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그럴 테지만 특히나 정치인들에게 밥자리·술자리는 일의 연장이다. 이들은 각계 전문가, 지역 유력 인사, 기자, 동료 의원 등과 함께 밥을 먹으며 정보를 주고받고, 술잔을 돌리며 ‘비밀’을 나눈다. 물론 국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 일대가 주요 무대다. 다른 이의 이목을 피할 수 있도록 방을 갖춘 식당을 선호한다는 점은 소속 정당이나 계파를 가리지 않지만, 주로 가는 곳은 ‘다르면서도 같다’.
한나라당 인사들은 국회 맞은편 유기농 샤부샤부집인 ‘들뫼바다’, 양·대창구이 전문점인 ‘양마니’, 일식집 ‘동해도’ 등을 자주 찾는다. ‘들뫼바다’는 작고한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운영했던 곳인데, 동생 김형진 변호사가 한나라당 경기 고양 일산갑 당협위원장을 지낸 인연이 있다. ‘동해도’는 홍준표 원내대표와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이 단골이다.
안동국시 전문점인 ‘소호정’은 진수희 의원 등 이재오 전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한테 인기가 높다. 이 전 의원이 안동국시를 즐겨먹어 추억이 담긴 음식이기 때문이라 한다. 서강대교 북단에 자리한 레스토랑 ‘서강8경’, 조계사 뒤 한정식집 ‘유정’ 등은 이명박계 의원들이 여의도 바깥에서 모이거나 사람을 만날 때 찾는 곳이다.
박근혜계 의원들은 국회 맞은편 일식집 ‘오미찌’와 인도네시아 대사관 맞은편 고깃집 ‘창고’를 자주 드나든다. 박근혜계 의원들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은 “오미찌가 구내식당”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창고’에선 박근혜계 의원들이 각기 다른 기자들과 식사를 하고 나가다 마주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민주당은 호남 출신 인사들이 많은 때문인지 남도 음식점을 자주 찾는다. 전병헌·노영민·최문순·김희철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맞은편 굴비정식으로 유명한 ‘대방골’을 자주 간다. 주인이 원래 전병헌 의원 지역구(서울 동작갑)에서 식당을 하다 여의도에 가게를 하나 더 냈는데, 전 의원이 동료 의원들한테 입소문을 냈다고 한다. 남도 정식을 내놓는 노량진 ‘순천식당’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좋아하는 곳이다.
이광재 의원은 여의도 국민은행 뒤편 ‘주문진 생태집’ 단골이다. 강원도에서 생태를 배송받는 탓에 주문이 몰리면 음식을 먹을 수 없는데, 이 의원은 식사 약속을 잡고 나면 전화를 해서 미리 주문을 해놓는다. 최재성 의원은 ‘부산복집’ 마니아로 유명한데, 복지리에 수제비와 김치를 넣어 끓여먹는 메뉴는 최 의원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다른 손님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재밌는 건 이곳이 ‘적진’인 한나라당 당사 지하라는 사실이다.
입맛이 비슷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여의도의 오랜 한정식집 ‘다원’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모두 좋아하는 곳이다. 생선 요리를 판매하는 ‘낙원’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해 두 당 의원과 당직자 모두 즐겨찾는다.
어쩌다 마주친 그 곳에선 ‘손뼉 소리’가 나기도 한다. 2006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박근혜계, 민주당 정동영계 의원 대여섯 명이 한 노래주점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자리에서 이들은 “BBK 문제를 그렇게밖에 못 다루냐”고 서로 탓하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욕망의 섬 여의도의 밤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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