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1월, 미국의 유력한 미술 전문지인 (Artforum)을 본 독자들은 크게 놀랐다. 포르노 잡지에서도 본 적이 없는 도발적 자세의 여성 누드가 광고 지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린다 벵글리스(1941~)로, 당시 미니멀리즘 이후의 새로운 현대조각을 탐구하고 실험하던 미술가였다.
총천연색 누드 사진 속 여성은, 텍스 재질의 커다란 더블헤드 딜도를 두 다리 사이에 끼워넣고, 거리낌 없이 으스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릎 높이에서 잘라낸 이 클로즈업 사진에서, 나비 모양의 선글라스와 다이아몬드를 박아넣은 귀고리 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작가는, 머리를 무스로 쓸어 넘긴 채 기름을 먹인 구릿빛 피부- 자연 태닝으로 가꿔 비키니 자국이 선명히 드러나는- 와 군살 없는 육감적 몸매를 과시했다. 남성의 시선에 봉사하는 여성 누드의 문법에서 벗어난, 자신의 성적 욕망에 충실한 자족적이고 과시적인 누드였다. (벵글리스의 지시에 따라 사진을 촬영한 이는 남성인 아서 고든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벵글리스의 사타구니에서 솟아난 듯 뵈는 길고 긴 남근과 작가의 뻔뻔스러운 태도였다. 이 양면 광고는 순식간에 미국 미술계의 최대 화제로 떠올랐고, 많은 이들이 분노를 표했다. 그러나 이를 ‘남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남성 독자들만 분개한 것은 아니었다. 페미니스트 여성들도 벵글리스의 작업이 지나치다고 비난했다. 개방적이고 너그러운 이들조차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이것도 예술인가?”
작가는 ‘이것’을 “센터폴드”(centerfold·잡지의 한가운데에 접어 넣은 페이지. 보통 누드가 게재된다. 따라서 은어로는 ‘섹시한 여자’를 뜻한다)라고 불렀으며, 엄연한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것’이 광고에 불과하고, 예술을 빙자한 포르노그래피이기에, 품격 있는 미술잡지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6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으로 기반을 옮긴 월간 은, 1974년 현재 쟁쟁한 필진을 거느린 채 현대미술 비평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벵글리스의 도색 광고가 잡지에 게재되도록 주선한 이는 유력한 아트딜러였던 폴라 쿠퍼였지만, 광고 대금은 작가가 치렀다고 한다.)
따라서 의 편집인들도 이 사태를 가만히 참고 보지 않았다. 비판적인 편집인들은 “은 이런 저급한 광고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며 편집장이자 설립자인 존 코플란스를 공격했다. 로렌스 알로웨이, 맥스 코즐로프, 로절린드 크라우스, 조지프 머섹, 아네트 마이클슨 등이 논란을 편집권 투쟁으로 비화시킨 이들로, 오늘날 미국의 대표적 미술사학자로서 존경받는 지식인들이다.
이렇게 불거진 편집부의 내부 분열은 봉합되지 못했다. 1976년 결국 주요 필진이던 크라우스와 마이클슨(둘 다 여성)은 에서 뛰쳐나와, 더 정격적이고 이론 중심적인 잡지 (October)를 창간해 새로운 비평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2010년대의 오늘, 현대미술계는 벵글리스의 광고를 어떻게 평가할까? 후대의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이를 ‘포스트페미니즘의 탄생 순간’으로 기념한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주류 미술사학계는, 포르노그래피를 엄연한 예술의 한 형식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무래도 역사는 벵글리스를 승자로 기록할 모양이다.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