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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말만 했다

독서 행위의 진화를 통해 ‘독서’를 다시 생각해보는 <책 읽는 뇌>
등록 2009-07-09 17:39 수정 2020-05-03 04:25
<책 읽는 뇌>

<책 읽는 뇌>

소크라테스는 글자를 믿지 않았다. 그리스 시대의 위대한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신의 시를 외워서 낭송했다. 그들은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시모니데스는 연회 중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진 뒤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있던 위치를 알려주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문자화된 말이 사회에 심각한 위험을 제기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 이유 첫 번째는, 문자는 불가변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교육의 핵심은 ‘대화’를 통한 산파술이다. 문어는 되받아 말하지 못한다. ‘죽은 담론’이다. 특히 그는 ‘문자언어가 곧 실재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에 민감했다. 두 번째 이유는 기억의 파괴다. 그는 ‘암기’만이 개인의 지식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이유는 언어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다. 기록된 문자가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떠돌아 그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지식에 대한 접근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독서는 판도라 상자였다. 어쨌든 이 모든 이야기는 플라톤의 ‘받아 적기’로 인해 후세에 전해졌다.


인간은 독서하지 않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를 산 소크라테스는 글과 문자의 경계에 살았다. 그로부터 2500년, ‘back’ 버튼으로 이전에 읽었던 전혀 다른 글로 이동하고, 링크를 통해 읽기를 마치기 전 다른 글로 진입하고, 모든 글들이 ‘검색’에 의해 펼쳐지는 ‘새로운 독서’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경계의 소크라테스는 이 경계의 세계에 뜻밖의 말을 함축적으로 전한다. 매리언 울프의 (원제는 ‘Prost and the Squid’·살림 펴냄)는 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들려준다. 책은 ‘독서’가 인류의 문명에 들어온 뒤 벌어진 일들을 인문학적이고도 과학적으로 일별해준다.

문자의 탄생과 그림문자에서 음성문자로의 진입이 일어난 게 고작 2천 년이다. 지긋지긋한 ‘독서’ 타령의 수명은 그보다 한참이나 짧다. 인간의 진화는 그렇게 빠르지 않으니 2천 년 전의 인간과 오늘의 인간이 다르지 않다. 유전자에 독서를 담당하는 게 있을 리 없다. 독서는 다섯 단계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의 주요한 일은 뇌에 문자를 읽고 해독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일어나는 ‘길이 난다’와 비슷한 일이다). 마이엘린 강화를 통해 길을 내는 이 일이 어린이의 성장 과정에서 일어난다.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밟아가듯, 2천 년의 독서 역사를 통해 일어난 일이 한 인간에서 2천 일 만에 완성된다. 이 뇌의 길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본 연구 결과를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독서는) 사람의 생물학적 시간표가 고려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3개 언어에 대한 연구를 보면, 5살부터 독서를 시킨 유럽 아이들이 7살에 독서를 시작한 아이들보다 성취도가 낮았다.

우리는 독서하지 않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는 결론은 ‘난독증’에서도 나온다. 이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저자의 한 아들은 난독증이고 다른 한 아들 역시 단어 인출에서 문제가 있다. 그의 가계도에서도 난독증은 면면하게 이어져왔다. 개인적 호기심에 학문적 호기심을 더해, 저자는 난독증으로 의심되는 과거의 인물들 리스트를 작성한다. 언어 분야에서 ‘낙제생’이었던 아인슈타인이 그랬고, 에디슨은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몸도 약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다빈치 역시 기괴하고 방대한 자필 원고에서 반전된 ‘거울 글씨’ 등을 남겼다. 그는 이러한 리스트가 두툼해져감에 따라 독특한 가설을 세운다. 난독증 환자의 가족은 난독증 증상이 있든 없든 특출한 공간적 재능을 보여준다. 독서를 통해 우뇌 우월형 뇌가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통로는 좌뇌를 우회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공간 능력 발달로 이어진다.

‘유창한 독서가’가 아님을 탓할 게 아니라

‘독서’는 저자가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책 읽기’에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매력적인 인용문이 어디서 나왔을 것인가. 각종 뇌 이론도 책으로 공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주장한다. 인간의 지적 진화의 진정한 이슈는 구술언어와 문자언어의 융합에 있다. 두 가지 커뮤니케이션 양식 모두에 인간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관여한다. 지금의 아이들을 ‘유창한 독서가’가 아님을 탓할 게 아니라 이중 텍스트 이해자, 다중 텍스트 이해자가 되도록 키워야 한다. 또 하나 더 인상적인 것. 우리의 뇌 안에는 ‘지연 뉴런’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지연 뉴런이 하는 일은 다른 뉴런들의 신경 회로 전달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이 덕분에 조화로운 순서와 질서가 만들어진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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