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출근길을, 세상에서 가장 무가치한 상상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길은 바로 옆에 있다
걷기 열풍이다. 강원 원주에서는 5월3일 100km를 26시간에 ‘완주’하는 대회가 열리고, 같은 날 서울에서는 가족과 함께 청계천을 걷는 대규모 행사가 펼쳐졌다. 그 전주 제주에서는 ‘제주올레’를 걸었다. 볕 좋은 주말 근린공원에선 눈이 팽팽 돌게 사람들이 줄지어 팽팽 돌고, 등산길은 사람으로 붐빈다. 걷기가 인기 레저 종목이 됐다.
하지만 ‘걷기 인구’는, 짐작건대 5천만 명이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머리가 굵어졌다는 등의 거창한 말은 거추장스럽다. 많은 이들이 돌 무렵 두 다리로 서서 한 발을 내딛는 것으로 가족의 박수를 받았고, 잠에서 깨어나 맨 처음 하는 일이 걷는 것이다.
평균보다 조금 더 많이 걷는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은 바로 곁에 있다. 길이 바로 곁에 있듯이.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위대한 기념물이 자아내는 역사의 전율감은 산책자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산책자는 그런 전율감을 기꺼이 관광객들에게 양보한다. 산책자는 예술가들의 동네와 고향이나 장엄한 왕국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보다 비바람에 풍화된 문지방 냄새를 맡고 오래된 기와를 만져보는 것에 더 행복해한다. 심지어 늙은 개가 물어다놓은 기와에도!” -월터 베냐민
‘산책자’ 출판사의 김수한 편집주간은 매일 아침부터 산책한다. 농담 반 진담 반 “출근길 때문에 회사를 선택”했다. 서울 삼선교에서 동숭동까지 출근길에 혜화문, 혜화고등학교, 성당, 극단들과 극단 포스터가 놓여 있다. 혜화동 성당 앞마당이 길의 중간 지점이다. “어느 모퉁이를 돌면 햇빛이 어떤 모양으로 내리쬘 것이 기대되고, 계절 따라 서서히 변해가는 나무들이 있어요. 그 시간대에 늘상 벌어지는 일들을 기다리고 수많은 변화를 발견합니다.”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있다. 하지만 걸어야 몸이 풀린다. “아침 출근 준비는 언제나 번잡하고 집과 회사, 집과 일 사이의 휴지기가 필요한데, 버스에서는 그 일을 해낼 수가 없지요.”
그가 지난 1년간 출퇴근길을 오가며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성북천이 생긴 것이다. 원래 있던 시장을 없애고 개울을 복구한 것이다. 오랫동안 이 부근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라진 성북천에 대한 기억도 있다. 빗물이 차오르면 누나들이 깔깔거리며 등교하곤 했던. 하지만 1년 사이에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들에는 어리둥절해진다. “산책이라는 것은 완미하고 음미하는 시간인데, 그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 급하네요.” 사라져가는 골목길도 아쉽다. “큰 건물들이 들어서니까 구석구석 작은 길들이 사라지고 골목의 사람들이 사라집니다. 골목의 동물들, 비가 올 때의 적막, 기후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길이 좁을수록 생각이 깊어지는 건데 말이죠.”
“전에는 출퇴근하기가 따분하기 짝이 없었는데, 가본 적도 없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란 도시의 지형이 내가 사는 이 도시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한 뒤로는 출근길을 그럭저럭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요시다 슈이치
영화사 오퍼스픽쳐스의 프로듀서 김정영씨는 서울의 한남대교를 건너서 출근한다. 7시30분에 집에서 나와 한남동까지 30분이 걸리고, 거기서 한남대교를 건너기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아, 다리가 생각보다 지루하더군요.” 그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다리를 건넌다. 1년 전 회사를 옮겼는데 예전 회사는 남산 북쪽 산책로를 거치면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 중 하나다. 그곳을 떠나왔어도 걸어서 출근하는 습관은 고수했다. 그러다 보니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예전에는 조용한 길이라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복잡하고 위험해 딴 짓을 할 수 없다. 출근길에는 그가 이름 붙인 많은 공간들이 있다. 할리 데이비슨 매장이 있는 곳 부근의 부처님상이 많은 곳은 ‘주술의 공간’이다. “마초들, 너희들 오토바이 타다가 죽기 싫은 거지?” 옆에는 ‘테니스공길’도 있다. ‘최박사 테니스코트’ 간판이 있는데, 아마 거기서 들리는 것일 것이다. 아침의 테니스공 소리가 상쾌하다. “팔자 좋으시군요.” 속으로 한번 생각해준다. 벽산 공사장의 에르메스풍 예쁜 숫자를 보면서는 숫자에 얽힌 생각을 한다. 다리로 들어서면 걸어서 출근하는 몇몇을 만난다. 가끔 “오늘은 저 여자를 따라가야지” 하고는 보폭을 맞춘다. 다리를 건너오면 있는 베스파 매장은 아침 일찍 구경하기 좋다. 매장 영업은 시작되지 않았고 몸을 쇼윈도에 밀착하고는 아직도 팔려나가지 않은 베스파의 수량을 점검한다. 집에 자전거도 있다. “좋은 거긴 한데 쌀집 자전거 수준이거든요.” 자전거로 출근한 적이 있는데 오르락내리락 언덕 길에 “거의 죽는 줄 알았다”. 주말에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만 그때도 자전거를 빌린다. “자전거는 3천원, 그게 제일 편하더라고요.” 그는 출근길이 “세상에서 가장 무가치한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
“나는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 동안 대개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일체의 물질적 근심 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린 채 숲으로 산으로 들로 한가로이 걷지 않으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동광인쇄의 장길산(67) 회장은 많이 걷는다. 동광인쇄는 을 찍는 인쇄소로 서울 양평동에 있다. 그곳에서 한겨레신문사가 있는 공덕동까지 그는 무시로 걷는다.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 걷는 일이다. 1시간20분쯤 걷고 집에서 밥을 먹고는 출근을 한다. 물론 걷는다. 30분 거리지만 갈짓자로 걷기 때문에 45~50분은 걸린다. 당뇨가 체크된 뒤로 걷기 시작했다. 수술 뒤 일주일에 한 번 병원을 갔다. 공복에 채혈을 하고 밥을 먹고 2시간 뒤 또 채혈해야 한다. 무료하게 기다리는 2시간 동안 걷기 시작했다. 의사가 준 약도 먹지 않았는데, 그냥 꾸준히 걷는 것만으로 3개월 뒤에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게 1989년, 거의 20년 전 일이다. 살도 빠졌다. 80kg 조금 넘어가던 몸무게는 지금 딱 적당한 체중 67kg이 되었다. 비가 오나 날이 추우나 걷는다. 비가 올 때는 우산 대신 비옷을 입는다. 그게 자세에 좋다. 공기가 나쁘다는 말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어차피 서울에 사는데 그걸 다 들이쉬면서 사는 건 똑같죠.” 주위 사람들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시작하는 건 아무래도 어렵나 보다. “어르신들 말씀이 시골 가면 정자나무 밑에 들돌을 스무 살 젊을 때부터 한 번씩 들면 80이 돼도 들 수 있다고 하지요. 저도 80이 돼도 90이 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훌륭한 걷기 실력을 갖췄지만 그는 걷기대회에는 나가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걸어봤자죠.”
“걷기는 인간 본연의 이동 방식이다. 앞서 나간 발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전진을 가능케 하는 운동을 이끈다. 몸은 언제나 땅과 닿아 있으며, 한순간도 공중에 머무르지 않는다. 만약 공중에 떠 있다면 이미 달리기로 넘어간 것이다. 걷기는 개인을 땅에 붙들며, 그럼으로써 개인과 땅의 본질적 유대를 표현한다. 우리는, 플라톤이 뭐라 하건 간에, 땅의 식물이다.” -, 크리스토프 라무르
여행가 김선미씨는 얼마 전 경기 광주에서 서울 세검정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하면서 마음먹은 게 ‘이젠 진짜 차를 안 타고 최대한 걸어다녀야겠다’이다. 시골길이 걷기 더 좋을 것 같은데 의외다. 버스를 타는 아이들도 일부러 중간에 내려서 걸어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걷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시골길은 훨씬 위험해요. 보도가 없으니까요. 멀기도 하고요. 아이들 학교가 끝나면 부모들이 차를 갖고 다 데리러 오더라고요. 이사오니까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시골에서는 갓길에 걸어다니는 사람이 운동 잘 못하는 노인과 이주노동자들이었어요. 생존을 위해서, 경제적 능력이 안 돼서 걷는 사람들이죠. 도시에 와보니 오히려 걷는 사람들은 젊고 활기찬 사람들이더라고요. 도시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걷네요. 도시니 이렇게 저렇게 보도를 많이 개선하는데 시골은 안 그래요. ‘안전한 시골길 만들기 운동본부’라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김선미씨는 딸 둘을 데리고 땅끝까지 가는 여행을 감행한 적도 있는 용감한 엄마다. 그전에는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짐을 많이 싣고 다녀야 해 차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큰딸이 중학교 2학년이 되었으니 이제 여행도 배낭을 메고 걸어다녀야겠다고 생각한다.
“여기가 어딘가? 봄산이 햇살 속에 겉옷 슬쩍 걸어놓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배의 솜털을 보여준다. 저 칼로 썰어논 구름장 위에 날리는 햇살! 살아 있는 것이 겁없이 황홀해 더 앉아 가지 못하고 시외버스를 내린다.” -‘풍장12’ 황동규
만화 (새만화책 펴냄)의 소복이는 안경 쓴 친구와 얼굴 긴 친구와 서울 성북동 걷기에 나선다. 안경 친구가 든 것은 미용실 잡지에서 몰래 뜯어온 지도. “너무 잘 나와 있어. 코스 다 정해놨어. 나만 따라와.” 다들 비슷비슷한 코스에 그들만의 색다른 여행은 이제 오고 가는 말에서 시작된다. “내가 요즘 땅을 보고 다니는데 덕수궁 돌담길 땅이 너무 좋더라고. 로또 되면 거기 땅을 사서 7층짜리 건물 지을 거야.” “변두리적인 삶을 살겠다더니.” “편견이야. 7층짜리 건물 있어도 충분히 변두리적일 수 있어.” “변두리 인생의 핵심은 내 멋대로 사는 거지.” 그들은 수연산방에 가서 마종기 시집을 펼치고 서로 읽어준다. 노곤하게 잠이 오고 삶아온 계란을 먹고 놀랍도록 아담한 공원을 찾는다. 벤치의 종이커피를 마실 때 즈음이면 본격적인 이야기들이 풀려나온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7년, 한신 대지진이 일어난 2년 뒤 니시노미야 근처에서 고베의 산노미야까지 걷는 여행을 한다.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일단 걷는 데는 자신이 있고, 걸어서 가는 데 고생할 정도로 먼 거리도 아니었다.” 그 거리는 그가 ‘한신칸(오사카와 고베 사이) 소년’이었던 시절을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보리새우 낚시를 했던 연못을 지난다. 물은 끈적끈적하고 거북이들만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긴다. 아시야시로 들어서서는 예정에 없던 고시엥 야구장에서 한신 경기를 본다. 구경거리가 별로 없는 시합에 자꾸 목이 말라 맥주를 들이켜고 외야 벤치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혼자서 밥을 먹고 헤밍웨이 소설을 읽고 고등학교까지 걸어가본다. 그는 미국에서 한신 대지진을 만났고, 2개월 뒤에 지하철 독극물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여름에 돌아와 독극물 사건을 다룬 를 썼다. 니시노미야에서 고베까지를 이틀에 걸쳐 걸으며 그는 두 사건에 대해 줄곧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그런 명제에 대한 명확한 논리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가능하다면, 이해해주기 바란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두 다리를 움직이고 신체를 움직이는 과정을 일일이 물리적으로 서툴게 지남으로써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걸린다. 비참할 정도로 시간이 걸린다. 때가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경남 마산에는 ‘걷는 사람들’이라는 ‘비조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세 번째 일요일 오전 11시 느지막이 경남대 정문 앞에서 만난다. 20~30명 정도의 사람이 모인다. 1999년부터 걷기 시작했으니 거의 10년이다. 걷기 코스까지는 버스로 이동한다. 이동한 곳에서 걷다가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걷는다. 6km 정도의 별로 길지 않은 거리를 공들여 3시간 반이나 4시간쯤 거닌다.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 파트너를 바꿔가며 걷는다. 꽃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모두에게 꽃 이야기를 해주고 가수는 즉흥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4월에는 인근의 시골 마을을 걸었다. 장터도 열었다. 동네 할머니들께 “그날 올 테니 산채 가져오십시오”라고 미리 귀띔을 했다.
‘걷는 사람들’은 마산 시내도 많이 걸었다. 오래된 도로다 보니 인도도 없는 길이 많다. ‘보행권 조례’ 만드는 것에도 참여했다. 지지난해에는 학교 앞 어린이 보호 구역 실태 조사도 했다. 송창우 시인(비조직이라 특별한 직함도 없다)은 말한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녀야 길이 만들어지는 거지요.”
걷는 사람들의 걷는 원칙은 “빨리 걷지 않기”다. 송 시인의 말이다. “천천히 가자, 바쁘게 살면서 놓친 것을, 못했던 얘기를 나누고 가자, 그러면서 갑니다. 등산하듯 숨가쁘게 하지 않지요. 지칠 만큼 걷지 말자, 행군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지요. 그래서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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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길
호텔에 숙박하지 않는다고 호텔 뒤쪽의 해변길 산책을 포기할쏘냐.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에 위치한 신라호텔, 롯데호텔 등은 바다를 향한 건물 뒤편 산책길도 잘 만들어놓았다. 당당히 신라호텔 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오면 바로 산책로다. 나무 계단으로 해변까지 내려가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밤이면 분위기 있는 조명도 켜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해수욕장 부근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면 걸음 속도에 따라 1시간~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모래밭 위에 옆 사람의 이름을 쓰고 나서 “여기 쓴 이름은 파도에 곧 지워지겠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영원할 거야”와 같은 ‘멘트’를 날린다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제주도에 놀러갔다 싸우게 된 연인이라면 들르시라. 참고로 평일 밤엔 한적하다. 흠흠. 임지선 기자
‘일 삼아’ 길
강원 문암동 길은 취재차 간 길이다. 내린천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거슬러 오르는 숨겨진 숲길이다. 사륜자동차가 통행하는 비포장도로지만, 그보다는 걷기 편한 숲길이다. 내린천을 따르는 446번 지방도로로 가다가 홍천 살둔마을을 굽어보는 지점에 문암동 길로 빠지는 소로가 있다. ‘반달밭 민텔’ 표지판을 따라가도 된다. 길은 한가롭고 평화롭다. 가로수처럼 핀 야생화가 발길을 잡고,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쉬었다 가라 속삭인다. 시멘트 다리 건너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을 택하고(운리동으로 가는 오른쪽 길 또한 숨겨진 숲길이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는 문암동 표지판을 따른다. 문암동은 산골 아래 너른 밭을 지닌 산골 마을이다. 여기까지 8km.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여행 다니면서 먹고사니 좋겠다”는 말에 “모르는 소리”가 바로 튀어나오지만, 이런 길을 갔을 때면 “그래, 내 일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남종영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
‘안심’ 길
먼 길이 그리울 때 다정한 길을 찾는다. 152번 또는 410번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 수유동 종점에서 내려 화계사(華溪寺)까지 걸어가면 채 15분이 걸리지 않는다. 북한산 화계사 앞마당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여럿이다. 이 오래된 절의 당우보다 울울한 나무 그늘이 더 법당 같다. 화계사 뒤로 오르는 순한 길은 말 그대로 빛깔 가득한 아늑한 계곡이다. 누군가 ‘새들이 짝짓는 철에는 조용히 걷자’는 알림판을 걸어둔다. 잠시라도 ‘안심’을 누리고 싶을 때 이 순환의 처소를 찾아보기를. 삼성암 앞에서 내처 올라가면 칼바위길이고, 옆으로 빠지면 범골이고, 아래로는 빨래골 매표소다. 김수한 출판사 ‘산책길’ 주간
‘주민’의 길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4개월이 지난 2000년 여름,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 무악재역에서 하숙방이 있는 신촌까지 걸었다. 길가에는 세탁소, 슈퍼, 비디오대여점 등의 상점들이 있었고 상점을 따라 내려오면 인왕시장이, 시장을 넘으면 스위스그랜드호텔이, 호텔을 넘으면 다시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있는 ‘서민스러운’ 집들이 모여 있는 고개가 나왔다. 천천히 걸으면 1시간40분쯤 걸렸던 것 같다. 파마 기구를 만 채 집으로 뛰어가는 아줌마, 퇴근길에 과일을 사는 아저씨, 단어수첩을 들고 집에 가는 여고생, 삶은 고구마·직접 캔 나물을 내놓고 파는 할머니까지. 연방 두리번대며 ‘서울 주민’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걸었던 그 시간은 나를 신촌·명동만 아는 ‘서울 유학생’에서 동네를 아는 ‘서울 주민’으로 바꿨다. 박수진 기자
‘점심 산책’ 길
영화 를 서울 명륜동에서 찍었다. 점심밥을 먹고는 일행과 혜화동 로터리를 끼고 돈 뒤 성북동 가는 길을 30~40분씩 걷곤 했다. 같이 밥을 먹지 않더라도 걸어가면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점심 뒤 산책을 즐기는 같은 팀들을 만나곤 했다. 한번은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길 가운데 여기가 최고니, 저기가 최고니 하는 ‘길 논쟁’이 붙기도 했다. 나는 주택가 옆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사랑했다. 벽 쪽으로 나무 그림자가 떨어지는 무늬가 좋은데 올라가 아래쪽을 보는 것보다 올려다보는 게 좋다. 그렇게 우습게 시작한 산책은 볕 좋은 올봄, 걸어서 출근하기로 이어졌다. 사직공원을 거쳐 경복궁의 트인 입구를 통과해 창덕궁, 창경궁을 지나 대학로까지 가는 1시간 길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걷는다. 심현우 영화사 ‘청년’ 실장
‘시작하는 연인’의 길
날이 심하게 춥거나 덥지 않으면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구경하는 걸 즐긴다. 인파를 헤치며 익숙한 손의 감촉에 위안받는 느낌도 좋고, 고즈넉한 길에서 남이 들으면 민망할 꽃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도 재밌다. 종로 쪽에서 데이트할 땐 종종 헌법재판소 옆길에서 성균관대 후문까지 이어진 산길을 산책한다. 청신한 산기운을 즐기며 여유롭게 걸으면 삼사십 분쯤 걸린다. 나름 산인지라 중턱쯤 오르면 서울 시내 정경도 내려다보인다. 코스의 마무리로는 성균관대 후문으로 진입해, 풋풋한 젊음의 기운을 쐬어준다. 간혹 마을버스가 지날 뿐 인적 없고 으슥해, 시작하는 연인에게 추천할 만한 코오-스. 김송은 기자
‘시장’ 길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 시장을 가로지르는 긴 중앙통로 먹을거리 좌판에 쪼그려앉아 국수 한 그릇에 담겨져 나오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먹어보라. 어스름 저녁 신세계백화점의 화려한 네온 빛 아래 그늘진 골목길로 접어들어 만나는 남대문시장을 걸어보라. 새벽이라면 동대문시장으로 가자. 제 몸보다 더 큰 가방을 질질 끌며 밤을 밝히는 어린 사장님에게서 열정을 배울 수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이리저리 쫓기다 결국 신설동으로 밀려나간 황학동 벼룩시장을 찾아가자. 동대문시장부터 황학동을 거쳐 신설동까지 꼭 걸어서 가자. ‘삶은 비루하다’는 말이 ‘삶은 계란’만큼 엉터리란 걸 깨닫을 수 있다. 윤첨지 자유기고가
돌아오는 길
딸들과 함께 야영을 하며 우리나라 남쪽 끝까지 여행한 적이 있다. 그날의 베이스캠프가 정해지면 주변을 걸어다녔는데, 아이는 새재 올라가는 옛길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이유는 “올라갈 때는 조금 힘들었는데 가보니 탁 트인 경치가 너무 멋있어서”라고. 덧붙여 “엄마, 원래 그런 길이 좋은 거 아닌가?” 하고 되묻기까지 한다. 새재 옛길은 괴산의 조령산휴양림(043-833-7994)에서 조령3관문까지 20여 분 남짓 숲을 따라 오른다. 백두대간 산마루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고 길은 문경새재공원으로 이어진다. 걷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짧게 걷고도 만족도가 높은 코스로 좋다. 월악산국립공원의 하늘재 옛길도 비슷한 이유로 권한다. 사실, 아이들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길은 따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선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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