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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힘들지만 ‘하악’ 힘차게


따뜻하고 날카로운 이외수식 세상 읽기 <하악하악-이외수의 생존법>
등록 2008-12-25 13:47 수정 2020-05-03 04:25
<하악하악-이외수의 생존법>

<하악하악-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해냄 펴냄, 1만2800원

은 잠언 같기도 하고 메모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소설가 이외수씨의 단상을 묶은 책이다. 여기에 ‘보리 동식물 도감’의 그 유명한 도감을 그린 정태련씨의 토종 물고기 세밀화들이 더해져 아름다운 책이 됐다. 이 책은 지난 3월 말 출간돼 석 달 만에 20만 부를 찍었다. 책을 편집한 해냄 출판사의 이진숙 편집장은 “이외수 작가의 책은 고정 독자가 있어서 출간되면 즉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간다”며 “다만 이번 책은 시장 사이클이 한 차례 돈 뒤에도 판매량이 줄지 않는 게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지은이가 사회적 발언을 계속하면서 독자의 관심을 받은 것도 한 원인일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지은이가 지난해 3월 인터넷 사이트를 연 뒤 매일 쓴 5~10꼭지의 짧은 글 가운데 독자의 반응이 특별히 좋았던 글 260꼭지를 따로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우선 깔끔하고 산뜻한 편집이 눈에 들어오지만, 글의 신선도도 높은 편이다. ‘이외수의 생존법’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때론 따뜻하고 때론 날카로운 이외수식 세상 읽기가 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이를테면, 이런 글이다.

“연가시라는 생물이 있다. …일정 기간 곤충의 몸속에 기생하다가 성충이 되면 곤충의 뇌를 조종해서 곤충이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도록 만드는 생물이다. 때로는 인간들도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쾌락의 늪에 뛰어들어 자멸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의식 속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허욕의 연가시가 기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자기풍자도 있다. “어떤 초딩이 이외수의 사진을 보고 ‘나 이 사람 누군지 알아’라고 말했다. 엄마가 대견하다는 듯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군데?’ 그러자 초딩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모수야.’”

이외수씨. <한겨레21> 운운식 기자

이외수씨. <한겨레21> 운운식 기자

성찰적 성격이 두드러진 글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두 종류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는 자신의 외모를 비추어볼 수 있는 마음 밖의 거울이고 하나는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볼 수 있는 마음 안의 거울이다. 그대는 어느 쪽 거울을 더 많이 들여다보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독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결기 넘치는 글도 있다.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물어뜯겨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은 한 줄로 끝난다. “아, 생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하악하악.”

그런데 ‘하악하악’은 무슨 뜻일까. 다른 글에는 ‘하악하악’이 무더기로 나온다. “날파리 한 마리가 하악하악,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하악하악, 자기가 호랑이를 때려잡았다고 하악하악, 큰소리를 치지만 하악하악, 정작 호랑이는 이 세상에 날파리라는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이진숙 편집장은 “거친 숨소리를 흉내낸, 인터넷에서 많이 쓰는 의성어”라고 풀어주면서 “세상살이가 힘들지만 그래도 크게 숨을 쉬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고 말했다.

고명섭 기자 한겨레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 2008년 6월28일치 13면 ‘책과 생각’에 실린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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