴까닥하고 만다. 날아서 간다면 나고야까지 갈 수 있는데, 도착할 때쯤이면 변신이 해제돼 적과는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할 지경이다. 지구의 안전을 책임지기는커녕 일본도 커버할 수 없다.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그로이저 엑스처럼 점점 거대화되는 로봇도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신장 18m, 체중 20t의 마징가 Z는 초속 15m의 바람만 불어도 넘어져버린다. 63빌딩 크기의 로봇이 전광석화 같은 이단옆차기를 날릴 때 필요한 에너지는 어떻게 하고, 그 여파로 생기는 충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로봇이 타격을 받으면 주인공이 똑같은 고통을 받는 설정도 점점 진화하고 있지만, 왜 사서 고문을 받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최근 ‘도라에몽은 왜 귀가 없을까’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으는 걸 보았다. 데뷔 40년을 넘긴 장수 명랑 공상과학만화의 상상력은 여전히 초딩들을 들뜨게 할 만한가 보다. 그렇다면 잘난 척하는 삼촌이 돼보자.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데, 하며 과학의 잣대를 들이밀어볼까? 도라에몽은 소년 노비타에게 ‘어디로든 문’이라는 걸 보여준다. 문만 열면 바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놀라운 미래의 발명품. 오늘도 출퇴근 지옥철에 시달리는 분들에게는 꿈의 장치겠지만, 이걸 실제로 적용시키면 좀 곤란한 일이 벌어진다. 문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차례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동 중에는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어쩌면 내시경을 겸하는 용도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집요하진 않아도 저런 의심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 같다. 나도 대학 시절 만화 에 황금으로 만든 거대 로봇이 나오는 걸 보고 금속공학과 친구에게 물어본 적 있다. “저게 가능한 거야?” “야, 금의 비중이 얼마나 높은데. 만들자마자 허물어져버릴걸?” 공상이 무턱대고 상상하면 과학이 따끔하게 꼬집는다. 창작과 비평의 두 바퀴와 닮았다.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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