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책에 미친 당신에게

등록 2008-04-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책에 한없는 애정을 보이는 ‘비블리오 픽션’과 책에 의문을 품는 ‘메타 픽션’

▣ 태풍클럽 출판 편집자

최근 외국소설 출판 계약 시장에서 ‘책에 관한 책’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내용이 흥미로워 몇 권의 계약상황을 알아보니 경쟁도 세고 선인세도 꽤 높다. 비밀에 싸인 고대의 책을 둘러싼 스릴러라든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 권의 책과 얽힌 사람들 간의 이야기, 또는 비밀의 도서관 같은 소재를 다룬 이야기들이 무척 많다. 임시로 이름 지어 붙이자면 ‘비블리오픽션’(Biblio-fiction). 번역까지 이뤄져 책의 형태를 갖추고 시장에 나올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즈음에 이 ‘비블리오픽션’이 무척이나 와글거리지 않을까 싶다.

‘책에 관한 책’들이 가지는 강점은 소재가 주는 무조건적인 친근감이다.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책에 대한 사랑은 ‘책을 읽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비밀 결사단으로 묶는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책’을 주인공으로 만나는 그 순간부터 이야기에 무조건적인 호감을 갖게 된다. 이런 장치를 통해 작가는 독자를 무장해제시키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광고

또한 책에 관한 책은 독자에게 기본적으로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밤늦게 불 밝힌 방에서 혼자 호젓하게 책을 읽을 때의 편안하고 사적인 느낌을 떠올려보라.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이렇듯 현실과 유리된 행위인데다, 아예 책에 관한 책이라면 일종의 이중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터다. 책에 관한 소설들 중에는 이런 특성을 판타지와 절묘히 결합시킨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분야의 고전이라 할 만한 미하엘 엔데의 로부터 시작해 발터 뫼르스의 , 클라스 후이징의 , 재스퍼 포드의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 청소년 소설 ,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의 , 최근 인기를 모은 마커스 주삭의 , 다이안 세터필드의 그리고 온다 리쿠의 이름을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알린 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책과 얽힌, 두근두근하지만 안전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이와는 달리, 책에 관한 책이면서도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모난 소설들이 있다. 책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전제로 한 비블리오픽션과는 달리 ‘책’ 또는 ‘이야기’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은 ‘메타픽션’(meta-fiction)이다. 메타픽션은 비블리오픽션과는 달리, 책과 이야기가 지닌 신비로운 장치들의 비밀을 누설하고, ‘신’의 위치에 있는 작가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메타픽션을 쓰는 작가들은 자의식 강한 문체와 여러 실험적 장치를 통해 끊임없이 독자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허구’이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설파하고자 한다. 그들은 작가인 동시에, 장르의 허구성과 현실과의 관계 등을 폭로하고 독자와 이를 지적으로 토론하고자 하는 일종의 비평가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라 불리는 마르케스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들, 미셸 투르니에의 이나 존 파울스의 , 이인성의 등이 그 예다.

대중성을 놓고 따질 때, 독자에게 더 쉽게 읽히는 쪽은 물론 비블리오픽션들이다. 책에 대한 애정 하나만 있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비블리오픽션과 달리, 메타픽션은 읽는 이에게 비판적 시각과 실험성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 그리고 소설에 대한 지식을 요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흐름 중 하나였던 메타픽션의 형식이나 내용이 대중적으로, 혹은 상업적으로 정착한 것이 최근의 비블리오픽션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소설과 책에 대한 근본적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은 같겠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비블리오픽션들은 소설과 책에 무조건적인 애정을 가진 지지자들이고, 메타픽션은 날 선 비판적 지지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어쨌든 이런 책들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올리며 책장에 코를 박고 있는 당신과 나는 ‘책에 미친 사람들’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2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