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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놀러가고 싶다

MBC 에브리원의 <가족이 필요해>
등록 2010-03-04 14:18 수정 2020-05-03 04:26

“밥 먹게 텔레비전 꺼.” “텔레비전 끄면 밥 안 먹어.” 이런 밥상머리 다툼도 옛날 옛적의 이야기다. 첫째아들은 제 방 PC로 게임 중계방송을 보고, 둘째딸은 노트북으로 미국 드라마 을 내려받아 보고, 막내딸은 스마트폰으로 아이돌 그룹의 신곡 무대를 본방 사수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뒤바뀌어야 한다. 온 가족이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면 그들의 눈을 한군데로 모을 텔레비전이 필요해졌다.

MBC 에브리원의 〈가족이 필요해〉

MBC 에브리원의 〈가족이 필요해〉

네 번째 시즌을 이어가는 MBC 에브리원의 는, 말하자면 ‘대안 가족 리얼리티쇼’다. 여러 연예인이 부모와 자식 역할을 맡아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한집에 모여 살면서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한 미션들을 수행한다. 어찌 보면 밋밋하고 구태의연한 포맷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은 제대로 뒤집어지는 가족을 만들고 있다.

일단 캐릭터들의 면면이 개성적이면서도 잘 어울린다. 먼저 사근사근한 듯 앙칼진 언니 김정민과 애교 넘치는 천생 막내 한선화가 자매를 이뤄 오빠를 찾는다. 두근거리며 여러 스타를 공략하지만 결국 선택된 것은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마르코. 세 명 다 으로 요즘 따끈따끈한 예능아들이다. 아빠 박준규는 그 느슨한 성격에 ‘젊은 시절 사고 좀 쳤을 것 같은’ 모습이 딱 어울린다. 의외의 등장은 엄마 강수지. 왕년의 청순은 어디로 가고, 음식이 싱겁다니 “저기 소금 있거든. 갖다 쳐 먹어.” 천연덕이 물을 만났구나 싶다.

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골 때리지만 재미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이려는 둘째딸을 보자 덩달아 신이 난 아버지. “할아버지 가훈 떼버리자.” 뽑기 하느라 생활비를 다 날리고 양갱 하나 나눠먹으며 공범의 우애를 다지는 엄마와 아들. 바른 생활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처럼 위악적으로 엇나가지도 않는다.

같은 방을 써야 하는 두 딸의 신경전도 볼 만하다. 어느 쪽 침대를 차지할까 싸우다 대놓고 짜증내는 언니와 약한 척 허허실실 견디는 막내. 그러다 언니가 옷 갈아입는다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자 “자매인데 어떠냐”는 동생의 말. 살짝 당황해하면서도 “너 언니 복근 보면 놀란다”며 터무니없는 멘트를 날리는 순발력. 그야말로 ‘자매 생활 백서’다.

거실에 한데 모여든 가족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연합해서 가족 중의 하나 놀리기. 아빠가 큰딸의 다리를 보며 털 보인다고 놀리자, 큰딸은 “선화 수염 있어”라고 막내에게 화살을 돌린다. 막내는 “얼굴이 하얘서 그런 거야”라며 항변하다 항복하고 “오빠, 같이 면도하자”. 엄마는 웃느라 거의 울먹일 지경이 된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넘쳐나는 MT는 지겹다. 대신, 이 가족의 집에 놀러가고 싶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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