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PD저널〉에 걸그룹 현상에 대한 글을 썼을 때, 예상대로(?) 몇몇 독자에게 항변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일본이 현재 아이돌 그룹의 전범이라 할 수 있을) 1980년대 소방차나 세또래 등의 벤치마킹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는 모범사례”라고 쓴 문장 때문이었다. 독자는 한국의 아이돌 음악이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영향을 받았으며, 오히려 한국산(産)이 일본산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반박했다. 이들의 주장이 모두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바야흐로 ‘아이돌의 진화’가 이루어진 시대가 아닌가. (전자우편을 보낸 이가 증거로 제시했던) ‘케이팝’(K-pop)과 ‘제이팝’(J-pop)이 대결해 케이팝의 승리로 끝나는 영상물이 동영상 사이트에 줄지어 올랐던 일도 이제는 새삼스럽지 않다.
여기서 내가 궁금한 것은 동시대적으로 글로벌하게 생성되는 아이돌 음악의 정체성이다. 먼저 가수의 국적은 가장 직접적 증거물일 것이다.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시기에 ‘교포’가 하나의 이색적 마케팅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교포는 물론 외국인(2PM의 닉쿤, 에프엑스의 빅토리아와 엠버 등)까지 포괄된 다국적 아이돌 그룹이 대세다.
하지만 가수나 작곡자의 국적이 ‘국산 가요’의 내용과 형식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공식 구매’된 외국산뿐 아니라 국산 작곡가의 곡조차 원적을 따지는 일은 무용하다. 소녀시대의 노래에서 가령 이트라이브 작곡의 (Gee)와, 외국 작곡가 곡 (Run Devil Run)이나 사이에 음악의 ‘국적’ 차이란 있을까. 자본과 기획이 일국을 초월하는 프로젝트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동방신기와 SM엔터테인먼트의 사례나, JYP엔터테인먼트와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사례에서 그 음악을 두고 ‘한국적’이라 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가요라 부르는 음악은 본질적으로 혼성적이다. 과거부터 끊임없이 일었던 ‘양색’(洋色) 또는 ‘왜색’(倭色) 논란은 바로 가요의 태생을 자백하는 듯하다. 이는 품질에 대한 평가와도 맞물렸다. 팝은 세련되고 가요는 ‘구리다’. 이름하여 ‘뽕끼’는 히트 ‘가요’의 절대절명의 공식이면서도, 벗어나야 할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한국 아이돌 음악이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앞서 이야기한 독자의) 견해도 여기서 비롯했다(오랫동안 ‘양색’에는 관대하고 ‘왜색’에는 혹독하거나 이중적이던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 음악이 일본보다 더 우월하다는 주장은 우리의 경우가 더 팝적이고 나아가 ‘미국적’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처럼 최근 아이돌 음악의 진화는 ‘가요’에서 ‘팝’으로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동시대 서양의 팝 트렌드를 시차 없이 향유하는 지금, ‘가요’는 ‘글로벌 팝’으로 향한다. 최근 4집을 낸 이효리의 이미지는 당연하게도 당대의 핫 아이콘 레이디 가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 팝스타 에이머리의 노래에 포미닛이 참여했고, 지드래곤의 곡에는 표절 논란에 화답하듯 미국 힙합 뮤지션 플로 라이더가 피처링을 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빈번한 표절 논란조차도 (진위 여부를 떠나) ‘가요’가 되지 않기 위한 욕망을 반영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장하면 케이팝은 영미팝이나 제이팝보다 더 미국적으로 들린다.
‘케이팝’이란 결국 기존 가요와는 다른 감수성을 환기하는 ‘가요 같지 않은 가요’다. 이는 (지리적·문화적) 국경을 뛰어넘는 기반이 된다. 나는 여러 경계와 범주가 탈색되고 소거된, 이 이상한 이국성 자체가 ‘한국적’인 것이라 궤변을 펼쳐본다.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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