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브랜드 및 출판사들의 잇따른 론칭과 약진,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
▣ 태풍클럽 출판 편집자
바야흐로 장르문학의 계절이 돌아왔다. 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대놓고 비웃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름에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터리나 스티븐 킹의 호러소설이 제격이다. 소설 출간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푹 가라앉은 요즘 출판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장르문학 전문 브랜드 및 출판사들의 잇따른 론칭과 약진이라고 하겠다.
우선 이 분야에서 가장 뚝심 있게 자리를 굳힌 곳은 민음사의 자회사인 황금가지에서 2004년에 시리즈 첫 권을 내놓으며 문을 연 ‘밀리언셀러 클럽’이다. 스티븐 킹, 데니스 루헤인, 로렐 K. 해밀턴, 리처드 매드슨 등 굵직굵직한 장르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이제 100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영사의 자회사인 비채는 일본 장르소설 시리즈인 ‘블랙 앤 화이트’와 본격 스릴러 브랜드인 ‘모중석 스릴러 클럽’을 운영하고 있고, 웅진 출판그룹도 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책들을 펴내고 있는 노블마인과 최근 ‘메두사 클럽’을 개장한 시작(詩作), 그리고 공상과학소설(SF) 번역자이자 기획자인 박상준씨가 SF 전문출판사를 표방하고 문을 연 오멜라스 등의 자회사들을 통해 장르소설 시장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문학동네 역시 지난 연말에 ‘블랙펜 클럽’을 론칭했고, 별도의 브랜드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전설의 SF 시리즈 ‘그리폰 북스’와 엘러리 퀸 시리즈를 선보였던 저력의 시공사와 의 베텔스만, 랜덤하우스 등도 꾸준히 신간을 펴내고 있다.
앞서 거론한 곳들은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대형 출판사들과 그 자회사들이고, 이보다 규모가 작은 출판사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등의 사회파 추리소설로 우리와 가까워진 여성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에게 ‘미미 여사’라는 애칭을 붙여준 북스피어라든가, 호러팬들에게 ‘교고쿠도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손안의책, 어두운 일본 호러와 서스펜스 소설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이미지박스, 골든 대거 상을 받은 수준 높은 미스터리물을 선보이는 영림카디널의 블랙캣 시리즈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런 장르 출판의 움직임은 2007년 5월에 창간된 ‘장르문학 전문지’ 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제까지 문단에서 소외당하고,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장르문학들이 이곳에서는 어엿한 주인공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주류에서는 찬밥 신세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장르소설은 어느 분야보다도 충성도가 높은 독자군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이 장르소설에 보내는 애정은 유별, 각별하다. SF 독자들은 하이텔 시절부터 하드 SF의 세세한 과학적 근거를 놓고 피 튀기는 논쟁을 벌여왔고, 미스터리 독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하드보일드파와 본격추리파의 갈등은 그 기원이 거의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영미권 스릴러 독자들은 출판사 홈페이지에 오탈자뿐 아니라 기나긴 오역 신고 리스트를 올려 편집자들과 번역자들이 진땀을 흘리게 하며, 가장 소수지만 가장 열혈인 호러 독자들은 모 출판사 사이트에 몇 년째 H. P. 러브크래프트 선집의 출간을 요구하는 항의의 글을 남기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들 중에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 즉 구매력이 떨어지는 독자가 많다는 점이다. 장르문학 시장은 매출로만 보면 그리 넓다고 할 수 없다. 어느 편집자는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5천 부 시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5천 부는, 같은 베스트셀러나 영화화되어 입소문을 탄 몇몇 큰 작품들을 제외한 일반적인 장르소설이 기대할 수 있는 평균 판매치다. 경험을 쌓은 편집자들은 어차피 5천 부가 얼마나 빨리 팔리느냐 늦게 팔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장르소설 마케팅에 큰돈을 들이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설이 잘 팔리지 않는 시대에, 그래도 다들 장르문학 브랜드를 론칭하고 시리즈를 재편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영화화나 및 드라마화를 통한 마케팅, 혹은 적다고는 해도 1980년대부터 꾸준히 넓어져온 독자층에 대한 기대도 있겠지만, 결국은 ‘이야기의 재미’라는 최후의 보루밖에는 기댈 곳이 없는 문학출판 시장의 절박한 상황과 더 가까이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여전히 앞날은 암울해 보이지만, 그래도 내일의 독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사과나무를 심는 셈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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