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 ‘남보원’이 떴다. “니 생일엔 명품 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 값은 니가 내라. 팝콘 값도 내가 냈다. 집에 갈 때 혼자 가라. 우리 엄마 기다린다.” 주옥같은 대사를 터뜨리며, 지갑도 마음도 쪼들리는 대한민국 남성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고 있다.
머리띠를 둘러맨 황현희가 구호로 선동하면, 어르신 박성호가 눈물의 호소를 한다. “여성 여러분 2500원짜리 라볶이 먹고, 5800원짜리 마키아토 한 잔 빨고 있습니까?” “콤보 대자에 500원 추가시켜 캐러멜 팝콘 먹는 악습, 이제 버려야 합니다. 우리, 인간적으로 나초는 먹지 맙시다.” 대사가 구차하면 구차할수록 웃음소리는 커진다. 그동안 여성과의 데이트에서, 여권신장의 분위기 속에서, 은근히 기죽고 속 터졌던 남성의 애환을 녹여준다. 방청석의 여성도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걸 보니 귀엽게 봐줄 만한가 보다.
한데 묘하게 우리를 간질이는 부분이 있다. 신기하게도 요즘 코미디판에서 대통령이나 집권당 대표를 비꼬는 캐릭터를 보기 힘든데, ‘남보원’이 운동권 투사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를 패러디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코미디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강자와 지배적인 존재를 비꼰다. 그래야 절대다수인 약자들의 울분을 해소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성적 소수자, 소수 인종,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를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금기시된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코미디언 조혜련은 생방송에서 ‘거지’라는 단어를 썼다 곤혹을 치렀다고 한다. 그럼에도 솔직히 코미디언들에게는 ‘이거 빼고, 이거 줄이고’ 사람들을 웃기라는 게 죽을 맛이다. ‘사투리 사용자’를 비꼬는 게 지역과 소수자 차별이라고 시비 걸지 않는 게 다행이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가 코미디쇼의 캐릭터로 등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그의 ‘강달프’ 이미지가 흉내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다른 하나는 민노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운동 세력이 ‘소수이고 약자’지만, ‘권위적’이고 ‘스테레오타입’이라는 사실이다. 코미디언들은 고정되고 딱딱한 것들을 흔들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웃는 것이 진리’는 아니다. 사람들을 웃겼다는 사실로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웃음은 언제나 문제적 지점에서 생겨난다. ‘남보원’이 여성의 심기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사람들을 웃길 수는 없다. ‘남보원’에서 울분을 터뜨리던 강달프가 뾰로롱 마법봉으로 마음이 녹는 것을 보고, 분노나 수치심을 느낄 민노당원이 왜 없으랴? 거리의 집회에서 강 대표를 보고, ‘남보원이다’ 하며 웃어대는 청소년이 생길지도 모른다.
웃음은 위험하다. 그러나 진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잠시나마 받아들이고, 더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일찍이 박성호는 운동권 학생을 패러디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면서 따끔했으리라. 지금도 의도야 어떻든 또 하나의 성역을 건드리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을 놀려대는 웃음을 적절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 역시 수권 세력의 능력을 보여줄 잣대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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