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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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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과 아큐, 쌍둥이의 두 얼굴

호방한 개방성과 소심하고 초라한 군상,
두 기질의 법칙성을 추적한 이상수의 <아큐를 위한 변명>
등록 2009-04-01 15:34 수정 2020-05-03 04:25

‘사물을 실상보다 지나치게 크게 혹은 작게 표현함으로써 문장의 효과를 높이려는 수사법’을 일컬어 과장법이라 한다. 전자, 곧 “사물을 실상보다 지나치게 크게 표현”하는 능력에 관한 한 중국인을 따라잡을 만한 입담을 지닌 겨레는 찾기 어려울 듯싶다. 중국 전국시대의 철인 장자의 붕새 얘기가 대표 격이다.

붓만 들면 바늘을 대들보로 만드는 과장법

<아큐를 위한 변명>

<아큐를 위한 변명>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새의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붕의 등도 넓이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새가 한번 솟구쳐 날아오르면 날개는 마치 하늘을 덮은 구름과 같다. …바람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크나큰 폭풍우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날아오르는데, 그 큰 날개를 치고 날아오르면 구만리장천을 여행한다.”( 소요유 전편 중에서)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은 또 어떤가? 폭포수는 웬만하면 ‘3천 척’이요, 백발은 모름지기 ‘3천 장’까지 길고, 하룻밤에 족히 ‘300잔’은 마셔야 대취가 가능하단다. 그야말로 “붓만 들었다 하면 바늘을 대들보로 만드는 웅장한 수사법”을 구사한 게다. 옛 중국에 ‘거인족’이 살았던 것은 아닐 테니, 가히 ‘대륙의 풍모’가 느껴진다. 중원을 차지한 이들의 호방한 개방성이 느껴진다. 중국인이 대표하는 한 가지 얼굴이다.

정반대의 얼굴도 있다. 문호 루쉰이 에서 그려낸 중국인의 또 다른 전형이다. 작고 초라하고 삶에 찌든, 불쌍하기보다 차라리 비열해 보이기까지 하는 군상들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이 중국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 공존할 수 있을까?” (이상수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이 물음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겉보기에 서로 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얼굴은 대륙이라는 광대한 무대를 배경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되풀이해 펼쳐진 정치 투쟁이 낳은 쌍둥이의 두 얼굴”이라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장자와 이백의 호방함의 상징하는 ‘대륙 기질’은 어디서 왔는가? 지은이는 “중국인의 대륙 기질은 중원을 둘러싼 투쟁과 제국 건설, 그리고 제국 유지를 위해 발전해온 심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광활한 중원의 패권을 쟁취하고 경영하기 위해 영웅들은 먼저 가슴을 크게 열어야 했다”는 게다. 그럼 비루한 ‘아큐 기질’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1921년 을 내놓으면서 봉건제국의 폭압성이 아큐라는 왜곡된 인간상을 낳았다고 봤다. 지은이는 그런 루쉰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큐 기질은 대륙 기질의 그림자다. 대륙 기질의 인간상이 전제통치의 절대적 폭압 아래 짓눌렸을 때, 이들의 심성은 아큐 기질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전제통치 아래선 천자 외에 그 누구도 승리자일 수 없었다. …어떤 겨레에 고유한 ‘성격’이 있다는 생각은 관념적인 것이다. 만약 어떤 인간 집단에 공통의 성격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사회구조의 산물일 뿐이다.”

중국·중국인에 관한 현장 보고서도 겸해

일견 ‘공자님 말씀’ 같은 결론이지만, 이를 ‘입증’하기 위한 지은이의 노력은 인정을 받을 만하다. 통합과 분열의 시대를 이어온 5천 년 중국 역사를 통사로 가르고, 각 시대를 이끌어간 사상의 연대기를 따라가며 ‘대륙 기질’과 ‘아큐 기질’ 변주의 법칙성을 추적해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중국 역사와 철학에 관한 대중적 입문서이자, 중국 문화에 대한 평론서이기도 하다.

여기에 지은이가 베이징 특파원 시절 몸으로 경험한 중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기가 더해졌다. 특히 중국인들이 중시하는 ‘관시’(關係)를 ‘의리의 네트워크’로 부르며 그 기원을 좇는 과정에 등장하는 각종 ‘취재담’이 흥미롭다. 그러니 이 책은 발품을 아끼지 않고 중국 대륙을 누비며 사람 냄새 맡기에 골몰한 한 성실한 기자의 중국·중국인에 관한 현장 보고서로 읽을 수도 있겠다. 그 저변에 흐르는 것은 중국인·중국 사회에 대한 애정이다. ‘아큐를 위한 변명’으로 제목을 뽑은 이유도 수많은 ‘아큐들’에 대한 안타까운 애정 때문으로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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