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삽질이!’ 싶은 일에도 배울 점은 있는 것 같다. 가령 ‘혼자 일본 규슈 자전거 여행하기’ 같은 짓이다. 정리해봤다.
1. 무엇보다 ‘쯧쯧, 불쌍하게 혼자 여행을… 친구도 없나봐’란 시선을 당당하게 날릴 수 있다. 자전거가 있으면 혼자라는 게 장점이 되기도 한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멋지다”란 말도 들어봤다. 자전거 하나로 혼자 하는 여행은 ‘남자의 처량’에서 ‘남자의 호연지기’로 바뀌는 것이다.
2.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 일본처럼 지하철 서너 구간에 200엔(약 2800원)을 훌쩍 넘는 나라에선 더욱 자전거가 고맙다. 고국의 지하철 요금이 싼 것에 감사하며 얻는 애국심은 덤이다.
3. 부분 선탠을 할 수 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은 팔뚝이나 다리만 탄 것을 비웃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다. 이마에서 사타구니 구석까지 구릿빛으로 태우는 태닝으로는 더 이상 시선을 끌 수 없다. 팔뚝과 가슴이 옛날 교복 상·하의처럼 선명하게 대비되는 게 요즘 개성이다.
4. “도치라데스카”(어느 쪽입니까), “이쿠라데스카”(얼마입니까), “히토리데스”(한 사람입니다) 등 생존에 필요한 형이하학적인 서바이벌 일본 회화를 암기하느라 ‘증오’ ‘열등감’ ‘트라우마’ ‘자학’ ‘후회’ ‘극우파’ 같은 잊고 싶은 모국어를 잠시, 망각할 수 있다.
5. ‘사랑’이 가장 빈번하게 떠오르는 모국어임을 알 수 있다(저의 경우입니다).
6. 유흥비가 들지 않는다. 둘쨋날 후쿠오카 시내~후쿠오카 시외, 셋쨋날 후쿠오카~가라쓰, 넷쨋날 가라쓰~이마리. 사흘 연속 5~7시간 자전거를 탔다. 설렁설렁 탔는데도 힘겨웠다. 머리와 습관은 술을 요구했지만 몸이 거부했다. 잠을 청하려 한 잔 마시는 맥주를 ‘나이트 캡’(night cap)이라 한다.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두 캔째를 따는 순간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이 때문에 에비수나 선토리처럼 맛있는 맥주를 종종 버려야 했다.
‘나가사키에서 마신 나이트 캡의 최고봉은 ‘쇼추’(소주)와 주스를 섞은 ‘가쿠테루’(칵테일)였다. 202엔짜리 ‘가노키’ 쇼추와 80엔짜리 ‘앗푸루 지유스’(애플주스)로 충분했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3:1 비율로 섞으면 된다. 주량이 약하면 소주 비율을 낮춘다. 일본 소주는 우리와 달리 ‘진짜’다. 주정(에틸알코올)에 물을 섞어 만드는 게 아니라, 진짜 증류주다. 그래서 향이 강한데 칵테일을 만들 때 향이 강하면 베이스로 쓰기 나쁘다. 다행히 가노키 소주는 향이 강하지 않았다. 처음엔 주스의 단맛이, 몇 초 뒤 소주의 쓴맛이 혀에 맴돌았다.
7. 전날 과음이 후회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8. ‘이 길이 맞나’ 싶어 오른 여행길인데 ‘역시 난 이런 놈’이라는 것밖에 확인한 게 없다. 딴은 김훈 작가처럼 페달을 밟으며 삶과 세상을 사색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본 여자들을 히죽거리며 쳐다보거나 간판의 히라가나를 더듬더듬 읽으며 단순한 시각적 자극에 충실하고야 말았다.
9. ‘역시 난 이런 놈’이라는 깨달음이 자전거 여행의 교훈이다. 그러므로 결국 문제는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자가 아닐까. ‘가쿠테루’라는 어휘를 알게 된 것은 덤이다.
고나무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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