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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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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은 겨울산이다

높고 추운 곳에만 있는 영혼을 위로하는 풍경…

단단하게 준비한 ‘모험’ 길에 서서 ‘완벽한 기쁨’을 얻으리라
등록 2010-12-01 16:22 수정 2020-05-03 04:26

콧속으로 들어오는 얼어붙은 대기가 가슴속까지 헹궈버릴 듯 청량한 날. 쌓인 눈으로 길이 지워진 능선에 첫 발자국을 찍어 새 길을 내며 걸었다. 귓전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발자국 소리만이 적막한 산길에 메아리를 만들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발디딤에 집중할수록 목탁 소리처럼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 나는 고행의 수도자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호젓한 겨울산에는 이런 몰입의 즐거움이 더 크다. 무아의 경지로 걷다 문득 고개를 들면 눈앞에는 고사목과 앙상한 겨울나무 빈 가지에 눈부시게 피어 있는 상고대, 저 멀리 차고 투명한 대기 속으로 파도처럼 넘실대는 산줄기의 물결. 일상의 저잣거리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도 남는, 높고 추운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들. 그래서 산은 겨울산이다. 
목탁 소리 같은 ‘뽀드득’ 소리

지리산 촛대봉에서 세석대피소 가는 길. 동이 터오고 있다. 김선미 제공

지리산 촛대봉에서 세석대피소 가는 길. 동이 터오고 있다. 김선미 제공

장터목산장 따뜻한 침상에서 단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서둘러 어둠 속으로 걸어나간 새벽이었다. 장터목에서 묵은 사람들은 삼대가 적선을 해야 겨우 만날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길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전날 백무동에서 출발해 이미 천왕봉을 다녀왔고, 지리산 정상 일출은 여러 번 보았으니 음덕이라면 분에 넘치도록 받은 터였다. 그보다 요즘 지리산은 겨울에도 사람이 많아 호젓하게 걸으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멀고 높은 산에서까지 줄지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새벽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별빛은 고드름처럼 차가웠다. 별빛에 머리를 두들겨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연하봉에서 삼신봉을 지나 촛대봉에 다다를 무렵 등 뒤로 천왕봉을 넘어온 해가 산을 붉게 물들였다. 별들이 하나둘 하늘빛에 녹아들 즈음 세석에 도착해 여유 있게 커피를 마셨다.

세석산장에서는 집에 두고 온 딸들에게 엽서를 써 부치기도 했다. 처음 장터목산장에 있던 ‘하늘 아래 첫 우체통’이라 부르던 빨간 우편함이 이제는 대피소마다 생겨난 것도 반가웠다. 미색 관제엽서에 엄마가 지나온 길을, 산장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녹아내린 물을 손가락 끝에 발라 수묵화처럼 잉크가 번지게 해서 그림으로 그렸다. 겨울 지리산에서 누린 행복을 그렇게라도 산 아래 따뜻한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딸들에게 오롯이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꿈결 같은 산행을 마치고 백무동으로 내려왔을 때다. 다리에 힘이 풀린 채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 하산길 식당에서, 딸애 또래 아이 둘을 데리고 산에 오를 채비를 하는 가족을 만났다. 어른은 등산화라도 갖춰 신었지만 아이들은 운동화 차림이었다. 내 발이 다 꽁꽁 얼어버릴 것처럼 마음이 시렸다.

산악잡지 기자로 일하던 시절, 신발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떠올랐다. 60ℓ 배낭의 헤드가 뒤통수 위로 솟아오를 정도로 등짐을 꾸려 출근하던 날, 며칠 자리를 비우게 될 사무실 책상을 정돈하고 일어서려는데 뭔가 허전했다. 방풍재킷 위에 묵직한 배낭을 덧옷 걸치듯 메고서 허리와 가슴께 버클을 단단히 조이면, 등 뒤에서 누군가 듬직하게 안아주는 듯 편안하다. 나는 겨울산으로 가는 큰 배낭을 멜 때 그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무거운 등짐과 달리 발이 너무 가벼웠다. ‘비브람’ 창을 댄 중등산화를 신고 있어야 마땅한데, 아뿔싸! 구두를 신은 채 출근한 것이었다. 경기도 광주에 있던 집에서 서울까지, 긴 시간 내내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그 큰 배낭을 메고 뭇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스꽝스럽게 부조화한 차림 때문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기 전에 갈아 신으려고 운전석 옆에 챙겨둔 중등산화를 깜박 잊고 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에 있는 후배가 신고 있던 경등산화를 빌려 신고 산으로 가야 했다.

그때 눈 덮인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발등까지 덮는 고어텍스 게이터가 있었지만 천으로 된 등산화를 뚫고 들어오는 냉기와 눈 녹은 물을 다 막아내지는 못했다. 폭설을 뚫고서 어둠에 갇힌 대피소에 도착해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에 젖은 양말로 발도장을 찍으면서 내 건망증을 얼마나 자책했던지. 눈비에도 끄떡없는 중등산화 속에서 나온 남들의 보송보송한 양말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인생도 그러하지만 등산은 이런 실수의 경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산에서는 작은 실수도 자칫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

답례는 뒤나 옆으로 해도 된다
눈 덮인 세석대피소.김선미 제공

눈 덮인 세석대피소.김선미 제공

나는 아이젠을 준비하는 그 가족에게 산에 눈이 많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그들에겐 바짓가랑이와 신발 사이를 보호해줄 게이터도 없는 모양이었다. 비닐로라도 신발을 감싸겠다며 검정 비닐봉지를 여러 장 배낭에 챙겨넣고 있었다. 나는 눈 녹은 물이 묻은 게이터를 벗어 탈탈 털어서 망설임 없이 아이에게 주었다. 어차피 산을 내려가면 새 게이터를 살 작정이었다. 내가 산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대가 없이 도와주던 선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기분이었다. “답례는 꼭 앞으로 하지 않고 뒤나 옆으로 해도 된다”고 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말씀처럼 말이다.

겨울산에서 그 가족이 겪게 될 고난과 위험은 분명 아이에게도 큰 공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공부시키자고 어린아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다. 신발이 눈에 젖는 것 말고도 무모하다시피 용감한 그들 앞에 닥쳐올 고통이 빤히 내다보였다. 두툼한 우모복을 입은 아이 옷차림도 마음에 걸렸다. 겨울산에서 우모복을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초보자를 종종 만난다. 대개 ‘추우면 껴입는다’는 생각만 할 뿐인데, 산에서는 곤란하다. 오버트라우저나 우모복은 배낭 위쪽 꺼내기 쉬운 곳에 넣어두고 걸을 때는 최대한 가벼운 복장으로 움직여야 한다. 등산을 하는 동안 우리 몸은 자가발전기처럼 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걷다가 쉬는 동안에는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빼앗기지 않게 보온의류를 꺼내 입고 열량을 보충할 간식을 챙겨먹어야 한다. 또 반드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목표한 산장이나 하산 지점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들은 이미 해가 중천을 지나갔는데 산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상자 기사 참조).

그럼에도 모험에 나선 가족은 보기 좋았다. 사춘기 아이들이 선뜻 부모를 따라 힘든 길을 나선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내가 홀리듯 걸어왔던 산길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될까. 산장에서 호호 불며 라면을 먹을 아이의 발그레한 얼굴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지만 한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 차림으로 지내면서 비닐하우스에서 석유로 길러내는 철 모르는 채소와 과일을 배불리 먹으며 자랐을 요즘 아이들에게 겨울산은 엄혹할 것이다. 

스스로 날씨를 만들어내는 겨울산
흰 눈 옷으로 갈아입은 겨울산의 나무들.김선미 제공

흰 눈 옷으로 갈아입은 겨울산의 나무들.김선미 제공

“등산에서는 분명 위험과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것 때문에 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마음의 평온과 정신적 교감을 얻을 것이다.” 등산가들의 바이블이라 부르는 제1장, 등산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실 해발 2천m도 안 되는 우리나라 산에서 만나는 ‘위험과 곤경’이 뭐 그리 치명적일 게 있단 말인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험’을 추구하는 등산의 무대로 우리 산들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겨울산’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높은 산은 ‘스스로’ 날씨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969년 설악산에서 ‘하늘의 한구석이 뚫어져 내리는 듯한 폭설’로 산악인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계곡 눈사태나 1971년 11월 초겨울과 1983년 4월 꽃샘추위 속 북한산 인수봉에서 로프에 매달린 채로 각각 7명씩 얼어 죽은 사고는 우리나라 산에도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깨우쳐준다. 인수봉은 고작 해발 810.5m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모험을 즐기는 전문 산악인들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등산이 대중화되면서 오히려 사소한 부주의로 목숨을 잃는 초보적인 조난 사례가 늘고 있다. 나는 평소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도봉산에서 갑작스레 쏟아진 눈보라에 방향감각을 잃고 링반데룽(환상방황)으로 사경을 헤맨 친구도 보았고, 겨울 한라산에서 만난 윗세오름 휴게소 관리인이 눈보라 치는 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코앞에 있는 숙소를 찾지 못해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히말라야 8천m 고봉을 오르내린 전문 산악인이었는데도 그랬다.

휴대전화 속까지 들어온 첨단위성항법장치가 ‘지도의 공백지대’를 하나둘 지우고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겨울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예사로운 장소도 순식간에 미지의 처녀지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 ‘스마트’082한 세상, 그러나 우리가 산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런 일상과 다른 무엇을 기대하기 때문 아닐까. 많은 등산가들은 그것을 ‘불확실성’이라고 말한다. 겨울산으로 가는 배낭이 크고 묵직해지는 것도 바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 국립공원 대피소들은 지금 과잉된 편의를 제공하는 것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때 지리산 대피소에서는 온풍기를 틀고 모포를 빌려주고 햇반과 라면과 간식거리까지 팔고 있었다. 이 때문에 침낭도 없이 무턱대고 산을 올라오는 이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예전과 비교하면 산장에 쌓이는 쓰레기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대피소에서 화석에너지를 덜 쓰는 친환경에너지로 난방을 한다고 해도, 에너지를 많이 써서 실내온도를 높이는 것은 산을 산답게 지키는 일과 거리가 멀다. 걱정스러운 점은, 이런 과잉 서비스가 사람들로 하여금 산을 얕보게 하고 준비 없이 산에 오르게끔 부추겨 오히려 위험을 가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잉 서비스가 산을 얕보게 하진 않을까

사람들이 묵묵히 산을 향해 올라가는 것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높고 골이 깊은 겨울산으로 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극적인 모험의 출발일 것이다. 영국 등산가 조지 맬러리는 “모험의 대가는 완벽한 기쁨”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글·사진 김선미 저자·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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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1153A4">겨울산에서 기억해야 할 것</font>
<font color="#008ABD">발이 시리면 모자를 써라</font>

산에서 고도 100m를 올라갈 때마다 대략 기온이 1℃씩 떨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평균적인 수치일 뿐, 만일 산에서 땀이나 물에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강한 바람을 맞으면 평소보다 240배나 빠른 속도로 체온을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때 노련한 등산가들은 “발이 시리면 모자부터 써라”고 충고한다. 머리로 빼앗기는 체열이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또 지치기 전에 먹어 열량을 보충하라. 겨울 배낭 속에는 산중 노숙을 하고도 살아남을 만큼 철저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따뜻한 산장에 있는 모포만 믿고 무턱대고 올라갔다가 길을 잃고 날이 어두워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비상시에는 큰 배낭 속에 하반신이라도 집어넣고 웅크린 채 밤을 새울 각오와 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초보자들은 정작 생명을 지켜줄 안전장비는 허술하고 무거운 먹을거리만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가다 제풀에 지쳐 정작 먹기도 전에 탈진한다. 그러므로 간식과 물은 꺼내기 쉬운 곳에 두고, 반드시 지치기 전에 보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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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1900">겨울의 진경3</font>
<font color="#C21A8D">감질나는 햇살… 나는 참 많이 가졌구나</font>

애끓는 사랑, 상고대 핀 덕유산길 겨울나무를 뒤흔든 세찬 골바람이 서릿발 그대로 얼어붙게 해 나뭇가지에 눈꽃을 피운 것이 상고대다. 삿갓재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남덕유산으로 가는 길, 해가 높이 떠오르기 전 아침 나절 잠깐 만날 수 있던 풍경. 하늘은 파랗고 얼음과 눈으로 꽃이 피어난 겨울나무는 눈부시다. 눈꽃터널이 이어지는 서쪽 비탈길과 해가 드는 동쪽 길을 넘나들며 걷는 이 길은 봄과 겨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겨우겨우 겨울나기, 오대산 염불암의 너와집 오대산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위 높은 자리에 모두 부처를 모시고 있다.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오대산 들머리의 월정사는 그 다섯 암자에 끼지 못한다. 홀로 푸르러 더욱 고독한 겨울 전나무 숲 그늘 아래 고요히 걸어 들어가고도 헛헛하면, 우퉁수를 끼고 있는 서대 염불암에 올라볼 일이다. 너와집 암자 뒤꼍 가득 쌓아올린 장작더미로 겨우겨우 겨울을 나는 소박한 절집이다. 툇마루에 앉아 감질나는 겨울 햇살을 쬐고 있으면 ‘나는 참 많이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검은 화구벽 덮은 흰 눈, 한라산 한라산 백록담을 둘러싼 화구벽은 검다. 검은 현무암이 흰 눈에 덮여 있고 배경인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다. 사방이 온통 흰빛뿐인 한라산의 설원을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걷다가 산을 내려갈 때면, 발아래 솟아 있는 한라산의 어린 자식 오름들이 올망졸망 펼쳐진다. 요즘 대유행인 올레길 어디에서나 고개만 들면 흰 눈으로 모자를 쓰고 있는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에 여러 번 가봤어도 아직 그 산에 오르지 못했다면 이제는 도전! 한라산과 제주도는 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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