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게으름은 발명의 친척 아주머니쯤 돼 보인다. 오랫동안 독수공방해온 아주머니는 나이도 지긋해서 이제 아이 낳을 가망은 전혀 없다. 그러나 오지랖은 넓어 방 안을 뒹굴뒹굴거리면서 이래저래 짝짓기도 해보고 중매도 서본다. 그래서 가끔은 그럴싸한 혼사를 이뤄내 발명이라는 아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요네하라 마리의 는 딱 그런 모양새다.
책 표지에는 ‘궁극의 상상력’ 어쩌고 하는 카피가 적혀 있는데, 솔직히 지나친 과장이다. 돌 맞을 각오를 하고 말하면, 요네하라의 아이템들은 전형적인 ‘여자의 발명품’이다. 공상과학(SF) 애니메이션 설정 자료집 좀 뒤져본 소년들의 눈에는 한심해 보이는 것 투성이다. 잃어버린 물건의 위치를 추적해주는 유실물 내비게이션, 화면발 살리는 꽃미남 필터, 머리에 쓰는 우산 같은 것들은 누구나 할 만한 발상이다.
라는 타이틀을 걸려면 아이디어가 아주 기발하든지, 디테일이 확실하든지, 너무 터무니없는 것을 실제로 만들어서 사용한다든지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네하라 여사는 발명가가 될 수 없었고, 되려고 하지도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무리 원고 마감에 쫓기는 생활에 불평을 늘어놓아도 글만 써서 먹고사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이 책이 그 증거다. 정말 별것 아닌 발상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야기를 읽게 만드는 재주만큼은 확실하지 않나.
그 재주의 기초는 다른 사람의 유머 감각을 캐치해내는 탁월한 능력이다. 애연가던 그녀 아버지의 우아한 궤변. “뇌세포가 너무 빨리 돌아가니까, 다른 사람들과 맞추려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잖아.” 18세기 바그다드의 잡지사는 투고된 엉터리 글을 돌려보낼 때 다음과 같은 편지 양식을 썼다고 한다. “옥고와 같은 명작은 만 년에 한 번밖에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드뭅니다. 그리 되면 당사는 잡지를 발행할 수 없어 도산하고 말 것입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진심으로 무언가를 발명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발명을 한답시고 세상의 여러 엉터리 같은 물건, 사람, 정책 등을 비꼬는 일이 많다. 허례허식의 대명사인 거창한 장례식, 화장장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이기주의, 진실성 없는 조문 등 장례에 대한 비판 의식도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만들어낸 게 초간단 장례식과 전화기가 설치된 무덤이다. 영구차에서 바로 화장돼 묘지에 도착할 때쯤에는 유골로 나오는 시스템, 힘들게 찾아갈 것 없이 전화를 걸면 지하에 매설된 스피커를 통해 죽은 자에게 조문의 말을 전하는 장치 같은 것들이다.
발명이란 건 전화기, TV, 원자폭탄처럼 제품화되는 아이템에 한정되지 않는다. 1인1표의 투표 제도도 발명이고, 신용카드로 돈을 빌려 결제하게 해서 이자를 쪽쪽 빨아먹는 것도 발명이고, 식탁에서 떨어진 음식을 3초 안에 먹으면 괜찮다는 ‘3초 룰’도 발명이다. ‘제품’보다 ‘정책’의 발명에 좀더 활기찬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 요네하라 여사의 특징이다.
얼마 전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에서 위용을 과시해 주변국의 신경을 날카롭게 했는데, 2008년 이 항공모함의 모항(母港)을 요코스카로 제공하는 데 일본 내에서 큰 반발이 있었나보다. 두 개의 원자로를 가진 항공모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이 오랫동안 지켜온 ‘비핵 3원칙’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요네하라라면 조지 워싱턴의 입항을 저지하기 위한 실력 행사로 해저에 무수한 암초를 깔라고 제안했을 것이다. 에서 그는 ‘내진 구조 계산을 위조한 건물’을 추천했다. 지역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불법 건물들을 바다에 매립해 위험천만인 원자력 항공모함의 접근을 막는다면 그야말로 일거양득, 이상적인 재활용의 적절한 실례라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은 터무니없지만 위험하지 않다. 웃자고 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상의 발명품들이 우리 국회와 시청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차마 웃으며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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