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다. 나는 꼿꼿한 인간이었다. 차를 타면 앞자리를 향해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 차창 밖은 신기했고, 버스에도 구경할 것이 많았다. 생각할 것도 많았다. 절인 파무침이 되어 돌아가는 학생들 위로 잠이 고추장 버무려질 듯 내려앉는 하굣길의 스쿨버스에서도 눈을 붙여본 적은 없다. 물론 수업 시간에 혼수상태에 빠지다가도 쉬는 시간이면 소생하는 것처럼(쉬는 시간이면 자연스럽게 할 일과 할 이야기가 생긴다.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 피곤한 아이들이 스쿨버스에서 잠을 자는 경우는 드물긴 하다. 어쨌든 스쿨버스를 포함한 모든 승용 시설에서, 10대의 나는 잠들지 않았다.
변화는 천천히 온다. 그것이 언제인지 모르는 건 당연하다. 어느 화창한 봄날, 세상에 만발한 햇살이 졸음처럼 반짝이고, 그 축복의 알알이 버스에 뿌려지고 있던 어느 날, 나의 잠을 방해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머리가 유리창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였다. 유리창에 쿵 하고 부딪친 머리는 다시 돌아온다. 머리는 몸에 붙어 있으니까. 다시 머리는 유리창에 부딪친다. 머리가 붙어 있는 목의 근육들은 긴장하지 않으면 숙여지니까. 다시 머리는 돌아온다. 이 반복 운동으로 그때마다 잠시 눈을 뜨면서도 나의 잠은 계속됐다. 첫 번째 징조다.
변화는 또 천천히 온다. 이것 역시 어느 날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사건 역시 이미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옛날 일이다. 이번에는 잠을 자다가 일어났다. 입속으로 후루룩 무엇이 빨려들어왔다. 벌리고 자던 입에서 천천히 고이던 물질이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지려던 참이었다. 입속의 그 물질은 알다시피 점성이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끊기지 않았다. 두 번째 징조다.
그 다음 변화는 빨리 왔다. 나는 후다닥 일어났다. 너무 졸리면, 고되게 잠과 싸우느니 한 10분 그냥 자자고 마음먹고 잔 극장(갑자기 장소 전환이다)에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일어난 것까지는 나만의 일이니까 부끄럽지 않으나, 옆자리에 있던 언니가 “코는 골지 말지” 할 때는 부끄러웠다. 이제는 버스다. 나는 나의 코 고는 소리에 벌떡 잠이 깼다. 세 번째 징조다.
나는 버스에서 진화한다. 아줌마로. 이제는 혹시 오다가 갈지 몰라 앉자마자 눈을 감아 잠을 부른다. 당연히 언제나 편하게 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안 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서서 눈을 감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서 자는 잠은 자리가 나는 순간, 앞이 보인다. 잠과는 관련이 없지만, 덧붙인다. 최근 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 앞으로 차가 위험하게 끼어들었다. 동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옆자리의 사람과 짧은 사이 말을 튼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크게 소리내고 말았다. “어머, 왜 저러니.” 아무에게나 말 붙이는 이런 아줌마의 친화성이라니. 차라리 잠이나 잘걸.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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