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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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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출신 배달노동자가 기댈 곳은 어디인가

【리뷰】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신산한 현실… 완벽한 리얼리즘에 ‘칸’도 주목
등록 2026-06-18 19:06 수정 2026-06-20 08:08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이 파리에서 음식 배달 노동자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디스테이션 제공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이 파리에서 음식 배달 노동자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디스테이션 제공


 

프랑스 파리 하면 흔히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샹젤리제 거리나 밤을 수놓는 반짝이는 에펠탑을 떠올린다. 꿈의 도시, 예술의 도시, 향락과 낭만의 도시. 하지만 파리의 뒷골목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힘든 신산한 삶을 치열하게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2026년 6월17일 개봉한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자전거를 타고 그 뒷골목을 누비며 음식을 배달하는 아프리카 난민 ‘술레이만’(아부 상가레)의 48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보리스 로즈킨 감독은 촘촘한 취재를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같이 리얼리티가 숨 쉬는 극영화를 만들어냈다. 낯설지만 밀도 높은 감독의 시선은 현대 유럽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날카롭게 헤집는다. 미등록 체류 이주민, 플랫폼 노동 등 한국 현실과 겹치는 지점도 많아 보는 내내 ‘불편한 공감’을 자아낸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난민 심사 인터뷰를 준비하는 술레이만이 겪는 48시간의 이야기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촘촘하게 그려낸다. ㈜디스테이션 제공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난민 심사 인터뷰를 준비하는 술레이만이 겪는 48시간의 이야기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촘촘하게 그려낸다. ㈜디스테이션 제공


 

난민 술레이만의 ‘운수 나쁜 이틀’

 

술레이만은 아프리카 기니 출신 난민이다.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와중이라 합법적인 노동을 할 수 없는 술레이만은 먼저 파리에 정착한 친구 에마뉘엘로부터 배달 앱 계정을 빌려 음식 배달을 한다. 에마뉘엘에게 계정 대여비로 일주일에 120유로를 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주당 80유로 정도다.

술레이만의 하루는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일처럼 반복된다. 휴대전화 앱을 켜고 주문을 기다리고 시간 내에 배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비추는 술레이만의 48시간은 ‘운수 나쁜 날’이다. 배달은 ‘시간=돈’인데 음식점 주인은 술레이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한다. 늦지 않기 위해 미친 듯 달리다 차와 부딪혀 교통사고가 난다. 항의하거나 병원에 갈 여유 따윈 없다. 바닥을 구른 포장지가 더러워졌다며 고객은 냉정하게 음식을 거부한다. 음식점 주인이나 고객이 별점 테러를 하거나 항의할까봐 전전긍긍한다.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술레이만은 밤이 되자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노숙인 쉼터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가 악착같이 돈을 버는 이유는 난민 브로커 배리(알파 오마르 소우)에게 난민 심사 인터뷰에 대한 조언을 얻고 위조한 관련 서류를 받아내기 위해서다. 고향에 계신 아픈 엄마를 부양하려면 꼭 난민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다. 배달 앱 계정이 갑자기 막히고, 친구라 여겼던 에마뉘엘은 계정 대여료를 제외한 돈을 주지 않고 잠수를 탄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에마뉘엘은 적반하장으로 “너 때문에 계정이 막혔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술레이만은 결국 빈손으로 배리를 만나 난민 심사 서류를 달라고 통사정한다. 이 와중에 고향에 두고 온 연인은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다음날 난민청 직원(니나 뫼리스)을 만난 술레이만은 배리가 지어낸 가짜 정치범 이야기를 달달 외워 기계적으로 읊어댄다. 질문이 거듭될수록 허점이 드러난다. 난민청 직원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제 당신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제야 술레이만은 기니를 떠나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겪은 온갖 고초를 울먹이며 솔직히 털어놓는다.

 

파리 뒷골목의 풍경을 본 적이 있나요?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기니 출신 나민 신청자 술레이만을 통해 플랫폼 노동의 민낯을 차분히 보여준다. ㈜디스테이션 제공

파리 뒷골목의 풍경을 본 적이 있나요?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기니 출신 나민 신청자 술레이만을 통해 플랫폼 노동의 민낯을 차분히 보여준다. ㈜디스테이션 제공


 

한국과 흡사한 플랫폼 노동자 ‘지옥도’

 

감독은 1시간35분 남짓 이어지는 영화에 단 한 곡의 배경음악도 삽입하지 않았다. 거리의 경적 소리, 사람들의 잡담 소리, 자전거 페달 소리, 내리는 빗소리가 음악을 대신한다. 딱 한 번 술레이만이 카페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음악이 흐르는데, 이 역시 의도적 삽입이 아닌 실제 촬영 당시 카페에서 흘러나온 음악이다. 로즈킨 감독은 “음악 대신 거리의 소음이 하나의 교향곡이 된다. 그건 파리의 리얼리티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주연인 상가레를 비롯해 영화 속 대부분의 출연자는 비전문 배우다. 감독은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를 뽑았다. 상가레는 난민 출신 자동차 정비사라고 한다. 그는 직접 배달 일을 하며 작품을 준비했다.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대신 자기 고백적 표현을 한 셈이다. 마지막 난민 심사 장면에서 20쪽이 넘는 대사를 상가레는 자신의 실제 이야기와 섞어 연기했다. 제77회 칸국제영화제(주목할 만한 시선)가 이 작품에 심사위원상을 수여하고 상가레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이유가 짐작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다소 건조하게 전개되지만 리얼리즘이 살아 숨 쉰다. 감독은 수많은 배달원을 만나 그들이 겪은 사기, 배달 앱 계정 문제, 숙소 문제, 난민 심사 과정 등을 꼼꼼하게 취재했다. 특히 현대사회를 잠식한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 계정이 차단된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는 배달 앱의 횡포, 비가 와도 진상 손님을 만나도 모든 것이 배달노동자의 책임이 되는 현실, 랜덤하지만 줄기차게 요구되는 안면 인식 인증…. 비대면 배달 앱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소외되는지 영화는 묵묵히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주노동자 라이더의 불법 취업과 무면허 운행 등의 문제가 표면화하고, 배달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최저임금제 도입 등이 논의돼 영화의 현실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제 진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난민 심사 인터뷰에서 브로커가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늘어놓던 술레이만에게 난민청 직원이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디스테이션 제공

“이제 진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난민 심사 인터뷰에서 브로커가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늘어놓던 술레이만에게 난민청 직원이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디스테이션 제공


 

미등록 체류 이주민과의 공존을 생각하다

 

로즈킨 감독은 현대 유럽 사회가 안고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해 ‘선한 사람과 악한 제도’ 같은 이분법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는 대신 차분하고 담담하게 권한다. ‘이 사람들의 삶이 낯선가요? 이미 도시의 한 축이 된 그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보실래요?’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말리를 지나 사하라를 돌아 알제리를 통과해 리비아에 입성했다가 이탈리아를 거쳐 파리에 도착한 술레이만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목숨 걸고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으로 몸살을 앓는 건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늘 진실한 삶을 살라”고 당부했던 엄마를 부양하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하는 술레이만은 유럽행 난민을 대표하는 초상이다. 술레이만이 선택한 거짓말은 단지 그가 먹고살 방편이 막막한 가난한 나라 기니에서 태어난 탓일 뿐이다. ‘생존을 위한 체류 자격 확보’라는 그의 소박한 바람이 정말 뻔뻔한 무임승차이자 자국민의 안전과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일까.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달궜던 예멘 난민 문제는 물론 심심치 않게 뉴스를 장식하는 미등록 체류 이주민 문제 등이 살며시 겹쳐진다. 영화는 이렇게 ‘난민 포르노’를 전시해 관객의 감정을 고양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문제를 자연스레 자문하게 하는 영리함을 택했다.

난민 심사 인터뷰를 마친 술레이만이 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암전된다. 그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열린 결말이 주는 깊은 여운과 함께 파리 뒷골목을 질주하며 그림자를 늘이던 자전거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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