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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베티, 어글리 매거진

등록 2009-09-02 18:07 수정 2020-05-03 04:25
〈어글리 베티〉

〈어글리 베티〉

내가 엉큼해서가 아니다. 그쪽에서 자꾸 속살을 보여주니 어쩌나? 미국 뉴욕의 패션 매거진 세계는 노출증이 심하다. 잘 빠지고 똑똑한 30대 여자가 그 세계에서 어떻게 글을 팔면서 사는지는 에서 배웠다. 늘씬하고 생각 바른 20대 여성이 그 업계의 악녀들과 어떻게 싸우는지는 에서 보았다. 그렇다면 미모는 하위 20%, 순수함은 상위 20%인 신참 여직원은 이 정글에서 어떤 생존법을 터득했을까? 에 물어보자.

현존하는 ‘미드’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여주인공 베티 수와레즈. 그동안 나의 지론은 ‘못생겼으면 튀기라도 해야지’였는데, 그녀를 본 뒤에 이 주장을 보류하기로 했다. 에서 보듯이 스스로 추녀라 여기는 이들은 어두침침한 보호색으로 스스로를 숨기는 법이다. 그러나 베티는 당당하다. 번쩍거리는 치열 교정기, 국적을 알 수 없는 미스매치 패션, 게다가 그 모든 것이 화려한 원색을 입고 있다.

그래도 좋다. 봐주자. 베티는 외모는 문제투성이지만 생각만은 바르게 박힌 아이다. 반대로 그녀를 둘러싼 잡지사와 출판 제국 브래포드 미드 가문은 겉모습은 완벽하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은 ‘어글리’들의 백화점이다.

가문의 영광으로 편집장을 맡은 대니얼은 잡지는 뒷전이고 예쁜 여비서들과 놀아나는 게 일과다. 그의 앙숙이던 형 알렉스는 성전환 수술 뒤에 알렉시스로 다시 태어나, 한때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남동생과 의기투합해 죽고 못 사는 남매 사이가 된다. 잡지사를 삼켜버리려는 야욕에 불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윌레미나는 회장과 결혼하려다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정자를 빼돌려 대리모에게 아기를 낳게 한다.

솔직히 부자들이 행복해하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 그래도 요즘 같은 미국 드라마를 보면 세계 최고의 부유층에 학벌과 외모까지 갖춘 이 귀족들의 세계가 그냥 동물원 같다. 아니 그러면 원숭이나 개미핥기에게 모욕이 될까? 마치 몰락 직전의 로마 시대, 미친 탐욕만 가득한 의 재현은 그저 헛웃음만 나오게 한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미디어를 쥔 부유층의 음모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는 부자지만 바보이고, 별로 행복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우리를 너무 미워하지 마. 그리고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마.”

백만장자들의 사이코 드라마 반대편에는 베티 가족과 친구들의 순박한 코미디가 있다. 닷새 동안 새벽 2시까지 야근을 시키는데도, 리무진으로 퇴근시켜주고 차 안의 생수도 공짜라는 데 감격하는 베티. 이 착한 바보는 직업 때문에 ‘SM 복장’으로 슈퍼모델들과 사진을 실어야 하지만, 추수감사절에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가 오기를 바라는 조카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치즈버거를 달라고 우겨대는 남자친구가 있다. 어쨌든 유유상종인가?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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