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서점과 헌책방을 뒤져가며 ‘나만의 전집 꾸미기’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 태풍클럽 출판 편집자
문학전집이라고 하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30대 후반 이상의 독서를 키운 건 8할이 전집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집 출판이 많았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집을 팔기 위해 가가호호를 방문하던 외판원이 있었고, 나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중학교 때 부모님이 사주신 세계문학전집을 한 질 갖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게 고전이다 하고 강요하는 것도 싫었고, 책이 저렇게 많은데 또 사냐, 있는 건 다 읽었냐는 잔소리도 듣기 싫었기에 대학교 초년생 때까지 전집류를 무척이나 혐오했던 기억이 난다.
주변에서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30~40권짜리 전집을 안겨주며 독서교육에 관한 한 당신들의 할 도리를 다했다고 믿었으나, 그렇게 문학과 첫 대면한 이후 그 도저한 장벽을 뛰어넘지 못해 소설 읽기의 재미에 입문하지 못했다는 처절한 고백을 가끔씩 들어보았다.
‘전집’ 하면 떠오르는 세로쓰기에 양장본, 딱딱한 의고체 번역과 한자 혼용이 특징인 이런 책들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쏟아졌는데, 이 1세대 전집들은 이제 도서관이나 헌책방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 2세대 전집류는 묶으면 전집이되 서점에서 각개전투가 가능한 ‘단행본형’ 전집류다. 그 기원은 아무래도 을유문고나 삼중당의 문고본 출판 쪽에 더 가깝겠지만, 어쨌든 80년대에 학원사에서 펴낸 책들과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범우사와 문예출판사의 책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3세대의 시작을 알린 건, 2000년대부터 전집의 붐을 일으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다. 서울대 교수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논술시험 대비라는 노선으로 마케팅 방향을 잡은 민음사 전집은 서점뿐 아니라 홈쇼핑이라는 새로운 판로에서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이후 여러 출판사들이 전집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고, 올해 추가된 도전자는 웅진의 ‘펭귄 클래식’과 을유문화사의 ‘을유 세계문학전집’이다.
앞으로 5년 안에 250여 종을 펴낼 계획이라는 웅진의 펭귄 클래식은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영미권의 전통 깊은 문학전집 브랜드 ‘펭귄 시리즈’를 통째로 들여온 것이다. 표지 디자인도 현재 영미권에서 팔리고 있는 펭귄 클래식 원서와 완전히 동일하다. 1959년 대한민국 출판사 최초로 전집을 펴냈다는 자부심을 안고 있는 을유문화사의 새 전집도 주시할 만하다.
사실 이런 전집들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리스트가 서로 엇비슷하다. 대부분 저작권이 소멸된 옛 작품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전’으로 각인된 작품들이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80% 이상이 1, 2세계 국가들의 작품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러시아작가 전집’이라든가, ‘제3세계 문학전집’ 같은 독특한 전집류도 간혹 있었다. 80년대에 중앙일보사에서 펴낸 ‘오늘의 세계문학’이 대표적인 예다. 강대국 타이틀 위주로 구성한 일반 전집류와 달리 언어권에 상관치 않고 독특한 전집을 펴내고 있는 최근의 예로는 사이즈는 문고본에 가깝지만 은근한 뚝심을 보여주는 ‘책세상 전집’이나 양쪽 노선을 모두 오가는 열린책들의 ‘Mr. Know 시리즈’ 등이 있다.
자, 이제 이 많은 책들 중 무엇을 고를 것인가? 서로 다른 판형의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걸 미학적으로 참지 못하는 결벽증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신간서점과 헌책방을 뒤져가며 ‘나만의 전집 꾸미기’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똑같은 책의 옛 번역과 새 번역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여러 출판사에서 따로따로 나온 작가들의 전작을 모으는 데 도전하는 기쁨도 있다. 책을 보는 자신의 눈이 해가 지나며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젖어드는 감회도 새로울 테고, 친구들과 서로 리스트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나만의 ‘진정한 고전문학 전집’을 물려줄 수 있다. 같은 세계문학전집이라도 얼마나 행복한 이야기냐. 이런 게 바로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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