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예쁜 남자배우들이 떴다. 드라마 , 영화 등 ‘꽃미남’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잇따라 화제다. 극중 꽃미남 캐릭터를 살아숨쉬게 하는 배우들도 인기다.
단순히 잘생기고 멋진 외모를 가진 배우들을 지칭하던 ‘꽃미남’은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졌다. 시대가 원하는 이상형에 맞춰 성격, 외모, 성적 매력, 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한 꽃미남들이 등장했다. 꽃미남이란 카테고리 안에 ‘온미남’(따뜻한 인상의 미남), ‘냉미남’(차가운 인상의 미남),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 등도 생겨났다.
꽃미남은 오늘도 진화 중이다. 현재는 만화나 소설, 드라마와 영화에서 만든 캐릭터가 실제 이미지와 겹쳐진 ‘캐릭터 꽃미남’ 배우들이 사랑받는다. 눈부신 외모는 기본이고, 개성 있는 극중 캐릭터의 성격을 닮은 캐릭터 꽃미남들이 연애 로망 판타지의 세계로 여성들을 끌어당긴다.
위험하거나 달콤한 꽃미남과의 연애를 그린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 빠진 10대와 경제력을 갖춘 20·30대 여성들은 배우의 이름보다 극중 캐릭터의 이름으로 배우를 기억하고, 사랑하며, 트렌드를 만들어간다. 텍스트 속에 있던 캐릭터들이 영상으로 살아나면서 캐스팅 과정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만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많아지면서 배우 캐스팅 과정에 변화가 생겼다. 방송영화계에서는 텍스트로 접했던 상상 속의 인물을 판박이 스티커로 떼어내 영상으로 옮긴 듯한 배우들을 찾아나서고 있다. 흥행 보증수표인 꽃미남 스타보다 신인이더라도 외모나 성격이 텍스트 속 캐릭터에 근접한 인물을 선호한다. 그냥 꽃미남이 아니라 ‘캐릭터가 있는 꽃미남’이 소비되는 시대가 됐다.
‘누굴 캐스팅 할까‘가 마케팅 전략아시아에서 일본 만화 의 위력은 대단하다. 1992년 출간된 는 전세계에 가장 많이 팔린 일본 ‘국민 만화’다. 총 36권이 11년간 발행됐고, 애니메이션과 영화, 드라마로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대만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는 그해 ‘최고 시청률’ ‘최고 DVD 판매율’ 등 각종 흥행 기록들을 갈아엎었다.
는 재벌 후계자들로 구성된 꽃미남 그룹 ‘F4’가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주인공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시아 각국에서 사랑받는 킬러(Killer) 콘텐츠가 될 수 있었던 건 꽃보다 아름다운 네 명의 남자, F4의 힘이 컸다. 까칠한 부잣집 도련님인 쓰카사, 여주인공 쓰쿠시의 ‘백마 탄 왕자’인 루이, 연상녀만 사귀는 바람둥이 소지로, 의리의 사나이인 아키라는 모두 학생이다. 하지만 이들은 공부는커녕 파티나 즐기며 전교생들의 우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으로 학생들 위에 군림한다. 비현실적인 인물들이지만 재력과 외모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꽃미남이란 설정 덕분에 리얼리티쯤은 가볍게 뭉개고 간다.
국내외 만화팬들에게 드라마와 영화에서 ‘F4’를 연기할 배우가 누구인지는 뜨거운 관심사였다. 원작 속 캐릭터를 닮은 배우를 찾는 건 제작사뿐 아니라 원작 팬들의 몫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판 제작 기획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선 가상 캐스팅 논란이 벌어졌다. 까칠한 쓰카사 역에는 이동욱·조인성 등이, 부드러운 루이 역엔 강동원·장근석 등이 이름을 올렸다. 실제 누가 캐스팅됐다더라는 거짓 정보가 돌면서 각종 드라마 게시판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가상이었지만 배우들의 이미지로 점쳐본 누리꾼들의 ‘희망 캐스팅’은 그 역으로 가장 인기 있는 꽃미남 배우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인기투표였다.
지난해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는 이런 관심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다. 영화 홍보사는 한국판 영화 제작을 가정하고 포털 사이트에서 캐스팅 관련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조인성(쓰카사), 김현중(루이), 김동욱(소지로), 천정명(아키라)이 F4로 뽑혔다. 실제로 드라마로 만들어진 한국판 에서는 이민호(쓰카사-구준표), 김현중(루이-윤지후), 김범(소지로-소이정), 김준(아키라-송우빈)이 캐스팅됐다.
이렇게 방송영화계에서는 꽃미남 캐스팅이 흥행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원작이 유명할수록 캐스팅 과정은 더 까다로워진다. 배우의 이미지가 캐릭터의 성격과 외모를 닮아야 한다. 원작의 주인공이 꽃미남으로 설정된 작품일수록 배우를 고르는 기준은 엄격하다. 드라마 , 영화 등에 출연한 꽃미남들은 여전히 캐릭터 논란 중이다.
거뭇한 콧수염·다크서클에도 실망지난 1월5일, 한국방송 가 처음 방송된 뒤 시청자 게시판은 배우들의 연기 품평회가 열린 듯 다양한 시청소감이 올라왔다. 원작 속 캐릭터와 실제 배우의 이미지가 일치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싱크로율’에 대한 점수 매기기였다. 특히 가상 캐스팅 때부터 루이 역으로 물망에 올랐던 가수 김현중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문화방송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엉뚱한 연하남으로 사랑받았던 김현중은 이번 드라마가 첫 연기 도전이다. 게시판에는 “연기가 어색하다”는 지적과 맞서 “김현중이 가상 캐스팅 때부터 거론된 이유를 알겠다. 꽃미남 루이 역에 제격이다”는 긍정적인 반응까지 다양한 의견이 눈에 띄었다. 고화질 영상에서 드러난 김현중의 거뭇한 콧수염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일부 시청자들은 “꽃미남답게 수염과 다크서클을 지워달라”며 좀더 완벽한 윤지후를 그려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상상 속 이미지를 살아 있는 인물로 옮긴 이민호·김범·김준에 대해서도 가혹하거나 훈훈한 점수를 매겼다.
캐스팅에 대한 고민과 기대는 드라마 제작사가 더 컸다. 그룹에이트 배종병 기획PD는 “는 10대 트렌드물의 바이블”이라며 “매력 있는 캐릭터 덕분에 이야기가 친숙해도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보고 배우 캐스팅에 신경썼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고민은 만화 원작 속 캐릭터와 꼭 닮은 배우를 찾는 일이었다. 조인성, 강동원 등 꽃미남 배우들은 많았지만 ‘고등학생 꽃미남’으로 볼 수 있는 20대 초반 배우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제작진은 6개월 동안 아이돌 스타와 신인 배우 200여 명의 오디션을 거쳐 지금의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배 PD는 “큰 키와 파마머리가 특징인 구준표 역에 캐스팅된 이민호와 잘 웃지 않는 윤지후 역을 맡은 김현중은 만화 속 캐릭터와 안팎으로 닮은 점이 많아 오디션 당시 깜짝 놀랐다”며 “반면 캐릭터 성격과 연기자로서의 자질이 완벽했지만 누구나 반할 만한 꽃미남으로서의 외모적 매력이 부족해 오디션에서 탈락한 이도 있었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완벽하고 멋진 F4를 만들기 위해 F4 전담 스타일리스트도 고용했다.
영화 도 꽃미남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해 여성들 사이에서 ‘꽃미남 순례 영화’ 중 하나로 꼽혔던 는 1월 첫쨋주 현재 13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극장으로 모았다. 일본 고단샤 만화상을 받은 요시나가 후미 원작의 는 일본에서 17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2001년 후지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달콤한 케이크 가게를 무대로 야오이(남성 동성애)를 그리고 있는 영화는 원작의 유명세 덕분에 배우들에 대한 만족도가 곧 흥행 성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어린 시절 유괴사건으로 인해 어두운 면을 가진 사장 진혁역은 주지훈, ‘마성의 게이’ 선우 역은 김재욱, 복서 출신 케이크광 기범 역은 유아인, 진혁의 보디가드 수영 역은 최지호가 연기했다. 만화 캐릭터에 가까운 신예들을 캐스팅했지만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이어서 영화 홍보는 ‘캐릭터 마케팅’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사 ‘집’의 허지희 마케팅팀장은 “상상력으로 떠올린 만화나 소설 속 인물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실제 캐스팅된 배우들과 이미지 충돌을 일으킬 수 있어 캐릭터에 맞는 꽃미남 이미지를 내세운 예고편을 별도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캐릭터의 비중이 작은 꽃미남이라면 철저히 눈요기로 내세워 흥미를 높이기도 한다. 조인성의 파격적인 정사 장면으로 화제가 된 영화 은 왕의 친위부대인 ‘건룡위’까지 더해 여심을 사로잡는다. 키 180cm 이상인 꽃미남 호위무사 36명은 4개월 동안 400여 명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승마, 검술 등 무예훈련을 마친 호위무사들은 화려한 액션뿐만 아니라 폭포에서의 전라 목욕 장면도 시원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의 극한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유하 감독은 “건룡위 목욕 장면은 여성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솔직히 밝히기도 했다. 영화를 본 누리꾼들은 건룡위 호위무사로 출연한 심지호, 임주환, 여욱환 등 출연 배우들의 사진과 프로필을 블로그와 카페로 ‘펌질’하고 있다. 은 개봉 8일 만에 176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흥행에 성공한 건 꽃미남이란 매혹의 대상을 놀이문화로 불러온 덕분이다.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자로서 영향을 미치는 20·30대 여성들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들을 향한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고 소비하기 시작했다. 처럼 꽃미남을 내세우면 동성애 표현도 거부감이 없었다. 강명석 문화평론가는 “여성들이 꽃미남을 좋아하는 건 최근 트렌드라기보다 상당히 오래 계속된 현상”이라며 “예전에는 욕망이나 기호를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았다면 요즘은 솔직하게 드러내고 꽃미남을 소비하는 시대로, 야오이 문화도 자연스럽게 대중화시켰다”고 말했다.
은 10대를 주 시청층으로 잡았지만 20·30대 여성들 모두에게 골고루 사랑받았다. 10대에 만화를 봤던 여성들이 20대에 대만·일본판 드라마를 접하고, 30대에 한국판 드라마로 즐기게 된 것이다. 그룹에이트 배종병 기획PD는 “풋풋하고 밝은 여주인공이 완벽한 조건의 꽃미남과 사랑에 빠지는 순정만화 판타지는 10대부터 아기자기한 사랑을 꿈꾸는 20·30대 모두에게 잘 팔린다”고 말했다.
뱀파이어와 소녀의 사랑을 그린 소설과 영화 의 흥행도 이를 검증한다. 3700만달러의 제작비가 든 은 지난해 미국에서만 1억6730만달러를 거둬들이며 4배 이상의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현재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팬카페 순위도 급증하며 팬픽도 쏟아진다. 원작 소설도 호황을 맞았다. 애초에 4부작으로 기획된 은 출간되자마자 국내외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아직 번역본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을 영문판으로 구매하는 이들도 늘었다. 30대 직장인 이소연씨는 “국내 대형서점에서도 영문판이 일시 품절돼 입고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현실에서 벗어나 로맨스 판타지에 빠져들게 하는 꽃미남 에드워드 때문에 잠을 설치며 책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완벽 외모 캐릭터’ 강세 지속될 듯10대를 겨냥한 판타지 소설인 의 흡입력은 완벽한 몸매와 외모를 가진 ‘마성의 뱀파이어’ 에드워드 때문이다. ‘그가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완벽하게 멋들어진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처럼 설레게 하는 에드워드를 묘사한 표현 덕분에 까지 나온 번역본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두 번째 소설인 은 올겨울 영화로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에서 에드워드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도 일약 스타가 됐다. 최근 머리를 짧게 자른 로버트 패틴슨의 헤어스타일을 두고 후속 작품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염려와 함께 피플(www.people.com)과 액세스할리우드(www.accesshollywood.com) 등에서 이전과 현재의 헤어스타일을 두고 투표가 진행될 정도다.
이미경 기자는 “꿈과 모험을 그린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없을 것 같은 미소년들과의 연애 로망 판타지에 젊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것 같다”며 “마치 꽃미남을 바비 인형처럼 소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에서 마초로 나오는 송승헌이 비록 원조 몸짱 꽃미남 스타여도 의 로버트 패틴슨이나 의 주지훈, 의 조인성을 따라올 수 없는 건 대리만족할 수 있는 연애의 대상으로서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명석 문화평론가는 “꽃미남은 완벽하고 매력적인 남자로서 판타지를 실현해주는 대상으로, 우울하거나 개성 있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한 취향의 완벽한 외모를 가진 캐릭터 꽃미남이 사랑받을 것”이라며 “미국이나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꽃미남을 소비하는 문화가 일정 현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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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들이 등장할 때는 슬로모션이 걸리거나 후광이 생긴다. 자체 발광하듯 미모가 빛나는 건 촬영기법에 비밀이 있기 때문. 영화 에서 꽃미남을 케이크처럼 달콤하게 녹이고, 해외촬영분에서 F4의 향기를 카메라에 담았던 김준영 촬영감독에게 비결을 물었다.
-두 작품 모두 꽃미남을 꽃처럼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다.
=보통 영화는 기본 카메라 렌즈 필터로 촬영한다. 편집이 끝나면 필름을 스캔받아 디지털 색보정을 거친다. 그러나 와 는 꽃미남들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려고 촬영 때부터 렌즈 필터를 4~5장씩 사용했다. 여배우들을 예쁘게 담는 방식으로 렌즈 필터나 조명을 부드럽게 쓰기도 했다. 배경색과 배우들의 의상 색깔 등을 섬세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두 작품을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원작이 있는 작품들은 영상으로 만들어질 때 젊은 취향들이 반영되는 것 같다. 시나리오에 있는 꽃미남 캐릭터들은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생긴다. 미장센을 고려해 감독, 배우들과 사전조율을 많이 했다.
- 은 오디션을 통해 신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오디션 과정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했나.
=오히려 캐스팅이 된 뒤 배우들 각자 피부와 의상 카메라 테스트를 거쳤다. 두 작품 모두 가장 큰 주안점은 화면을 깨끗하게 찍어내는 거였다. 필름 입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감도 필름을 사용해 인물을 깨끗하게 살려내는 데 신경을 썼다.
-촬영하면서 느낀 요즘 꽃미남들의 특징은?
=터프한 남성보다 깨끗한 이미지의 잘생긴 남자가 선호되는 것 같다. 김현중이나 김범처럼 화장품 광고가 가능할 것 같은 이미지가 요즘 각광받는 꽃미남 아닐까.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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