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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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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90%는 가난뱅이”

<가난뱅이 역습>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 인터뷰…
“남 말 듣지 말고 자신의 ‘거처’를 만들라”
등록 2009-04-24 19:19 수정 2020-05-03 04:25
<가난뱅이 역습>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 역습>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

밤 늦은 11시.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 재활용가게 ‘아마추어 반란’ 5호점(도쿄 스기나미구 고엔지)가 한산해지는 시간이다. 가게 주인장 마쓰모토 하지메(34)가 한숨을 돌린다. 4월은 이사철이라 중고물품을 수거하느라 정신이 없다. 찾아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마쓰모토는 중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건넸다.

마쓰모토는 ‘가난뱅이의 별’ ‘스트리트 게릴라’다. 최근 (이루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그의 ‘투쟁기’는 필살기가 ‘웃겨죽이기’인 듯 유쾌하다. 대학 시절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고 결행한 식당 밥값 20엔 인상 반대 데모가 그의 ‘찬란한 투쟁’의 서막이었다. 모임의 회원 수는 몇 명 안 되었으나, 물량작전은 먹혔다. ‘학생식당 결딴 내기 10만명 집회 결행’이라 적힌 전단을 학내에 붙이고 매일 “학생식당 너무 맛없다”고 확성기를 틀어댔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가운데 다가온 디데이, 학생들은 식판을 내던지고 그릇을 깨고 조리실로 난입해 들어갔다. 결과는 해피엔딩. 식당은 10엔 특별할인을 단행했다. 대학 때도, 졸업하고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조직하고 나서도 그의 투쟁은 이런 식이다. 추울 때는 난로를 피우고 꽁치를 굽거나(‘가난한 사람은 꽁치를 굽는다’라는 일본 속담에서 나온 것) 찌개를 끓여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롯폰기힐스를 불바다로!’라는 무시무시한 전단지를 뿌리고는 역 앞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이다(‘한가해도 유분수지’). 무슨 일이냐는 사람들한테는 “기무라 다쿠야(일본 최고 인기 배우)가 온대요”라고 말한다.

-당신이 말하는 ‘가난뱅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마음자세인가, 실질적 조건인가. 선택인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인가. 가난뱅이에게 가난은 필수조건인가 충분조건인가. 당신 정말 가난뱅이인가.

=글쎄, 일단 난 돈을 쓰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뱅이다. 어린시절에 상당히 가난했다. 슬럼가에서 자랐고, 아버지도 갑자기 일이 없어지거나 하고, 집에 돈도 없었다. 그러나 가난뱅이란 지금 가난하고 어린시절에 가난했고 하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꽤 수입이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가난뱅이일 수 있다. 사랑남기 위해 능력을 키우려고 많이 써야 하고 이를 위해 다시 수입을 더 올려야 하는, 그런 생활 리듬을 가진 사람은 가난뱅이다. 어찌 보면 세상의 90퍼센트가 가난뱅이일지도 모른다. 돈이 있다 없다가 기준이라면 아프리카 난민이 가난뱅이겠지만 그들보다 자본주의 세계에 가난뱅이가 더 많다.

-당신의 가난한 생활을 소개해달라.

=생활비는 한 10만엔, 여기서 집세 3만엔, 전기 광열 휴대전화 등에 2만엔, 나머지 5만엔 중에 4만엔은 술값, 나머지 식대, 특히 식비는 여기서 대충 재료 사서 친구들과 만들어서 먹기 때문에 별로 안 든다. 취미는 여기 내 재활용가게에서 다 한다.

-‘가난뱅이의 역습’은 뭔가.

=자본주의에 얽매이거나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맘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를 위해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작은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승리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우리 맘대로 해서 “봐라, 어떤 게 좋은 거냐” 하고 보여주면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한시라도 빨리 하는 게 좋다. 지금 참으면 언젠가 좋은 세상 온다는 것보다,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역습’이다.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게 ‘역습’이다.

-데모가 신선하다. 즐겁지 않으면 데모가 아니다, 라는 것 같다.

=‘얼마나 즐길 수 있나 보자’하고 데모를 한다. 우리는 국가 행정에 모든 것을 빼앗겨버렸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없다. 자기 사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데모를 하는데, 즐겁지 않으면 할 필요 없다. 안 하고 말지.

-처음부터 그랬나, 아니면 바뀐 건가.

=대학에서 데모를 한다기에 재미있어 보여 갔는데 별로 재미없었다. 하는 말은 맞는데…. 나같이 생각하는 애들이 꽤 있었다. “맞긴 한데 난 안 갈래”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의 말과 문자가 자신들의 ‘센스’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말, 문장, 그런 것이야말로 듣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마쓰모토는 “즐겁게 데모해보기 위해서” 구의원 선거에도 나갔다. ‘합법적으로’ 역 앞 길을 막고 확성기 빵빵 쓰는 데모를 하고 싶어서다. 비록 떨어졌지만 1061표를 득표했고 승리의 파티도 했다. ‘공탁금 탈환투쟁 승리’(400표 이상이면 ‘탈환’ 가능). 그는 자신이 조직한 데모 중 구의원선거가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확성기를 틀어놓고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준다기보다는 괴롭히는 선거운동 방식을 ‘축제’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한 선거도 역시 예전의 선거와 마찬가지로 ‘민폐’는 아니었나.

=역 앞에서 매일 파티했다. 거리가 해방공간이 되었다.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리고 혁명 후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거리를 걷는 이들을 보면 자신을 검열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거리에선 이런 일 하면 잡히지, 민폐지, 그럼 안 되지 하는 검열하고 있다. 근데,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 아닌가? 선입견으로 처음부터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거 뭐야?”라며 놀랄 만한 게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이 바뀌어나갈 거라 믿는다. 하나를 놓고 좋다는 이, 아니다라는 이, 언제나 있다. 그러면 싸우라. 뭐가 좋은지 보여주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게 ‘자치’다. 대립을 없애고 그냥 참는 것, 그것이 더 나쁘다. 민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민폐 기준이 뭔가. 다른 선거 후보들이 종일 더 큰 소리로 자기 이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음악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쁘다면 그것도 선입견이다. “이런 것은 하면 안된다”고 하는 걸 계속해서 없애가야 한다.

-왜 하필 구선거였나?

=제일 싸니까. 30만엔 내면 입후보할 수 있고, 400표 이상이면 돈은 다시 돌아온다. 차를 쓰는 것도 다 합법인데 트럭 쓴다 음악 튼다 하니까 경찰이 무지 방해를 했지만 우리가 누군가.

-한국의 촛불집회를 알고 있나. 한국에서도 꽤나 귀엽게 운동을 했다. 데모의 달인 마쓰모토가 보기에 어땠는지?

=TV를 통해 봤다. 분위기 고조되는 방식이 일본과 많이 달라 보였다. 일본은 의무감으로, 가지 않으면 안 돼서 가거나 불려가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자발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 생기가 넘치는 활기찬 모습이 대단했다.

*마쓰모토는 “100엔숍에 대항할 것은 공짜숍밖에는 없어”라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야마시타 히카루와 함께 ‘아마추어 반란’이라는 재활용가게를 만들었다. ‘아마추어의 반란’은 ‘레프트라이트’다. 상표권이 없다. 수출도 잘 된다. 가끔 독일에서 멕시코에서 전화를 걸어서는 한번 해보겠다고 말을 한다. 마쓰모토는 4월27일 ‘노동절’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누가 불러준 것도 아니지만…”

-왜 재활용가게인가?

=재활용가게가 무지 하고 싶었다. 편의점처럼 그냥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중고품 수거하러 가서 고쳐주기도 하면서 아줌마하고 친해지기도 하고,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혁신적인 저항이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새 것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대량소비한다. 그것에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이다. 낭비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세상에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대항하는 거다. 그리고 주변사람들과 사이가 좋아진다.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나?

-한국의 실업률이 대단하다.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라는 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이 가난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 없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고시생, 취업준비생으로 만든다. 세상도 그들을 실업자라 하지 않고 ‘산업예비군’이라 부른다.

=일본과 완전 붕어빵이다. 산업예비군, 그거 한시라도 빨리 그만두는 게 좋다. 물론 일이 자신에게 맞고, 일을 너무 좋은 거라면 다르다. 그게 아닌데도, 무리하게 취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문제다. 얽매이지 않고 느긋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인정해야 한다. 대학을 나와 모두 취직해, 월급 타, 내집 마련해, 결혼해 이런 것 안 하면 비정상이라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 모두 소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 우습지 않은가?

참 돈 이야기에서 할 말 있다. 돈 없어도 부모 봉양 가능하다. 오히려 돈 있으면 ‘로진홈’(실버타운) 같은 데 보낸다. 마음의 문제다. 취직 잘하고 월급 많이 받아서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 다 거짓말이다. 일류인간 안 되면 안 된다는 거, 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이다.

-한국의 가난뱅이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한국의 가난뱅이들은 어떤 사람인가?(웃음) 하고 싶은 말은 딱 두 가지다. 우선 남이 하는 말 듣지 말라. 상식, 규율, 규칙, 다 거짓말이다. 자기가 정하는 것이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이바쇼(거처)’를 만들라는 것이다. 나의 거처는 재활용가게다. 혼자 살면 돈이 더 든다. 동료가 있는 게 좋다. 거처를 만들고 동료와 친구들이 생기면 삶은 더욱 풍부해진다. 거처가 마음 풀 수 있는 작은 술집이든, 폐가를 인수해서 뭔가 해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거처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가난뱅이들이라면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국경을 넘어 이어지기 쉽다. 우리의 ‘아마추어의 반란’이 한국의 ‘아마추어 반란’과 이어지면 국가 이상으로 신뢰 가능한 것이다. 정리하면, 남 이야기 듣지 말고, 있을 곳을 만들라.

-한국에서 뭘 할 계획인가.

=초대받은 건 아니지만, 책도 출판되었으니 어떤 사람들이 사고 보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참,요즘 촛불시위 하나? 하면 가보고 싶다. 그리고 일본에서 한 가난뱅이들의 데모, 선거 때 했던 식으로 역 앞에서 꼭 한번 해보고도 싶은데….(웃음)

도쿄(일본)=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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