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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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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禁 당신의 판타지를 구원하세요



영화 <페스티발>이 보여주는 우리들의 ‘위험하고 평범한’ 성적 판타지,

부끄러워 말고 말과 몸으로 부딪혀보라
등록 2010-11-17 11:47 수정 2020-05-03 04:26

선생님과 학부모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아이의 문제를 말하며 앞쪽으로 손을 모으는 선생님의 바지 위로는 분홍색 속옷이 살짝 비친다. 한복을 수수하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놀라며 다리를 꼰다. 그 순간 발목까지 덮은 치맛자락 속 검정 킬힐이 카메라에 잡힌다.
 
‘실화’ 농담, 진담이 되다

영화 <페스티발>

영화 <페스티발>

영화 (이해영 감독·11월18일 개봉)은 여러 인간 군상의 ‘섹스 판타지의 실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판타지라는 게 만만찮다. 한복집을 하는 정숙한 어머니(심혜진)는 어느 날 철물점에 걸린 늘씬한 회초리를 보며 마음이 두근거린다. 철물점 주인(성동일)을 만나 상담(겉으로는 ‘보일러’, 속으로는 ‘취향’)을 하면서 목을 때려보고 파리채를 휘둘러보는데, 이 남자의 낯빛이 ‘괜찮다’는 신호를 준다. 둘은 도구를 제작해가며 사도마조히즘(SM) 행위에 몰두한다.

선생님(오달수)은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내를 위해 란제리를 산다. 속옷가게에서는 이벤트라며 꽃다발을 함께 준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내에게 꽃다발만 주고 만다. 구석에 둔 선물을 흘깃거리며 ‘감히’ 건네지 못하던 선생님은 집에 아무도 없는 날 포장을 벗겨 란제리를 꺼낸다. 란제리를 입고 화분에 물을 주고 청소를 한다.

영화는 맨 처음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 단 보안상의 이유로 가명으로 처리했다”고 말한다.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이해영 감독은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설정이 들어가 있으니까 먼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느낌을 덜자고 농담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완성해나가면서 그런 사례들을 주위 사람에게서 발견하면서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 되었다”고 말한다.

철물점 주인은 어머니에게 공책을 한 권 준다. 이곳에 당신이 원하는 것을 그려보라고 말한다. 이제 고백의 시간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당신이 꿈꾸는 판타지는 어떤 것인지. 그 공책에 우리는 무엇을 적어넣을 것인가.

에 ‘오마이섹스’를 연재한 칼럼니스트 김소희씨는 “67억 명의 머릿속에는 67억 개의 판타지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음은 로맹 가리의 소설 에서 부르주아 영국인이 열거하는 사례들이다.

“몸무게가 정확히 오십이 킬로그램인 기수들과 일을 벌여야만 기쁨을 느끼는 사교계의 숙녀… 세 번은 짧게, 한 번은 길게 밖에서 노크를 해달라고 번번이 요구하는 숙녀… 금고의 경보음이 울려야만 욕구를 느끼는 은행가의 아내, 그 소리에 남편이 잠에서 깨어나는 바람에 어이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여자… 관자놀이에 권총을 위협적으로 갖다대야만 만족에 이를 수 있는 여자… 우리에 갇힌 사자가 옆에서 포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토라져 있던 그 젊은 여자… 남편에게 언제나 한쪽 손으로 를 연주해달라는 여자… 방돔 광장의 기둥을 때맞춰 바라보기 위해 언제나 리츠호텔에 묵는 여자… 마라케슈에서 밀월을 보낸 다음부턴 이슬람 성직자의 독경 소리 없인 못 배기는 여자… 블리츠 폭격 당시 런던에서 신혼을 보낸 후 남편에게 줄곧 폭탄 떨어지는 소리를 내라고 요구하는 여자.”

영화 <페스티발>은 욕망을 ‘유추’하는 자들은 잃고, 대화하고 실천하는 자들은 얻을 것이라 말한다.

영화 <페스티발>은 욕망을 ‘유추’하는 자들은 잃고, 대화하고 실천하는 자들은 얻을 것이라 말한다.

A(47)씨는 란제리를 입은 여자를 보면 좋다. 입어본 적은 없지만, 가끔 란제리 가슴에 뽕을 넣어서 그 감촉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란제리는 ‘티즈’(tease)한 느낌이 좋다. ‘약 올리는 느낌’이다. 그는 덧붙인다. “란제리는 원래 남자의 판타지를 위한 것이다. 미국 속옷회사도 남자 앞으로 DM을 발송한다.”

B(35)씨의 ‘독서’는 침대 위에 놓인 책 한 권과 함께 시작되었다. 오래된 남자친구와 침대에 누웠을 때 어제 읽다 만 책이 툭 떨어졌다. 야한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이런 책을 읽어?” 남자친구는 골리느라고 그것을 소리내 읽기 시작했고 둘은 그냥 누워서 책 속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둘은 책에 나오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도 책장에서 책을 골랐다. “소설이 좋아요. 그 책에서 야한 부분을 찾아 읽어요. 그러고는 그곳에 묘사된 대로 해요. 따라하기 버거울 때는 그렇다 치고도 많이 하죠. 그다음부터는 좀 실험적이 되었어요. 하나도 안 야한 무미건조한 표현에서 야한 것을 찾아내는 거예요. 마음이 동할 때는 뭐든 야해질 수 있더라고요. 읽어보세요. 아무 책이나 어떤 문장이거나. 얼마나 야한지.” 말하자면 ‘슈퍼스타 KBS’의 허안나식 노래 부르기겠다.

많은 판타지는 단순하다. C(33)씨는 스트랩 있는 구두가 좋다. 그 구두를 신은 그대로 침실로 들어가자고 하고 싶다. 스트랩을 보이면서 힐을 침대 매트리스에 콱 찍어주면 좋겠다. D(29)씨는 사진 찍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 남자가 자신의 사진을 찍다가 사진기를 잡을 때 도드라진 근육 그대로 손을 뻗어 그를 팍 끌어줬으면 좋겠다. E씨는 에 나오는 것처럼 바깥으로 빌딩이 내려다보이는 창 앞이 좋다. 외부이되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비춰서 춥지 않은 곳.

가장 깊은 마음속의 것을 보여주는 커플
영화 <페스티발>은 욕망을 ‘유추’하는 자들은 잃고, 대화하고 실천하는 자들은 얻을 것이라 말한다.

영화 <페스티발>은 욕망을 ‘유추’하는 자들은 잃고, 대화하고 실천하는 자들은 얻을 것이라 말한다.

이해영 감독이 취재를 위해 만난 SM 커플은 ‘특별’했다. “젊은 친구들로, 만난 지 2~3년이 된 사이였어요. SM이라는 게 포르노에서만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들은 하드코어한 삶을 살지 않나 싶었어요. 만나보니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라니 놀라기도 하고 김새기도 했죠. 그들은 행위를 할 때 구두로건 서면으로건 약속 같은 걸 합니다. 플레이의 룰을 정하는 것이죠. 그들은 그 외에도 서로의 판타지를 정말 많이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이 싫고, 어떤 선이 안전한지를요.” SM 커플이 이 감독에게 들려준 판타지 중에는 이런 게 있다.

“퇴근하는 너를 납치해 자동차에 넣을 거야. 그대로 별장으로 가서 너를 다락방에 감금할 거야. 그곳 어두운 방에는 새장 같은 데가 있지. 그곳에 가두고 새 모이를 매일 줄 거야.” 이들은 차도 별장도 없고 물론 새장도 없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내세우는 것을 쑥스러워하잖아요. 남자끼리나 여자끼리도 굴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수치심이 있어요. 그런데 이 SM 커플은 ‘당신의 코드를 알고 있어요. 나는 이게 좋아요’라고 공유하는 게 섹시하더라고요. 그리고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은 자기 애인에게 가장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을 넣고 사는지 다 보여줘요.”

의 교훈은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보이자’다. ‘성기 집착 남자’는 여자친구가 바이브레이터를 샀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크기에 불만인가 보다고 생각한다.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의 컴퓨터를 뒤져서 그의 판타지를 유추한다. ‘가정된 판타지’를 실천하려 하지만 타박만 듣는다.

내 속의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고등학생은 학원 선생에게 교복을 빌려주고는 “빌린 것 부끄러워하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이런 말도 나온다. “부끄럽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만드냐. 되게 바보들 같아.”

몸으로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라
영화 <페스티발>은 욕망을 ‘유추’하는 자들은 잃고, 대화하고 실천하는 자들은 얻을 것이라 말한다.

영화 <페스티발>은 욕망을 ‘유추’하는 자들은 잃고, 대화하고 실천하는 자들은 얻을 것이라 말한다.

앞에 인용한 로맹 가리의 소설에서 남자가 이런 사례를 열거한 것은 판타지에 사로잡힌 부인을 정숙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자, 여보 이리 오구려. 분명히 말하는데 난 이젠 괜찮소. 나머지 문젠… 우리 몬테비데오로 귀즈망 교수를 만나러 갑시다. 그는 기적적인 결과를 얻어낸 모양이오. …그들 모두가 나무랄 데 없는 주부가 되어 있다오, 여보.”

하지만 이제는 이런 판타지를 가졌다고 ‘치료’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정신분석 임상도 겸하는 철학자 홍준기 교수(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는 말한다. “라캉이 ‘향유’(주이상스·언어화된 쾌락이나 사회적으로 용인된 쾌락 등 우리가 경험하는 불충분한 쾌락의 너머에 있는, 우리를 만족시키고 채우는 그 이상의 어떤 것)를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그걸 위해 사는 게 인간이다.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노크를 해준다는 것만으로 ‘향유’할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생선을 먹으면 맛도 좋고 배도 부르다면, 왜 안 먹겠는가.” 더 복잡한 문제는 그 판타지가 ‘공유’할 수 없는 형태일 경우다. 하지만 그때도 그는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판타지는 다 다르다. 소외된 환상일 수도 있고, 타인의 명령을 철저히 내면화한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의 판타지는 일정 정도 (오염된 말이긴 하지만) ‘치료’가 필요하다. 이런 (역시 오염된 말이긴 하지만) ‘변형’을 가하는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판타지에 충실해야 된다. 존재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김소희씨는 67억 개의 판타지에는 66억9999999개의 상대에 따른 판타지 실현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판타지를 접을 수도 있고 발전할 수도 있다.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 “만족을 못한다면 서로 맞지 않거나 게으른 것이다. 맞지 않는 사람이라 잠자리를 안 하는 거고, 게을러080서 몸으로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이 실현에는 안정적인 관계도 중요하다. “뜬금없이 하룻밤 만난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난이도 높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오래되지 않은 관계에서는 호기심에 그친다. 후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서로 친밀할 때, 감수하면서 한 행위에 상대방이 만족하는 것을 보면 기쁨을 느끼게 된다.”

당신은 오늘 저녁 노트에 무엇을 쓸 것인가. 그것을 언제 보여줄 것인가. 언제 실천할 것인가. 지금 당신의 판타지를 구하는 여행을 떠나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도착’의 탄생과 죽음
사드와 함께 태어나 동성애와 함께 죽다

‘도착’(perversion)은 ‘사디즘’이 유래한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사드 후작과 함께 등장했다. 사드가 태어난 1740년 무렵 프랑스는 음란한 주연과 과소비, 탈선에 빠져 있었다. 귀족 사드 역시 은밀한 성의 쾌락에 빠져 살았다. 이 경험은 28년 동안 세 곳의 감옥에서 한 저술 활동의 소재가 된다. 사드는 광기와 이성의 경계도 없고 남녀의 해부학적 분할도 없는 사회를 꿈꿨다. 근친상간도 금지되지 않고 부도덕함의 구별도 없고 충동에 의한 살인도 허용되는 세상이다. 쿨미에라는 환속 신부는 사드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를 정신병자 범주에 넣지 않고 ‘박해받는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쿨미에는 그의 행위에 대해 ‘탈선’이나 ‘비정상’ 대신 ‘도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세기 들어 ‘도착’을 판단하던 종교의 자리를 과학이 대신하게 된다. 병리학과 규범을 분리해 성행위 전체를 감독하려 했다. 미셸 푸코는 “(19세기) 권력과 쾌락의 유희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명확하게 규정했다. 이로 인해 도착 행위는 뚜렷한 얼굴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1810년 프랑스 형법은 성행위를 ‘성인 파트너 사이에 합의된 사생활’로 규정하고 성행위 자체를 범죄로 삼지 않게 된다. 따라서 간통도 범죄에서 제외됐다. 반면 사생활을 누설하는 호색문학, 외설작품은 처벌 대상이었다(플로베르의 , 보들레르의 이 대표적이다). 19세기 말 성행위에 대한 사전이 만들어졌다. 다윈의 영향(“인간과 가장 고등한 포유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 ‘도착’은 ‘자연을 벗어난 상태’로 규정됐다. 미셸 푸코는 이때부터 남성의 동성애, 어린아이의 자위 행위, 여성의 히스테리를 ‘흉악한 트리오’로 간주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행위가 임상 징후로 표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자가 아니기에 ‘본질의 도착자’였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시각이 얼빠진 소리라고 여기는 당대 유일의 학자였다. 그는 도착증의 정신 기제를 개념화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접근해가는 결론은 도착증의 토대에 어떤 선천적 부분이 있다는 것이며, 그 어떤 것이란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지만 마치 체질처럼 강약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의 구조에 ‘도착적 차이의 보편자’라는 것을 도입했다.
1974년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1987년 ‘도착증’도 정신의학용어집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를 ‘파라필리아’(paraphilia)가 대신했다.

참고 문헌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지음, 문신원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 2008
레나타 살레클 지음,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펴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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