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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획가가 돼보라

공짜여행자 한가인씨
등록 2010-01-20 16:54 수정 2020-05-03 04:25
첫 공짜 여행지 홍콩에서 찍은 야경. 한가인 제공

첫 공짜 여행지 홍콩에서 찍은 야경. 한가인 제공

자유기고가 한가인(34·가명)씨는 해외여행을 공짜로 다닌다. 어떻게? 여행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그냥 ‘운발’이 아니다. 비법이 있다.

‘해외여행 공짜로 가기, 스텝 원.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라.’

가인씨가 공짜 여행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2년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우연히 여행 경품 응모 배너를 마주치면서였다. 유명 브랜드 위스키를 수입하는 주류회사에서 20~30대를 새로운 마케팅 대상으로 포섭하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였다. 해외여행 계획서를 제출해 선정이 되면 미션은 한 가지, 여행을 다녀와서 트렌드 보고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었다. 곰곰 생각해봤다. 주류회사에서 왜 여행을 보내줄까? 지금까지 고급 위스키는 40대 이상 중년 남성이 소비하는 품목이었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 위스키를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가인씨는 홍콩 여행 계획을 촘촘히 짰다. 홍콩 하면 흔히 쇼핑 천국을 떠올리지만, 그가 생각하기엔 동양도 서양도 아니면서 두 문화가 사이좋게 융합돼 있는 곳이다. 영화 이 떠올랐다. 중국에서 돈 벌러 나온 남녀가 중국도 영국도 아닌 낯선 곳에서 성장하는 이야기. 꿈을 가진 청춘, 낯설지만 따뜻한 홍콩이란 도시가 브랜드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영화와 연계해 여행 계획서를 썼다.

‘스텝 투. 꾸준히 포스팅하라.’

“운이 좋았어요. 알고 보니 하루 방문자 2천 명 이상인 블로거라야 당첨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한씨의 블로그는 하루 방문자 200명 이하인 ‘듣보잡’이었다. 그렇게 처음 응모한 이벤트에서 100만원의 여행 지원금을 받고 7박8일간 홍콩에 머물렀다. 다녀와서 쓴 여행기가 포털 메인에 뜨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꾸준히 업데이트를 하니, 하루 방문자가 500명 이상으로 늘었다. 이후 여행사와 피자 브랜드에서 하는 이벤트에 응모해 유럽에 다녀왔다. 이후 꾸준한 포스팅으로 방문자가 1천 명까지 늘어났다. “저는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떤 분은 직장 다니면서 한 해에 네 번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해요. 모두 공짜로요. 여행을 위해 주말에도 일하고, 다녀와선 꼼꼼히 여행기 쓰고…. 그런 데 비하면 저는 새 발의 피예요.”

‘스텝 스리. 상도덕을 지켜라.’

이 세계는 방문자 수가 권력이다. 이벤트를 여는 업계 사람들은 방문자 수 1만명 이상의 파워블로거를 우대한다는 풍문도 있다. “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뽑아주는 걸 보면 희망이 있죠. 저만의 강점을 꼽자면 책임감? 가장 중요한 건 성실한 피드백이라 생각해요. 피자 이벤트의 경우, 1인당 350만원 상당의 여행상품을 지원받았어요. 그 정도 행운을 부여받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당첨 후 여행기를 정성스럽게 작성하는 건 해당 회사를 위해서나 본인의 블로그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나 가장 기본적인 상도덕이기도 하구요.” 동종 업계의 다른 이벤트에 응모하지도 않는다. 리뷰를 칭찬 일색으로 쓰는 것도 자제한다. 솔직하고 성실하게 피드백하는 것이 업체의 신뢰를 사는 비결이다.

얼마 전 프랑스에 가게 되었을 때, 피자 브랜드에 미리 얘기해서 프랑스에 있는 체인점에서 시식을 하고 포스팅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작은 정성이고, 또 큰 도움도 안 되겠지만, 홍보실에서 무척 좋아했어요. 이렇게 맺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고,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요.”

김송은 만화월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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