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대학 메디컬센터에는 다람쥐와 새가 노니는 멋진 교정이 있다. 아쉽게도 일반인은 캠퍼스에 들어갈 수 없는데, 딱 하나의 방법이 있다. 자신의 주검을 기증하면 된다. 그러면 주검의 부패 과정 연구를 위한 교보재가 되어 교정 여기저기에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땅에 얕게 묻히거나, 인공 연못에 빠뜨려지거나, 콘크리트 속에 갇히거나.
다행히 메리 로치는 살아 있는 상태로 이곳을 다녀왔다. 논픽션 (세계사 펴냄)을 집필하기 위해서다(한국에서는 라는 제목으로 2004년 출간됐고, 올해 같은 번역자에 의해 개정판 이 나왔다). 이 책은 인간이 사망 선고를 받고 난 뒤에 그 ‘시체’가 처하게 되는 또 다른 운명들을 찾아간다. 그녀는 핏물 위로 벌레들이 춤을 추는 법의학 현장에 입회하고, 해부학 실습용이 된 코가 떨어져나간 주검을 위로하고, 중국에 남아 있다는 ‘식인만두’를 찾아간다. 금기 중에도 이런 금기가 없다. 그러나 작가는 돌파했고 비위 약한 나도 읽게 만들었다. 이 모두가 놀라운 유머의 힘이다.
주검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순간을 이겨내는 노하우를 밝힌다. “저는 이렇게 해요. 밀랍이라 생각하는 거죠.” 좋은 방법이다. 마담 투소의 박물관(밀랍인형박물관)을 방문했다고 생각하자. 나도 ‘CSI’류의 법의학 드라마를 볼 때 ‘저건 특수효과야. 인형 정말 잘 만들었네’라고 되뇐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눈앞에 뒹굴고 있는 주검 조각들을 보며 자기 최면을 시도한다. “여기는 고무가면 공장이야.” 핼러윈 파티를 위한 가면, 이가 빠진 노인의 인형, 피부가 벗겨진 괴물 장식이라는 것이다. 속아 넘어가기 쉽지만, 사실 작가는 그 장면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외면하는 척하면서 자기가 목격한 바를 독자의 머리에 바늘로 새긴다. 신기하게도 이런 묘사가 꼼꼼할수록 그 장면이 객관화되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마치 주검의 배를 잘못 눌러 가스가 분출되듯이….
의 유머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로치 여사는 이 놀이를 즐긴다. 그녀는 ‘인간 분해’ 전문가인 바스 박사에게 묻는다. 이런 일을 할 때 기분이 어떠하냐고. “어떤 기분이라뇨?” 그가 되묻는다. “간을 자르다가 쏟아져나오는 온갖 애벌레를 뒤집어쓰고 내장에서 국물이 튈 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생생하게 말해달라는 얘깁니까?”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약간의 위악과 허풍도 허용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은 주검의 성기가 아주 크다고 키득대며 불편함을 이겨내려고 한다. 사실은 방부제 때문에 성기의 발기 세포가 자극을 받은 것이란다.
물론 취향이 독한 이들에게 웃음을 주자고 금기를 건드리는 건 아니다. 작가는 우리가 ‘경건하게’ 외면하고 달아났던 소재를 자발적으로 탐구했고, 그 과정에서 진실과 범벅이 된 아이러니들을 만났다. 논픽션이기에 그것은 기록돼야 했다. 작가에게는 그런 상황들을 아주 능청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을 뿐이다.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의학 발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신체를 기증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머리가 성형수술의 실습 대상이 돼 미용학원의 마네킹처럼 굴러다닌다는 사실은 씁쓸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물론 반대의 움직임도 있다. 요즘은 해부 실습용 주검을 더 경건하게 다루기 위한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검에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준 뒤 칼로 베면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위로해준다나.
밑바닥의 아이러니는 이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고, 그 몸은 남는다. 대통령과 록 스타의 주검도 썩기 마련이고, 방부 처리를 해봤자 말라 비틀어진 인형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그 엄혹한 진실과 맞닥뜨려야 하고, 그러려면 ‘유머’라는 당의정을 먹어야 한다. 아니다. 사실 먹을 필요도 없이 몸 안에서 분비된다. 주검을 두려워하는 것은 ‘생리적 공포’고,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생리적 유머’다. 이 사실이야말로 논픽션이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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