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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 그녀 생애 최고의 순간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올림픽 메달 빼고는 없는 메달이 없는 그녀, 우선희가 빠진 공백을 알토란 같은 득점으로 채워나가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오성옥(36), 오영란(36), 홍정호(34), 박정희(33), 허순영(33). ‘자랑스런’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30대 언니들. 화려한 이름들 중에서 올림픽 메달이 없는 선수가 딱 한 명 있다. 누굴까~요?

유일하게 메달을 놓친 시드니에서 활약

더구나 한 명을 제외한 다른 선수 모두 2개 이상의 올림픽 메달을 가졌다. 언니들 메달 종합 금2, 은7. 오성옥은 혼자서 금1·은2. 한국 여자 핸드볼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따낸 금메달 2번, 은메달 3번의 역사가 30대 언니들의 ‘커리어’에 녹아 있는 것이다. 결정적 힌트. 다섯 명 중에서 아테네올림픽 멤버가 아닌 선수는 홍정호와 박정희. 과연 누가 없을까~요?

심지어 문필희, 최임정, 김차연 등 20대 핸드볼 대표선수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을 가졌다. 베이징올림픽 독일전에서 6골을 넣으며 분전한 홍정호 선수는 다행히 금·은 하나씩 소장하고 있다. 일찍이 18살인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 22살인 1996년 애틀랜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연히 정답은 박정희. 1975년생. 175cm 65kg. 벽산건설 소속. 90년대 종근당에서 뛰었으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엔 은퇴했다. 다른 핸드볼 선수들처럼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서 외국에도 진출했다. 오스트리아 히포방크가 은퇴한 ‘대통령’ 박정희를 불렀다. 그렇게 코트로 돌아왔지만 불운이 겹쳤다. 한국이 4강에 들었던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손목 부상을 당했다. 소속팀은 재계약을 외면했고, 아테네올림픽에도 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놓쳤다. 비록 무적 선수였지만, 모교인 마산 무학여고 후배들과 훈련하며 끈질기게 버텼다. 다행히 2004년 벽산건설의 전신인 효명건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테네 주역들이 즐비한 팀에서도 주득점원으로 활약했다. 이번이 대표가 처음은 아니다. 그의 첫 올림픽은 2000년 시드니. 하필이면 여자 핸드볼은 지난 6번 올림픽 가운데 유일하게 시드니에서 메달을 놓쳤다. 그래도 그는 2000년 아시아선수권대회,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멤버다. 올림픽 메달만 빼면 없는 메달이 없는 선수다.

박정희 앞에는 우선희가 있었다. 우선희를 모르면 간첩이다.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 한국 선수로 유일하게 베스트7에 뽑혔던 라이트윙 우선희. 여자 핸드볼 대표팀 임영철 감독이 국가대표 전력의 30%를 차지한다고 격찬한 선수다. 혹시나 우선희는 몰라도 우선희의 슈팅을 모르기는 어렵다. 대표팀 선수들의 아테네올림픽 실제 장면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의 마지막, 정말 중력을 모르는 새처럼 날아오르는 점프의 주인공이 우선희다. 그런 우선희가 베이징올림픽을 100여 일 앞두고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쳤다. 그리하여 한국은 전력의 30%를 잃었을까.

굳세어라, 정희야!

베이징올림픽 러시아와 첫 경기. 우선희가 빠져 불안한 라이트윙을 누가 맡는지 제일 궁금했다. 우선희의 공백을 얼마나 메우느냐, 2008 베이징판 ‘우생순’의 핵심 캐스팅이었다. 박정희는 우선희만큼 속공할 때 빠르지도, 점프할 때 높지도 않아 보였다. 박정희가 득점을 놓칠 때마다 우선희라면…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려는데 박정희가 ‘날았다’. 정말로 날아서 한 골, 두 골 꽂아넣었다. 9점 차로 뒤지다가 쫓아가 마침내 28 대 29. 종료를 1분 남기고 박정희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극적인 무승부. 그래도 세상은 이날 7골을 넣으며 떠오른 샛별 김온아를 주목했다. 그래도 박정희는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전 5골, 독일전 5골, 알토란 같은 득점을 올렸다. 마침내 스웨덴전, 팀내 최다인 7골을 넣었다. 그렇게 박정희는 33살에 ‘그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고 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처음 대표로 뽑히고 남편과 손잡고 기뻐하던, 아줌마 선수들에게 “울지 마라, 가스나야” 말하던,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고생한 게 있어서라도 나 절대 포기 몬한다”고 다짐하던, 의 정란(김지영)이 생각났다. 뽀글머리 파마에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정란처럼 박정희도 부산 출신이다. 굳세어라, 정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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