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히레사케가 최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찬바람이 무릎 연골을 시큰거리게 만들 때면, 척수까지 시리게 하는 맥주가 그만이다. 어딜 가도 있고 아무나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맛없다. 히레사케는 지겹다. 평범하다. ‘세류’에 따라 여름에 맥주를 마시고 겨울에 히레사케를 마신다면 ‘아류’다.
이런 멋진 말을 한 선배도 있다. “‘일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허영처럼 보인다. ‘이류’ ‘삼류’의 콤플렉스가 묻은 자학은 소모적이다. 이류, 삼류보다 치명적으로 낮은 등급은 ‘아류’다. 창조적인 편집자가 되는 과정은 바로 ‘아류’를 극복하는 태도와 궤를 같이한다. …다중에게 권위를 부여받은 스타일은 참고의 대상일 뿐이다.” (고경태 )
술 하나 고르는데 아류, 삼류를 따지며 미식가연하는 것이 오히려 미식 열풍에 저열하게 영혼을 파는 것 아니냐는 독자도 있겠다. 그럼 이렇게 말을 고쳐도 된다. 남들과 반대로 하는 일은 ‘맛있다’.
왜 ‘발리와인’을 담그게 됐는지 설명하려고 멀리도 돌아왔다. 레드와인도, 화이트와인도 아니다. 복분자와인도 아니다. 발리와인이다. 인도네시아 맥주 ‘빈탕’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들어진 맥주구나”라고 오해할지 모른다.
‘보리(barley)로 담근 와인(wine)’이다. 인도네시아 발리와 상관없다. 발리가 환상의 휴양지인 것처럼, 맛이 환상적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영국 에일 가운데 하나로 와인처럼 도수가 높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알코올 도수가 8~12도에 이른다니 ‘소폭’(소주폭탄) 수준인 셈이다. 향이 풍부하고 질감이 막걸리에 가까운 풀보디(액체의 걸쭉한 정도)라 겨울에 딱이란다. 발리와인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 크세노폰의 책 에 처음 나온다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한다. 발리와인은 대부분 호박색이나 적갈색으로 도수만큼이나 색도 진하다.
지난해 여름 자가맥주빚기(홈브루잉)에 도전했다. 내 술맛을 본 사람들로부터 “올해는 술 안 담그냐”는 지청구를 꽤나 먹었다. 재수없는 자랑질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빚은 술은 꽤 마실 만했다. 홈브루잉을 조금 아는 사람 앞에서 내 자랑질은 꼬리를 내린다. ‘자가맥주’란 말은 거창하지만 조리법은 단순하다. 물을 끓인다 → 영국에서 수입한 몰트(맥아) 원액을 물에 푼다 → 효모를 뿌린다 → 발효시킨다. 영국이나 유럽 등 맥주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홈브루어를 위해 몰트 원액을 캔에 넣어 판다. 조금만 관심을 쏟으면, 사실 실패하기가 더 어렵다.
그때 사둔 발리와인 원액캔 위에 1년 동안 먼지가 꽤 쌓였다. 만지작거리던 발리와인 원액캔을 어제 구석에서 집어들었다. 찬바람이 불면 맥주가 딱이다. 옆구리가 시리도록 찬바람이 불면 맥주가 그만이다. 통장은 한없이 가볍고 퇴근한 뒤 컴컴한 방에 들어가 스스로 불을 켜는 일이 슬슬 지겨워지는데다 찬바람마저 불면, 아 글쎄 히레사케보다 맥주가 딱이라니까.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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