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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서울은 언제부터 괴물이 되었나

등록 2008-06-06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조선 중기부터 포화상태에 이를 정도로 확장해온 역사 </font>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서울은 만원이다!’ 1966년 작가 이호철씨가 낸 인기 소설의 제목은 지금도 대도시 서울의 상징어로 회자된다. 창녀와 사기꾼, 룸펜, 졸부들이 부대꼈던 소설 속 인구 380만의 서울은 1천만 명이 넘는 지금의 서울과 비교가 안 되지만, 혼잡한 도시화에 대한 우리 기억은 얼추 60년대부터가 상한이 된다.

강남발 교육 열풍, 조선시대에도

중견 도시사 연구자 전우용씨의 서울학 에세이 (돌베개 펴냄)를 읽는 묘미는 이런 통념의 상한을 수백년 전 조선시대로 끌어올린다는 데 있다. 이미 서울은 조선 중기부터 괴물처럼 포화상태로 확장해왔다는 것이 책의 전제다. 현대도시 서울의 단면인 인구 집중, 강남 바람, 노숙자, 양극화, 지역 격차, 군사문화 따위의 개념들이 당대 한양성 안팎의 공간에서 술렁술렁 걸어나온다. 이른바 ‘데자뷰’(처음인데도 이미 경험한 듯한 느낌)의 인상이 안개처럼 행간을 덮고 있는 것이다.

서울 도읍의 유래, 주거 환경, 계층 분포, 습속 등을 다룬 전반부에서 이런 특장이 빛난다. 특히 18세기 서울의 하수처리 문제에 대해 서술한 앞부분은 학문 편력을 잘 보여주는 백미다. 그는 왜 18세기 후반 영조 시절 갑자기 청계천 바닥이 높아져 홍수가 나고, 황급히 바닥을 치는 대규모 준천사업을 했을까를 캔다. 그 배경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서울에 상비군인과 유랑민, 시골 양반들이 몰려들면서 처음으로 ‘무서운 인구 증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당장 집터가 부족하니 권세를 앞세워 남의 집 빼앗는 일이 다반사였고, 텃밭에도 마구 온돌집을 짓고 살면서 재가 급증하고, 배설물 따위를 자연정화해주던 하천 기능이 마비 상태에 이른 결과라는 것이다.

“텃밭은 사치가 되었다. 도시 내에서 분뇨, 쓰레기를 처리해주던 유용한 시설 하나가 사라졌다. …때는 나무가 늘어나는 만큼 재도 늘어났다. …땅바닥에 깔려 있던 재가 흙과 섞여 있다가 물에 쓸려 개천에 들어가 다시 똥과 버무려지면 하천 바닥에 딱 붙어버릴 수밖에. 조선 후기 서울 개천 폐색의 주범은 다름 아닌 도시민들 자신이었다.”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고자 한 도시민들의 욕망과 그를 실현할 수 있게 해준 ‘늘어난 부’를 근본 배경으로 짚는 책의 분석은 60년대 이후 대도시 서울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다. 당시 한양성의 오물 처리 기능을 텃밭의 거름, 하천, 개·돼지 등 인분을 먹는 가축이 3분했다고 정리한 것은 기발한 분석이다. 청계천 준설 작업에서 생긴 흙산에 굴을 파고 들어간 거지들에게 뱀 등을 전매할 권한을 주어 ‘땅꾼’과 거지 파벌 등이 생겨났다는 것이나, 최고 명당 권세가들의 북촌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중 오촌으로 도읍 내부를 갈라 살면서 대립했던 양반·중인층 거주 구역에 대한 설명은 오늘날도 반면교사의 교훈이다. 조선 후기로 들수록 북촌의 권세가 양반들이 부와 권력의 세습을 위해 과거제도 부정과 교육 독점 등의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는 대목은 강남발 교육 열풍으로 나라가 들썩거리는 지금 사정과 딱 들어맞는다.

근대 공간의 유래와 뒤안길

구한말과 일제 근대기 문물 생활사를 포괄하는 후반부는 서울 종로의 역사, 전차, 시계탑, 덕수궁 등 근대 공간에 얽힌 다양한 유래와 뒤안길을 풀었다. 17세기 이후 서울 도성에 모여든 군인들이 생계를 위해 장사치를 겸하면서 유래한 도깨비시장·도떼기시장의 근대적 변화상, 근대 시간 감각을 일깨워준 구한말 장안의 3대 시계탑, 왕궁을 화살처럼 겨눈 지세의 명동성당, 근대 질서의식을 주입시켰던 파고다공원의 군악대 연주 등이 소개된다. 사서보다 공간 속에서 더욱 정직하게 되풀이되는 역사의 다기한 진실을 냉소적이면서도 진지한 어투로 일러주고 있다. 저자는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시절 여러 분야 소장연구자들과 만나 안목을 닦았다”며 “기존 역사학이 다루지 않지만 지금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를 다루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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