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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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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위악이 우리를 구원한다

등록 2009-05-28 17:08 수정 2020-05-03 04:25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피부색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짙은 화장에 머리를 삐죽 세운 밴드가 무대 위에서 괴성을 지른다. “난 부모가 없어. 내가 다 죽여버렸으니까.” 하지만 이 보컬은 알고 보면 시골 출신의 순박한 효도 청년. “오늘 밤, 모두 다 겁탈해버릴 거야.” 지옥에서 온 사자라며 허세를 떠는 베이스와 드럼, 알고 보면 여사장에게 아부하는 딸랑이와 여고생 체육복에 환장하는 오타쿠. 어찌하여 이 비리비리한 청춘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척’하게 되었을까?

몇 년 전부터 만화 팬들에게 컬트적인 사랑을 받아온 와카스기 기미노리의 개그 만화 (이하 DMC)가 극장판 실사영화로 쳐들어왔다. 괴팍한 언어와 뒤집어지는 유머로 광신도들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공 크라우저 2세가 과연 만화 세계 바깥으로 교세를 확장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DMC〉를 들뜨게 하는 개그의 축은 주인공 네기시가 처해 있는 절대적인 아이러니다. 멋쟁이들의 거리를 거닐며 달콤한 북유럽풍 팝을 하고 싶어 상경한 청년은 밴드 오디션을 보러갔다가 여사장에게 내면의 재능을 들켜 위험천만한 데스메탈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는 겁탈 100연발을 외치지만, 화장을 지우면 과격한 팬클럽이 둘러싼 공연장 바깥을 빠져나가기도 버거운 약골. 처음에는 알바 수준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 때문에 연애도 친구도 꿈도 모두 박살이 나버리고 생활은 점점 더 피폐해진다. 만화 단행본의 띠지에 적힌 어느 독자의 글귀가 가슴에 와닿는다. “진짜 미안한 일이지만… 크라우저씨가 고뇌할 때마다 웃을 수 있답니다.”

어떻게 보면 데스메탈이라는 음악도, 이 만화 속에 나오는 대사들도 온갖 위험천만의 것들로 가득하다. ‘강간’ ‘살해’ 같은 단어들은 자장면집의 단무지처럼 널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 밴드와 팬들이 벌이는 ‘나쁜 척 놀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게 또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주인공의 선량한 행동은 ‘크라우저님이 성추행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식으로 오해받고, 그로 인해 주인공이 곤경에 빠질수록 우리는 즐겁다. 주인공의 남동생이 DMC의 광팬이 되어 학교도 안 가고 엄마에게 고함이나 지르는 모습을 보고 DMC 스타일로 훈계하는 장면에도 배꼽이 빠진다. 그래 가끔은 착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정말 악당처럼 굴고 싶을 때도 있잖아. 스스로의 예쁜 척에 질린 여성들은 담뱃불을 혀에 비벼 끄고 여자애처럼 알록달록하게 꾸며놓은 주인공의 방 안을 뒤집어버리는 여사장의 망동에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

솔직히 영화의 디테일은 약하다. 하지만 만화 속에서 DMC가 부르는 노래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했던 팬들에게는 귀를 뚫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DMC가 갑자기 러브송을 부르자 메탈 팬들이 “이건 우리를 벌주려는 거야. 노래가 너무 달콤해서 토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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