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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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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는 사랑의 섬



카샤사 한 병과 잡동사니 연주로 파티를 열었던 사랑의 섬,
신선한 샘과 코코넛잎 집이 있었던 마카코섬
등록 2010-09-29 11:21 수정 2020-05-03 04:26
마카코섬에서 지와 다리오 부부가 살았던 집. 그들은 여기서 시간도, 문명도 잊고 지냈다.

마카코섬에서 지와 다리오 부부가 살았던 집. 그들은 여기서 시간도, 문명도 잊고 지냈다.

“며칠인지 몇 시인지도 까먹고 지낸 지가 꽤 되었다. 글을 쓴 지도 오래되었다. 이곳 자연 속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내 겉모습도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강물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비누와 샴푸를 쓰지 않자 머리는 자연 드레드로 변했고 피부도 더러워졌다. 하지만 무엇이 더러운지 모를 딜레마에 빠졌다. 내 겉모습이 더러워짐에 강물은 덜 오염되었고, 강물이 오염됨에 내 겉모습은 깨끗해 보였다. 무엇이 옳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비누와 샴푸를 쓰지 않는 쪽으로 굳혔다. 나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은 내 겉모습보다는 강물이기 때문에….”(아마존에서 쓴 캠핑일기 중에서)

브라질 아마존의 중간에 위치한 산타렝의 ‘사랑의 섬’(ilha do amor)은 주말이 지나면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고요한 곳으로 변했다. 카리브해의 해변 같은 아마존 백사장의 작은 코코넛잎 지붕 레스토랑들도 문을 닫았다. 그러면 우리는 친구들을 데려와 파티를 했다. 브라질의 값싼 술 ‘카샤사’(사탕수수로 만든 알코올 농도 40도의 술) 한 병을 준비하고 고무를 뜯는 것 같은 형편없는 고기 몇 점을 불에 올리면 파티는 저절로 따라왔다. 그 누구도 MP3나 스피커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자기 앞에 있는 잡동사니들로 연주를 하며 노래를 했다. 가끔 기타를 잘 치는 친구가 있으면 분위기는 최고조로 향했다. 걱정이나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잘 웃었고 쉽게 행복해했다. 8년째 집 없이 여행 중인 그들은 날마다 휴가 중인 것 같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보통 몇 년째 남미 대륙을 방랑하는 히피들이었는데, 개중에는 상파울루에서 대학까지 나와 사회제도에 반항하는 무정부주의자들도 있었고 파벨라(빈민지역) 출신의 글도 못 읽는 이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자라는 공통점이 그들을 하나로 묶었으니까….

하루는 배로 2시간 거리의 마카코섬에 살고 있는 콜롬비아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마카코는 포르투갈어로 원숭이라는 뜻인데, 그 정글 섬에는 빨간 얼굴의 작은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다. 사랑의 섬에서 함께 지내던 여행자 가족의 아빠 프레드손은 마카코섬으로 떠나는 날 아침부터 자신이 ‘선장’이라며 거드름을 피웠지만 그 누구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꼬박 2시간을 프레부인 오드리와 자녀인 자이언과 하라, 나와 다리오 이렇게 6명이 탄 작은 배의 노를 저어야 하는 그는 마른 체구지만 힘은 장사였다. 하지만 이 여행 이후 그는 모터를 간절히 원했다.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진정으로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요즘 유행어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대로 한 달 뒤 그는 모터를 갖게 되었다. 도시에서 온 부자 노인이 그에게 선물했다.)

그 어떤 가이드 책에도 나오지 않는, 아는 사람만이 찾아갈 수 있는 마카코섬에는 신선한 샘이 있었고 머물다 갈 수 있는 작은 코코넛잎 집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었다. 전기와 가스 없이 생활하는 것은 이미 익숙했지만, 그야말로 혼자 나갈 수도 없는 정글에서 지내는 것은 나에게 편안함과 불안을 동시에 주었다. 오기 전 얻은 헉슬리의 라는 책을 몇 페이지 읽고 다시 덮었다. 철저한 자연 속에서 책을 읽인들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심심해지면 샌들을 신고 정글을 걸었다. 독성벌레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았지만 아무도 조심하는 기미가 없었다. 네 살배기 자이언조차 언제나 맨발이었으나 프레드손과 오드리는 한 번도 주의를 주지 않았다. 타파조 국립공원에 네 번이나 왔다는 달라이라마도 정글에서 맨발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개인 비행기를 타고 이곳 ‘알테도샤우’(???)에 휴가를 왔었다는 빌 게이츠가 맨발의 히피가 된 모습을 상상하면 더 웃겼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 비밀의 샘에 가서 목욕을 했다. 돌아와서 함께 밥을 짓고 저녁에는 모닥불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나의 불완전한 스페인어는 점점 포르투갈어로 변했다. 마카코섬이 지겨워질 무렵 우리는 타파조 국립공원 안의 인디언 마을로 갈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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