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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여, 후배를 라이벌로 키워라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무관심한 시선을 확 사로잡은 최윤아, 한국 여자농구 세대교체의 희망을 보여주다</font>

▣ 이김나연 언니네트워크 @아시아팀

사무실에서 있었던 워크숍에 한 선생님이 ‘해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사람들이 모자에 대해 한마디씩 하자, “아직 바다를 못 가서 모자로라도 바다 기분을 내보려고”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선생님에게는 ‘해변 모자’가 피서의 대용품이라면, 나에게는 지난 8월8일 시작한 베이징올림픽을 보는 것이 더운 여름날을 보내는 피서법이다. 특히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올림픽이라면 왠지 그래야 할 것처럼 밤을 꼬박 새우면서 TV 중계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꼭 TV 중계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중계로, 문자 중계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폰으로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예전 여자 핸드볼과 비슷한 무관심

주변에 여자농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프로리그 경기를 보러 가기도 하고 경기 소식을 챙기던 나는 이번 올림픽을 꽤나 기다렸다. 하지만 으로 훌훌 털어버린 듯한, 여자 핸드볼에 대한 (최소한) 올림픽에서의 무관심은, 이번 올림픽 때 여자농구의 몫이었다. 올림픽 전 방송 3사 중 어느 곳에서도 여자농구 경기 생중계 편성 계획이 없었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 6전 전패의 저조한 성적과 함께 메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더해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내 상황은 바뀌었다. 예선전 첫 경기인 세계 랭킹 4위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승리하고, 세계 최강이던 러시아를 맞아 선전에 선전을 거듭하며 아깝게 패하자 여자농구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성큼 커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최윤아 선수가 있었다. 최윤아 선수를 두고 “여자농구의 새로운 희망” “최대의 발견” 등등의 찬사가 쏟아졌고, 그녀는 ‘완소윤아’로 시쳇말 그대로 ‘떴다’. 하지만 그녀는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가 아니다. 지난 2003년 신인 드래프트 3위로 현대(현 신한은행)에 입단한 최윤아는 2007~2008 리그에서 최대의 활약을 보여주었고, 지난 5월에는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에서 입단 제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으며 ‘제2의 전주원’으로 불렸다.

그렇다. 제2의 전주원. 그녀 앞에는 ‘국보 가드’ 전주원이 있었다, 아니 있다. 전주원이 누구인가? 여자농구가 국내에서 프로화되기 전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선수가 아니던가. 지난 2월에 있었던 베이징올림픽 예선전에도 참가해 본선 진출을 도왔으며, 이번 올림픽 때 불참해 가드진의 약화를 우려하게 한 바로 그 선수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본선 2경기를 통해 최윤아는 자신의 장기인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치면서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그리고 여자농구 세대교체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여자농구의 세대교체론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하지만 2007년 도하 아시안게임 등 세대교체론이 제기될 때마다 국제대회 성적은 좋지 않았고, 성적 부진은 새로운 선수에게 기회를 주기보다는 노련미와 연륜을 갖춘 선수들을 찾게 했다.

두 명을 제외하면 평균 나이 31살

최윤아 선수의 성장이 반가운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현재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여자농구팀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평균 연령은 29.7살로 대표팀의 막내라 할 수 있는 최윤아와 김정은을 제외하면 31살의 평균 연령을 자랑한다. 우리나라 여자농구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입단하기 때문에 프로리그(프로화가 되기 전에는 실업리그) 경력 10년이 훌쩍 넘는 선수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여자농구 대표선수들을 ‘신인급’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여자선수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그들의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하는 후배 선수들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또 다른 최윤아 선수를 기대해보며. 최윤아 선수, 그리고 여자농구 대표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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