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에서는 너무나 진지한 일들이 남의 나라에서는 코미디가 된다.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그런 역할을 한다. 불과 10년 전에는 멋진 힙합 패션이라며 뽐내던 댄스 가수들. 지금 에서 그 사진을 꺼내면 보자마자 부숴버린다. 이런 재미를 TV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 수십 년 전의 신문과 잡지가 속속 복원돼 올라온다. 이 촌스러운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겨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1984년의 를 꺼내 ‘세속에 치우친 중고생 잡지’를 비판하는 기사를 보자. 어느 여고 교감 선생님은 “중고생들의 이성교제가 아주 보편화된 것을 전제로 한 기사가 너무 많아서 역겨울 지경”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싶다. 그러면 그 잡지는 어떤 기사를 싣고 있나? 막 생겨나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점에서의 데이트 지침을 이야기해준다. “마음속으로 동경하는 그의 앞에서 햄버거 같은 것을 기세 좋게 먹어치우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그럴 때는 조금 참고서 감자튀김 같은 것을 조금씩 먹는 쪽이 귀여워 보일 것이다.”
1970~80년대 풍속을 들여다보기에는 주간 잡지, 특히 만 한 게 없다. 인터넷판에서 제공하는 ‘다시 보는 선데이 서울’은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올드팬만이 아니라, 아빠·엄마의 젊은 시절을 엿보며 키득거리는 젊은 독자에게도 인기가 좋다.
1974년에는 ‘레이스 비둘기 협회’가 큰 이슈. 대전에서 비둘기를 풀어놓고 서울로 돌아오게 하는 대회를 열어 전국에서 훈련받은 비둘기 30마리가 각축을 벌였는데, 회장 이양희씨의 ‘네로’가 3연승을 차지했다고. 1985년에는 신혼여행 풍속도가 흥미롭다. 당시만 해도 제주도에서 허니문을 보내는 것도 호사스러운 일이었나 보다. 결혼철에는 방을 구하지 못해 한 방에 커튼을 치고 두 쌍이 첫날밤을 같이 보냈다는 둥, 방을 못 구한 20쌍이 회의실에서 합숙을 했다는 둥.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전국의 숨은 미인들, 요즘으로 치면 ‘강남 5대 얼짱’ 같은 걸 소개하는 코너다. 미스 도로공사인 타이프라이터는 ‘냉면과 자장면을 잘 먹는 식성’으로 자신의 성격을 이렇게 소개한다. “얌전하고 꽁하다는 평을 듣고 있어요. 자존심이 강하다는 말도 들려요. 사귀어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항도(港都) 부산’에서 몇 안 되는 패션모델 중 하나인 미스 부산여대 김기자양은 “장차 결혼은 대학교수와 하면 좋겠다”고 하기에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느냐 물었더니 “어데예?” 하며 눈을 살짝 흘긴다고.
1970년 8월, 비밀요정의 실태를 추적하는 기사를 보면 제법 충격적이다. “문화영화(도색영화)를 돌리고 스트립티즈를 벌이던 건 구식. 이젠 인스턴트 러브의 광경을 8mm 무비 카메라에 담아 다시 감상(?)하는 자기도취적 유흥법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40년 전이 오늘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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