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부른다〉
드라마에는 등장인물이 빛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줄거리가 탄탄해서 재미난 것도 있고, 화면이나 소품 또는 배경음악이 멋있어서 좋은 것도 있다. 수많은 후보 중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지상파) 편성’의 벽을 뚫고 ‘온에어’되는 드라마는 대부분 상당한 완성도를 가졌고, 이렇게 각자의 ‘재미난’ 이유가 있으니 ‘테순이’들은 늘 볼 게 있어 좋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떤 드라마가 시작될 때 ‘이걸 봐야지!’ 하고 마음먹는 기준, 첫째 작가를 보고 기대치를 높이거나 낮춘다(영화는 감독의,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둘째 출연하는 그·그녀의 선구안을 믿고 따라간다.
하지만 어차피 ‘종합’예술인지라 ‘역시!’보다는 ‘에구머니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고, 등장인물이 당최 일관된 캐릭터라는 게 없어서 잘 가다가 봉창을 때려주시는 센스(?) 때문이다. “아니, 저 주인공이 저런 성격이었어?” 하는 순간, 드라마는 한 회 안에서도 어느새 ‘시즌2’가 되거나 ‘액자소설’이 돼버린다. 주인공의 캐릭터 고수는 커트라인이 되는 셈이다.
한편 어떤 드라마가 극본 공모전 수상작이라면 대충 3할대 이상 타자는 되지만, 연속극 공모는 전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시놉시스)와 2∼4회분까지만 낸다고 하니 역시 뒷심이 흐물흐물한 경우가 많다.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방송의 2009년 당선작 도, 끝까지 보기에는 인내심이 달렸다. 같은 해 공모로 뽑힌 를 기다리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말자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도 를 거의 일드 원작만큼 재밌게 만든 실력을 보여준 김정규 감독님과, 믿음직한 선구안이라면 몇 손가락 안에 들 그 남자, 김상경이 주연이라는 말에 은근 기대를 걸어보았다. 4회까지 방영된 지금(누가 내 평에 신경이나 쓰겠느냐마는), 시청률을 보증한다는 이병훈표 사극에 기죽어 맥 빠지지 않았으면 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요즘처럼 웃을 일 없는 때 비실비실 웃게 하는 대사의 맛이 좋고, 강신일·이기열·양금석의 연기가 든든하다.
그리고 여주인공 오하나(이수경) 순경. 앞으로 몇 주 동안 당연히 그녀도 조금씩 변하겠지만 나중에 턱없는 애국심이나 사명감으로 트랜스포머해서 헉 소리 나게 하지 않으면 더 좋겠다. 현실 속에서 만난 국정원 아저씨들과는 완전 다르지만, 아직까지는 사람 냄새 나서 좋은 정보국 사람들을, 언니·오빠들처럼 ‘삐리릭 뾰로록 척척’(웬 CSI?)으로 만들지 않으면 고맙겠다.
물론 부잣집 아들이면서 엄청난 사명감으로 나랏일 하는 남자 주인공이 정보기관을 선하고 바람직한 곳으로 보여준다는 설정이 많이 불편하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때 ‘국가가 부른다’는 제목이 계속 거슬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맛보기로 보여준 유머 감각을 믿어본다, 드라이클리닝 버전으로. 니가 말한 ‘국가’가 이따위 ‘국가’는 아니겠지?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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