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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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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말하는 뼈다귀라면?



<슈렉> 원작자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동화책에서 찾는 인생의 페이소스
등록 2010-12-01 15:37 수정 2020-05-03 04:26

나는 오래전부터 이 사회의 ‘삼촌’으로 살아가고자 마음먹었다.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분법의 경계선상에 서 있자는 거다. 아이들에게는 마음 편히 웃고 떠들 수 있는 어른 친구가 필요하고, 부모들에게는 도대체 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봐줄 첩자가 필요하다. 나로서는 어떤 이득이 있는가?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핑계로 꼬맹이들의 장난감을 마음껏 만지고 사고 모을 수 있다.

<부루퉁한 스핑키><멋진 뼈다귀>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부루퉁한 스핑키><멋진 뼈다귀>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이번주의 웃음 혈당치를 위해 윌리엄 스타이그가 만든 세 권의 그림 동화책을 꺼내놓았다. . 동화책이라고 얕봐서는 안 된다. 이거 살짝살짝 웃음보를 찌르면서, 어른만이 느끼는 건 줄 알았던 인생의 페이소스를 건드린다. 조카와 놀아준다고 누나 돈으로 애니메이션 보러 가서, 극장이 떠나가라 깔깔대는 기분이랄까?

치과의사인 드소토는 쥐다. 타고난 성실함에 실력도 갖추었지만, 작은 몸집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돼지가 찾아오면 사다리를 타고 입안에 들어가고, 당나귀가 입을 벌리면 도르래를 이용해 영화 처럼 입속으로 침투한다. 이때의 디테일이 또 멋지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발이 젖지 않도록 고무장화를 신었답니다.” 그러나 그의 치과가 모든 동물을 환영하는 건 아니다. 치과의 간판 밑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고양이나 사나운 동물은 치료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 병원 앞에 치통을 앓고 있는 여우가 찾아왔다. 턱을 붕대로 칭칭 감은 채 서 있는 가련한 모습이라니. 미안하다. 나란 인간이좀 나쁜 동물이다. 남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고 있다. 고민 끝에 여우를 환자로 받아들인 드소토 부부. 악취로 가득한 입을 벌리게 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양쪽의 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치료만 해줘도 감지덕지할 것 같던 여우가, 점점 이가 나아지자 치료만 끝나면 새 이빨의 성능을 시험해볼 기세다. 드소토 부부의 대응도 만만찮다. “입 벌려요.” “더 크게 벌려요.” 마취제를 쓰고, 지지대를 고정한다. 그러면서 새로 갈아넣을 금니를 밤늦도록 갈아놓는 정성이라니…. 결국은 꾀를 내어 여우를 물리친 드소토 부부. 그 끝도 유쾌하다. “그들은 서로 입을 쪽 맞추고 나서, 그날은 푹 쉬었답니다.”

는 가족들이 모두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며 삐쳐버린 소년의 이야기. 집 마당으로 소박한 가출을 한다. 온 가족이 매달려도 쉽게 마음을 돌려먹지 않는 모습이 딱 꼬맹이 같다.

는 분홍 원피스를 입은 소녀 돼지 펄이 ‘말하는 뼈다귀’를 숲 속에서 주우면서 겪는 모험 이야기. 사건도 흥미롭지만, 그림 속에 등장하는 온갖 동물들의 표정이 다채롭고 유쾌하다. 펄이 그 통통한 몸매로 다리를 꼬고 소녀풍의 감상에 젖어 있는 모습도여느 동화에서 만나기 어려운 장면이다. 여기에 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나쁜 여우가 등장하는데, 또 어떤 식으로 혼쭐이 날지?

윌리엄 스타이그는 1907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났다. 소심하면서도 자기 일에 열심인 를 보면 딱 유대인 의사 생각이 난다. 젊은 시절 그는 의 카투니스트로 맹활약했는데, 동화책에서도 숨길 수 없는시니컬한 유머의 감수성은 이런 세계와 통하는 듯하다.

그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에 뛰어든 것은 예순 살이 넘어서였다. 이때부터 뉴베리상을 비롯해 그림책과 관련된 상은 모두 휩쓸었는데, 그래도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의 원작 동화일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버전도 사랑스럽지만, 나는 원작에 나오는그 까칠까칠한 캐릭터들에 훨씬 큰 매력을 느낀다.

스타이그가 자신의 딸과 즐겨하던 놀이가 있었다고 한다. “만약 네가 무엇이라면?”이라며 무엇에 대해 말하는 거다. 만약 네가 뼈다귀라면? 만약 네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동화 주인공이라면? 딸에게 가르침을 주는 놀이였지만, 사실은 자신이 더 재미있어하지 않았을까?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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