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2박3일 동안 어떤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공연과 공연 사이마다 스폰서 광고가 나오는데 거의 외울 지경. 특히 배우 김명민이 등장하는 보험 CF는 아직도 앵앵거린다. 그 훌륭한 연기력으로 꼬마와 여자의 입장이 되어,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절절하게 연기를 한다. 그러자 그걸 바라보던 아저씨들이 하나둘 일어나 쓸쓸히 흡연구역으로 간다. 꼬마는 “100살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고 여자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 한마디 못하는” 처지라는데, 그런 짐을 다 지고 가는 이 중년의 남자들은 어딜 가나 천덕꾸러기다.
‘남자의 자격’. 사진 한국방송 제공
TV 속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소녀 그룹을 다 모으면 전국체전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 미소년 아이돌들도 생계형으로 변신 중이고, 국민 요정 이효리도 스스로를 장년이라 칭한다. 그러니 누추한 중년의 남자들은 어디에 몸을 기대 밥벌이를 하고 가족들 보험료를 챙길까? 이런 때 리얼 버라이어티 폭발 일보 직전에 이경규가 나서서 ‘남자의 자격’(·한국방송 일요일 오후 5시20분)이라는 좌판을 벌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측은’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 아니다. 이들이 부제로 내건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중에 ‘늙은 몸 내던져서 웃기기’만큼은 제대로 해줄 것 같다.
‘남자의 자격’의 열쇠는 뭐니뭐니 해도 김태원이 쥐고 있다. 은둔의 기타 황제에서 어느 순간 예능의 블루칩- 페니실린 제조용의 푸른 곰팡이색이지만- 이 된, 요즘 남자 중의 남자다. 불행하게도 별명은 이홍렬·신동엽을 이은 ‘국민 할머니’, 심지어 ‘국민 시체’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 나이에 내가 왜 여기 와 있냐”며 투덜거리지만, 어떤 미션이 주어지든 가장 열심히 한다. 그것도 ‘1박2일’ 멤버들처럼 미친 듯이 땀 흘리는 건 아니고, 조용조용하고 진지하게 그 이상한 상황 속으로 들어간다. ‘남자, 신입사원이 되다’ 편에서는 몇십 년 만에 지하철을 타느라 없는 머리칼이 더 빠지고, 문서를 작성하라니 “워드가 뭐야, 워드가?”라며 손가락 하나, 심지어 가운뎃손가락으로 독수리 타법을 구사한다. 상사가 와서 왜 그걸로 치냐니, 이게 편하다면서 자칫하면 욕으로 보이게 손가락을 드는 장면에서는 나만 뿜었나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리를 듣는 이경규의 버럭질이 여기서는 아주 편하다. 아이돌도 없는 ‘어른 남자들끼리의 세계’라는 게 그에게는 딱인 것 같다. ‘2PM 댄스 따라잡기’를 하며 “이거 재활치료라고 생각해”라고 일갈하는데, 어쩌면 그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지. 이어서 디카로 찍은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라고 하니, 메모리 카드 꺼내는 데 30분이나 걸리고, 컴퓨터에 꽂으니 더욱 첩첩산중이다. 차라리 군대를 다시 가라면 갈 것 같다.
더불어 김성민이 은근한 진국의 맛을 보여준다. 뭐든 열심히 하는 그 맹렬함이 재미있다. 여행사 직원이 된 미션에서 그래도 동기 만나러 간다니 좋아서 팔딱대고, 자기가 잘 아는 싱가포르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자 눈을 반짝거리는 모습이 정말 ‘리얼’로 느껴졌다.
자학과 자조가 섞인 남자들의 자기 비하, 참 웃기면서도 쓸쓸하다. ‘남자의 자격’은 사실 ‘남자의 자격지심’이다. 누구든 스스로를 낮춰야 살아남는 시대다. 웃으면서 이겨내자.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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