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게 큰 사이즈의 매트리스를 샀다가 좁은 침실에서 주체를 못하게 되었다. 잔머리를 굴리다 내린 결론은, 싱글 매트리스 위에 퀸 매트리스를 올려 쓰는 것. 큰 쪽이 라텍스라 좌우가 마치 볼링장의 도랑처럼 움푹 들어간 형태가 된 것이다. 어차피 혼자 쓸 것이니 상관없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뭔가 이상했다. 내가 그 도랑에 폭 파묻혀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묘했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굴러 떨어진 것도 아닌 상태. 옴짝달싹 못하는데도 편안했다. 이 상황과 같은 기막힌 책을 읽기에 딱 좋은 자세였다.
크리스토퍼 무어가 쓴 (푸른숲 펴냄)의 주민들은 모두 나처럼 도랑에 드러누운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경찰관 시오는 대마초에 취해 무기력하게 마을을 순찰할 뿐이었고, 왕년의 B급 영화 여주인공 몰리는 인조인간 같은 몸을 이끌고 행패를 부리고 있었고, ‘민달팽이 머리 술집’에는 블루스 가수를 모집한다는 맥 빠진 전단이 팔랑거렸다. 베스 리앤더 부인이 집 안을 완벽하게 청소한 뒤 자살했지만, 신출내기 응급구조대원에게 약간의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킬 뿐이었다. 정신과 의사 밸 리어든이 1500명에게 이런저런 항우울제를 처방하고 있던 마을. 파인 코브는 적당한 침울로 가라앉아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스티브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미국 아이들은 베이컨 튀기는 냄새에 이끌려 침대에서 튀어나온다. 거대한 도마뱀 스티브는 디아블로 협곡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 파이프에서 새어나온 방사능 증기 냄새에 눈을 떴다. 오래전, 침몰한 러시아 원자력 잠수함에서 ‘깊은 수심의 압력에 의해 육질이 연해지고 입맛을 돋우는 방사능성 양념에 절여진 근육질의 조그마한 선원들을 먹어치웠던’ 기억을 떠올렸던 것이다. 도마뱀은 돌묵상어, 돌고래, 참치 100여 마리로 배를 채운 뒤에는 여자를 찾아헤맨다. 그리고 주유소 앞에서 요염하게 골골거리고 있는 암컷을 범한다. 문제는 그 암컷이 연료 트럭이었고 그의 사정으로 인해 대폭발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 도마뱀은 약간의 상처를 입고 휴식에 들어간다. 공룡이 아니라 도마뱀이었던 이유가 있다. 그는 근사한 트레일러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정신과 의사 밸은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환자가 자살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책상 위에 있는 히포크라테스에 대고 말한다. “고의로 환자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어. 절대 없다고. 이 남색이나 즐기는 늙은이야. 우울증 환자 15%는 치료를 받든 안 받든 자살하려 든다잖아.” 밸은 환자들의 항우울제를 모두 위약으로 교체한 뒤 진짜 치료에 나서기로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의 부작용인지, 방사능 도마뱀 때문인지 온 마을에 성욕이 넘쳐흐르게 된다.
어느 모로 보나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인간들이 가득한 마을. 코브 마을의 도마뱀 습격 사건은 만화 의 극장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능청맞은 허풍과 재치 넘치는 문장 너머에는 더 깊은 것이 있다. 온갖 인생의 딜레마를 어루만지는 질척한 블루스 말이다. 그런데 슬퍼지려 작정하니 더 웃겨지는 블루스다.
민달팽이 머리 술집의 여주인 메이비스는 지난 2년간의 시원찮은 매상의 원인을 깨달았다. 주변의 경기 호황, 채소 섭취, 정신과 의사의 항우울제로 인해 손님들의 ‘슬픔’이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슬픔을 퍼뜨리기 위해 블루스 가수를 모집하게 된다. 그래서 등장한 캣피쉬. 그런데 이 남자가 블루스를 만들기 위해 벌인 사건들이 가관이다. 그에게는 스마일리라는 음악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이름대로 언제나 싱글벙글하는 녀석이었다. 슬픔이 질질 흘러나와야 블루스가 되는데 어찌 그런 마음으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스마일리가 블루스를 깨닫게 하려고 그의 개를 치어 죽이고 부인을 속여 범하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기 위해 500달러의 상금이 걸린 메기를 잡으러 나섰다. 그래서 잡게 된 괴물 메기는 알고 보니 지금 이 마을을 덮치고 있는 도마뱀의 가족이었던 것. 스티브의 복수극은 그에게 진짜 블루스를 선사하게 될까?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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