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을 찍는 사람들, 테마파크에서 사람들 놀래키는 사람들
▣ 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앞이 깜깜하다. 문 열고 들어서니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세상이다.
‘잘못 왔나?’ 피부에 닿는 오싹한 기운.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려는데, 무언가 발목을 잡는다. 호흡이 가빠진다. 가만히 서서 어둠에 눈을 적응시킨 뒤 찬찬히 살펴본다. 사다리다. 한숨을 돌리고 오른편을 바라보니 커다란 우물이 보인다. 곳곳에 낀 이끼 사이로 손톱 자국이 선명하다. 바로 그때 대청마루 문 사이로 흰 소복을 입은 여인이 스쳐지나간다. 촛불 든 그는 방으로 난 한지창을 막 열려는 참이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창이 열리자 어둠 속에서 화관을 쓴 또 다른 여인의 얼굴이 창을 타고 ‘스~윽’ 들어온다. “컷! ”.
△ 바야흐로 공포를 소비하는 시대다. 그 옛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공포는 이제는 영상으로, 체험관으로 출구를 넓혀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다. 공포를 경험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 건너편에는 그 공포를 참아가며 공포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방송 촬영장. (사진/ KBS 제공)
이제 밤에 창문 열 일 없겠네
“창을 좀더 천천히 열면 느낌이 더 살 것 같아요. 시청자가 창 너머에 뭐가 있을까 궁금하도록. 시체보관소 문 열듯, 그렇게 한 번 더 가볼게요.”
정적을 깨는 곽정한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던 7월15일 오후 경기 수원시 한국방송 수원센터. 구내 26스튜디오는 9년 만에 부활한 드라마 ‘구미호의 귀환’편의 마지막 촬영이 한창이다. 한옥 모양 세트장에서 스태프 30여 명은 촬영장과 분장실을 바쁘게 오가며 장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늘 본 장면 때문에 이제 밤에 창문 열 일은 없어졌다”고 곽 프로듀서에게 속삭이자 “아직 CG(컴퓨터 그래픽)도 안 입히고 소리도 안 들어갔다”는 대답이 미소와 함께 돌아왔다. 다시 이어지는 촬영. “불이란 불은 다 꺼요.” 이용호 조명감독이 외쳤다.
“저기 빨간 불은 뭐야? 누가 저것 좀 가려봐.”
깜깜한 틈을 헤집고 한 스태프가 달려가 머리로 불빛을 막아서자, 희미한 조명 하나가 켜졌다. 연지곤지 화장을 하고 레일 위에 앉은 여배우가 눈을 감고 울고 있다. 레일에 걸린 줄이 당겨지면서 그가 천천히 카메라 앞으로 다가온다. 배우 얼굴이 카메라에 가득 들어차기 무섭게 울음을 멈추고 갑자기 눈을 치뜬다. 눈동자가 온통 핏빛으로 빨갛게 물들어 있다. 소름이 휙 끼치는 순간, 몇몇 스태프들이 고개를 휙 돌린다.
“괜찮나요?” 곽 프로듀서가 백홍종 촬영감독에게 갸우뚱거리며 말한다. 색이 좀더 무섭게 안 나오는 느낌이다.
“파란색으로 한번 가보죠.”
백 감독이 카메라에 파란색 필름을 댔다. 조금 전보다 더 으스스한 화면이 모니터에 비친다. 푸르스름한 새벽녘 느낌. 배우 얼굴에도 핏기가 안 보인다. “무서운 장면을 찍을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죠.”
곽 프로듀서는 똑같은 장면을 여러 방법으로 조명과 색감을 달리하면서 4~5회 반복해서 찍은 뒤에야 ‘오케이’ 사인을 외쳤다.
“가장 무서워 보이는 화면이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가장 무서움을 느낄까’ 이게 요즘 가장 큰 고민입니다.”
무리하지 않게, 잘 놀래도록
곽 프로듀서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또 있다. 경기 과천 서울랜드의 공포체험관 ‘귀신동굴’에서 근무하는 김민지(22)·신정호(26)·이재은(23)씨. 이들은 ‘귀신동굴’에서 관객의 저승 체험을 이끌어주는 ‘가이드’ 저승사자들이다. 저승사자는 한 번에 15~20명의 관람객을 ‘잠시’ 길라잡이한다.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받는 심판대를 지나, 용광로가 들끓고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즐비한 각종 지옥으로 이끌면서 약 15분 동안 저승 세계를 소개한다. 단순 안내에만 그치지 않는다. 건드려서 흘러나오는 귀신 목소리에 맞게 행동하면서 관객이 긴장감을 풀 때쯤 쇼킹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는 이들이 흔드는 방울과 부채 소리만으로도 사람을 놀래기에 충분하다.
“관객은 공포를 직접 겪어보려고 오는 분들입니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면 ‘돈 아깝다’고 느끼죠. 안전을 생각하면서 무리하지 않게 ‘잘’ 놀래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요.”
그래서 이들은 관객의 반응에 울고 웃는다. 신정호씨는 “작은 것 하나에도 사람들이 놀라고 반응하면 신나고, 그렇지 않으면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고개만 돌려도 비명을 지르는 관람객이 있어요. 그럴 때는 신나서 더 놀래려 하고 같이 게임도 해드리죠. 반대로 놀래려 했는데 관람객이 아무 반응이 없으면 저 스스로 소심해져서 아무 행동도 못하게 돼죠.”
세 저승사자는 “공포에도 강약 조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계속 방울을 흔들고 부채질을 한다고 막 놀라는 건 아니다. 적절한 타이밍이 관건이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긴장하고 와요. 일단 안심시킨 다음, 방심하는 틈을 노리는 거죠.”
공포물 제작자나 저승사자 가이드나 매일 귀신을 대하다 보면 공포에 무감각해지지 않을까. 의 곽 프로듀서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함께 일하는 편집기사는 귀신만 나오면 화면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작업해요. 귀신 장면이 촬영된 화면을 어느 누구보다 많이 접하는 사람인데 정작 귀신을 못 보는 겁니다. 연기자라고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공포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공포에 더 민감해지는 것 같아요.”
경남 하동에서 야외촬영을 할 때였다고 한다. 야외 세트에 냉방 시설이 없어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연기자들을 대기시켰는데, 한 연기자가 귀신을 봤다며 울더라는 것. 그도 찜찜했다고 한다.
“촬영장에서 귀신을 보면 드라마가 ‘대박’ 난다는 속설이 있거든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했는데 왠지 계속 섬뜩하더라고요. 다음부터는 주차장 쪽으로만 가면 계속 신경이 쓰여서 마음고생을 크게 했어요.”
관람객보다 더 놀랄 때는 민망해요
서울랜드의 저승사자 가이드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자신들이 공포를 빚어내도, 관객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놀라기는 매일반이라고 털어놨다. 신정호씨의 말이다.
“주말에는 처녀귀신 분장을 한 직원이 더 와요. 동굴 곳곳에 숨어서 관객을 놀래죠. 물론 어디어디 숨어 있겠다고 저승사자와 미리 짜놓지요. 그런데 막상 가면 없는 경우가 있어요. 일부러 다른 곳에 숨는 처녀귀신들이 있죠. 그럴 때 갑자기 처녀귀신이 휙 나타나면 저희가 관람객보다 더 놀라서 민망할 때도 많아요.”
대형 사건과 엽기 사건들이 넘치는 요즘, 사람들을 떨게 하고 놀라게 하는 건 웃기는 것보다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관객과 시청자가 오싹해하면 할수록 공포를 만드는 사람들은 폭염 속에서 몇 곱절 숨은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짜릿한 공포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공포 생산자’들의 피 말리는 노고. 이번 여름이 무덥지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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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 서울랜드에는 테마파크 중에서 유일하게 무서운 귀신을 만날 수 있는 ‘귀신동굴’이 있다. 저승사자와 처녀귀신, 염라대왕 등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귀신 모형들 사이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처녀귀신으로 분장한 스태프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백미다. 서울 롯데월드와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는 진짜 으스스한 귀신체험장이 없다. ‘고스트 하우스’와 ‘스푸키 펀 하우스’가 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대상이어서, ‘공포’보다 귀여운 유령을 만나는 ‘재미’를 주는 관람관이다. 대신 롯데월드에는 시원한 호수를 보며 수직 낙하의 ‘아찔함’을 느낄 수 있는 자유낙하 놀이기구가 있다. 70m 상공에서 시속 100km로 자유낙하하는 ‘자이로드롭’과 번지점프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번지드롭’은 여름철 필수 코스. 에버랜드는 ‘야간 사파리’가 추천 코스다. 어두운 숲에서 파랗게 눈빛을 번쩍이며 관객이 탄 차를 향해 달려드는 맹수의 으스스한 기운이 차창으로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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