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좀더 학교에 머물렀으면…

등록 2010-04-23 16:27 수정 2020-05-03 04:26
‘신데렐라 언니’. 한국방송 제공

‘신데렐라 언니’. 한국방송 제공

만화에는 장르가 있다. 학원물, 시대물, 순정물, 무협물, 야오이물과 같은. 드라마에도 사극, 성장 드라마, 가족 드라마, 정통멜로,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한 막장 드라마까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구분하여 부르는 말이 있다. 편식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냐”고 하면 답을 못하지만, 그동안 좋아한 드라마를 떠올려보면 유독 ‘학원물’이 많다. 이제는 ‘흘러간 명작’ 대열에 있을 부터, 당시 스타 등용문이던 1990년대 시리즈와 같은 본격 학원물은 물론, 이나 역시 재미있게 보았다. 지난겨울 에 열광했던 것도 생각해보면 산청고 1학년 3반 한지완과 같은 학교 전학생(학원물의 남자 주인공은 늘 전학생이다) 강진이 때문이었다.

이런 취향을 “일종의 연하남에 대한 동경 또는 ‘로리콘’ 초기 증상 아니냐”며 삐딱하게 볼 사람도, “아직 덜 자랐다”며 혀 찰 사람도 있겠지만, 같은 영화를 좋아하거나 의 윤호나 의 준혁 학생에게 심하게 빙의되어 있는 자들을 생각하면, 꼭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리기는커녕 더 이상 젊지도 않은 나(우리)는 왜 학원물에 열광하는 걸까? 우선 학교에는 막장 요소가 발 붙일 곳이 없다.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 시한부 인생이 등장하기에는 우리의 주인공들이 너무 어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 주인공들의 가슴을 흔드는 일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잴 것이 없어, 그 마음은 얼마나 ‘진짜’인지. 그때가 아니라면 학교 옥상에서 양동이 가득 접었던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저는 1학년 3반 한지완입니다’ 푯말을 흔드는 일이 가능키나 하겠는가.

또 하나 학교 교문을 보기만 해도 내 마음이 이미 감동받을 태세를 갖추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학교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 많이 느끼고 생각하고 영감을 받으며 사랑해야 할 시간에, 끝을 모르는 경쟁과 압박에 억눌려야 하는 현실- 에 대한 짠한 안타까움이다.

요즈음 장안의 화제인 역시, 은조와 효선이의 고등학교 시절로 드라마를 시작함으로써 이때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 주인공들의 마음에 내리는 무늬를 놓치지 않고 잘 보여주었고, 굳이 아역이 필요 없는 최강 동안인 두 여자배우 덕에 더 쉽게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학원물 마니아인 나로서는 이 드라마가 조금만 더 학교에 머물러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 아버지·어머니의 보호 또는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성이 다른 이름표를 달고 같은 교실에 하루 종일 앉아 비교되어야 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나, 학교를 띄엄띄엄 다니는 바람에 기초가 없어 수학 문제 답을 외우고 공부할 수 있을 때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기는 어린 은조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린 신부’에서 벗어나 “국민 여동생은 김연아 선수에게 양보하고 싶다”는 근영씨가 또 화내시려나. 어쨌든 돌아온 ‘김 언니’(김규완 작가)와 ‘신 언니’가 있어서, 앞으로 몇 주는 더 행복할 것 같다.

김진 변호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