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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는 진화한다, 사회위기로



‘대위기 제2막’의 불안한 징후와 희망의 근거를 들춰내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9월호
등록 2010-09-09 15:08 수정 2020-05-03 04:26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바람이 분다. 더운 기운을 조금 덜어낸 바람이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 사이로 언뜻언뜻 고개를 내미는 계절이 찾아왔다. 더위만큼이나 무겁고 갑갑했던 금융위기의 잔상도 바뀌는 계절처럼 사그라지길 바라지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9월호는 안타깝게도 섬뜩한 제목을 들고 나왔다. ‘대재앙 제2막, 사회위기.’

긴축재정·수출 중심 ‘신중상주의’의 위험함

‘대위기, 제2막’ 특집은 금융위기를 거친 세계 곳곳이 조용히 사회위기를 향해 나아가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와중에 희망을 제시하는 대안도 보여준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로랑 코르도니에는 국민에게 ‘희생’을 권하는 유럽 여러 국가의 긴축재정이 국민을 위한 올바른 방안인지를 의심한다. 경기회복의 숨통을 조이는 긴축재정 대신 그가 제안하는 방안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임금 인상이다. 임금을 인상하면, 공공 재정의 적자가 발생하는 이유 증 하나인 소득 감소에 따른 조세수입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마진을 줄이면서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수출 시장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코르도니에가 말하는 긴축재정 국가의 예는 현재의 독일이다. 독일 한스 비클러 재단 거시경제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인 틸 판 트레크는 노동자 임금을 극도로 억제해 이를 기반으로 수출을 활성화하는 독일의 경제정책을 두고 ‘신중상주의’라 칭한다. 이런 식의 경제구조는 노동자의 몫을 앗아가는 자본가가 있어 위험하다.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과 실업 감소 등 번드르르한 겉모양은 얻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임금동결, 고용시장 규제 완화 등으로 빈부 격차는 극심해졌다. 독일의 알맹이 없는 성장은 유럽연합 다른 회원국의 경제도 위협한다. 독일이 지속해서 수출 기반의 성장 전략을 꾀하면 다른 회원국과의 교역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른 회원국들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예산을 긴축하고 임금을 삭감할 수밖에 없고 이는 실업률 상승, 디플레이션, 사회 불안을 동반한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이자벨 티로는 농업 노동자의 잔인한 일상을 전한다. 그에 따르면, 최저임금으로 운영되는 레바논 베카 평원의 농장들은 시리아인들에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베카에서 지불되는 임금은 시리아에서 받는 임금의 4배다. 온 가족이 흘러 들어와 단순 노동자로 고용돼 몇 달을 혹은 몇 년을 머문다. 주워온 마대나 플라스틱 방수포를 이어 붙인 텐트에서 생활한다. 그들은 오랜 시간의 노동을 성공이란 이름으로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희망은 쉬이 절망으로 바뀐다. 장시간 구부린 자세로 일해 근골격 장애를 얻거나 트랙터나 회전분쇄기에 발과 팔을 잃고도 아무런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

미국에 기댄 한국의 정치·경제적 불안함

한국 특집은 ‘덫에 걸린 MB 외교’를 다룬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적 가치’에 동조하는 한-미 ‘가치동맹’을 비판한다. 미국과의 가치동맹으로 한-미 군사동맹 강화, 한-미-일 공조체제 활성화 및 중-미, 한-중 관계 악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최악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경고한다.

의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는 미국이 이란 제재 4차 결의안과 관련해 한국에 이란과의 교역 관계에 압박을 불어넣는 상황을 위험하게 바라본다. 미국은 이란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을 폐쇄하거나 은행 자산을 동결할 것을 한국에 요구한다. 이란에서 소비되는 가전제품의 75%가 한국산이고 한국 전체 원유 수입량의 10%가 이란산으로, 한국과 이란의 교역은 활발한 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압력으로 한국과 이란의 교역이 끊겼을 때 불리한 쪽은 한국이다. 김재명 기자는 이란산 원유 수입에 차질이 생기거나 이란과 마찬가지로 반미 노선을 걷는 베네수엘라가 이란과 손잡고 석유를 무기화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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